난청인의 인간관계

by 오늘핌

대화는 관계의 시작이다.


그러나 난청인이 대화를 나눌 땐 발화자의 음역대나 말투 등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간혹 조금 크게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지 않나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대부분 음운분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목소리만 크게 해 준다고 잘 알아듣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음운분별력 검사를 할 때 단어를 랜덤으로 들려준 후 이를 따라 하게 하는데,

나무, 비행기, 신호등, 물, 말 등 이러한 맥락 없는 단어를 들려준다.


나의 경우 두 글자나 세 글자는 그나마 6~70% 정도의 확신으로 대답하지만,

한음절로 끝나는 단어는 거의 알아듣기 힘들다.


이 테스트는 맥락이나 특정 주제 없이 랜덤으로 단어를 들려주는 것이라

예측할 수 없어 실제 대화보다 알아듣기 힘들다.


실제 대화에서는 상대방 특유의 말투, 즉 말할 때 소리를 뱉지 않고 입안으로 씹는다거나,

웅얼거리는 습관이 있으면 특히 더 알아듣기 힘들다.


또한 연극톤은 더 알아듣기 힘들다.

배우의 입모양이 보여도 한국 드라마, 영화와 같은 영상물은 자막없이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히 뮤지컬이나 연극 등의 공연도 구체적인 대화는 파악하기 힘들어,

남들이 웃을 때 왜 웃는지 모르는 채 따라 웃는 경우도 있다. 마치 외국어 공연처럼.


그렇지만 노래 자체의 아름다움과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음악 소리를 즐기기 위해

스토리는 모르는채로 관람하기도 한다.


또 나는 음역대에 민감한 편인데, 너무 저음이거나 너무 고음이면 알아듣기가 힘들다.

그래서 주변에 오히려 남자사람 친구가 더 많은 편이다.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랑 더 친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가끔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쟤는 왜 남자하고만 얘기해?' 하며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친한 여자친구 중에는 꾀꼬리 같은 고음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나 무조건 인간관계의 형성이 '알아듣기 쉬운 상대'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유독 말을 알아듣기 힘든 스타일인데 꽤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도 있으니

무조건 발화의 방식만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그 사람의 말을 100%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하는 방식과 행동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온정과 배려를 베풀어야하는 사회적 약자로 보지 않거나,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없이 그리고 나를 이끌고 가르쳐야할 선민의식 없이,

오히려 나를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주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친해질 수 있다.


친해지면 가볍게 서로를 디스하기도 하고 스스럼없이 욕도 하지만

둘 다 상처받지 않고 그자체가 즐거움이 되는 사람들.

비장애인들의 친구들이 그러한 모습이듯이 난청인들도 같다.


나를 다름으로 바라보지 않고 똑같은 시선으로 봐주는 지인들,

때로는 말이 잘 통하는 것보다 따뜻한 마음과 진심이 닿아있기에

오래도록 인연이 지속되는 것 같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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