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을 하면

by 오늘핌

내가 말할 떄 연령층에 따라 반응은 다양하다.


어르신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 직설적으로 '어머 아가씨 말하는게 왜 그래요?' 하신다.

그래서 '난청이라 발음이 좀 어눌해요.'라고 말하면 '어휴 불쌍하다. 안됐다.' 하며

표정에 연민이 가득하다.


중년층은 우회적으로 묻는다. '어디 외국에서 오래 살다 왔나 봐요?' 라고 하거나

'교정 중이세요?' 이런 식으로 나름 교양있게 돌려서 묻는다.


젊은 사람들은 물어보진 않고 조용히 회피한다. 아마 이상한 사람이라고 이미 단정 짓고,

얽히기 싫어서 미리 차단하는 느낌이다.

조금 마음은 그렇지만 나도 이 편이 깔끔하고 좋긴하다.


시댁에 처음 인사드리러 가기 전에, 남편에게 시부모님이 내가 난청이라는걸 알고 계시냐고,

놀라시지 않게 미리 말씀을 드렸으면 좋겠다고 하니, 남편은 오히려 미리 말씀드리는걸 반대했다.

괜한 편견을 가지고 볼 수 있으니 차차 말씀드리자고 했다.


나보다도 남편이 부모님에 대해 훨씬 잘 알고 내린 결정이니 겉으로는 무덤덤하게 '그럼 그렇게 하자.'라고

대답했지만, 수년간 경험으로는 아름답지 못한 엔딩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속으로는 걱정되었다.


보통 상대방에게 미리 '난청이라 발음이 좋지 않다.'고 미리 설명 하지 않으면,

비하하거나 상처주려는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모르고 실례를 범하기도 하니

서로 불편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쩍 무거워진 공기에 남편이 이어 '근데 너가 말할 일은 별로 없을거야. 왜냐면 우리 아빠 말 엄청 많거든?

너 듣다가 기빨릴거다.'라며 웃으며 말했다.


내 입장에선 상대방이 수다쟁이인 편이 훨씬 편한 상황이라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 되었지만

그래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걱정을 안고 시댁에 처음 방문했는데, 왠걸?

시아버님은 남편에게 듣던 것 보다 더 수다에 진심이었다.

집안 환경을 보니 시아버님을 제외한 나머지 식구들에게는 아예 발언권 자체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아버님은 난을 키우고 있었는데, 거의 식물학개론 수업을 하는 것 마냥

1시간 넘게 난이 얼마나 키우기 까다로운 식물인지, 난을 잘 키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이 키워낸 난들을 보여주고 자랑하는 말씀을 듣고 있다보니 거의 2시간이 지나 있었다.


기가 다 빨린 나는 남편을 쳐다보며 SOS 신호를 보냈고,

남편이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바꿔서 겨우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벗어났다.

시어머님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별 말씀하지 않으시고,

부지런히 반찬을 리필하거나 국을 다시 데우거나 하는 식으로 대응하셨다.


서로 골고루 대화하는 우리 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낯설고 적응이 어려웠지만,

어쨌든 나한테는 더 편한 환경이라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후 있었던 몇 번의 식사 자리에서도 아버님은 변함없이 일방적으로 얘기하셨고,

내가 말할 틈 따위는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는 우습게도 시부모님이 여전히 내가 난청이라는걸

모르실거라고 생각했었다.


양가 상견례를 앞두고 나는 이제 진짜 시부모님께 공식으로 말해야하지 않나하는 생각에

남편에게 얼른 말씀드리라고 재촉했다.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부모님 이미 다 알고계셔.'라고 했다.

얼떨떨했지만 자세한 건 묻지 않고 남편이 알아서 잘 얘기했거니 하고 넘어갔다.


집안 환경 탓에 많은 대화를 못하고 줄곧 듣는 입장이었긴 했지만,

시부모님도 분명 좀 다르다라는걸 알아차렸을 텐데,

아마 나 없는 자리에서 남편에게 조용히 물어봤거나, 남편이 따로 언질을 준것 같았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시댁에 갈때마다 '난청을 어떻게 감춰야 하나? 아니면 티를 더 내야하나?'라는

쓸데없는 고민과 걱정을 했던 것이다.


시부모님이 이미 알고 계신다는 말을 듣고, 방문할 때마다 이젠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투른 말과 어눌한 말투를 의식하지 않고 당차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말하게 되었다.


며느리를 존중하는 조용한 배려와 시끄러운 소리없는 넓은 마음이

마냥 서툴고 두려운 마음을 감싸 안아 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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