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청인의 학교생활(1)
엄마는 어릴 때 내가 골목대장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꽤 믿기 어려웠다.
학창 시절 대부분 조용히 다녔고 항상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중1 때를 제외하곤 크게 왕따를 당한 건 아니지만,
특별히 어느 그룹에도 딱히 끼지 않은 채 그냥저냥 되는대로 어울렸던 것 같다.
공부할 땐 A그룹, 놀 때는 B나 C그룹, 특별한 행사가 있는 경우가 아닌 평범한 날에는
쉬는 시간에 혼자 화장실 갔다 오거나, 아니면 옆자리나 뒷자리 친구가 말 걸면 얘기 나누는 정도였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놀이일 뿐이지만 남들을 지휘하고 호령하는 골목대장이었다니 나 조차도 상상이 어려웠다.
그 말을 듣고 다른 동네로 전학 온 초등학교 2학년 때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우리 반에는 일명 공주라고 불리는 애가 있었다.
유독 예쁘고 피부도 하얗고 옷차림도 매일 공주 원피스에 하얀 발목 양말과 메리 제인 구두를 신었다.
당연히 머리도 분홍색 리본으로 점철된 핀으로 단아하게 땋고 다녔다.
공주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도 잘 듣고 수업도 열심히 듣는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왕벌처럼 행동하여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잘 나가는 아이에게 잘 보이려고
아첨하지도 않고 모든 아이들과 잘 지내는 편이라 인기가 많았다.
반면, 그 아이와 모든 면에서 대조적인 아이가 있었는데,
피부도 까맣고 또래보다 빨리 여드름이 나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여드름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시력이 나빠 두꺼운 안경을 껴서 외모만 봤을 때 호감상은 아니었지만 성격도 소심해서 친구가 없었다.
나나 그 아이나 든든한 어떤 무리에 속해 있었던 건 아닌데,
당시 나는 그래도 단짝 1명이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둘이서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했다.
하루는 하굣길에 그 아이가 펑펑 울면서 지나가자 나와 단짝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
울면서 자기 엄마가 사실 우리 반 김포도네 집 파출부로 일하는데,
김포도가 나한테 '너희 엄마가 우리 집에서 일하니까 너도 이제부터 내 말 잘 듣고 심부름하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했다. 게다가 본인이 버린 옷을 내가 입고 있다고 비웃었다며 서럽게 울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상황이 실제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다니 마음이 아팠다.
친구의 엄마가 자기 집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그 엄마의 딸도 함부로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직 어린 나이인데 친구를 상대로 갑질하는 포도의 매서움에 기가 찼다.
나와 친구는 그건 포도가 잘못한 거라고 열심히 달래주고 있었는데,
마침 그 앞을 지나던 공주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흥미가 끌렸는지 자초지종을 듣다가 집으로 갔다.
그러곤 다음날 학교에 가서 포도한테 일러바친 것이다.
공주가 포도한테 구체적으로 뭐라고 했는진 모르겠지만, 포도가 기분 나빠 따지러 온 꼴을 보니
맥락을 다 잘라 먹고 내가 포도를 욕했다는 포인트에만 집중해서 전달한 것 같다.
우리 앞에서는 별 말 하지 않고 피해자의 아픔에는 모른 척하다가,
나름 반의 권력자인 포도한테 졸졸 일라 바치는 공주의 모습에 퍽 실망스러웠다.
포도가 나한테 어떤 처벌을 했는지는 그때 기억이 별로 생각나질 않은걸 보니
나도 포도를 무시하고 포도도 그 이상 나를 괴롭히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아니면 따 시키려고 했는데 이미 나는 아웃사이더로 친한 단짝 한 명과만 지냈어서 타격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 후로 나는 나도 어리지만, 아무리 초등학생이라도 공주처럼 기회주의자 같은 애가 있고,
포도처럼 벌써 자본주의와 약육강식의 세계를 접해 친구를 괴롭히는 초등학생의 세계가 무서웠다.
어린이의 세계는 결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순수하지 않다.
동심의 세계는 유치원을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끝났고,
어린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점점 거짓말에 익숙해지고 주위를 조종하는 힘이 생긴다.
후에 서술하겠지만 나의 엄마는 나름대로 살벌하고 심각한 어린이의 세계에 관심이 없거나
너무 순수할 것이라 믿어서 나와 오빠에게 신경을 못 쓴 부분이 많아 우리 남매도 힘든 시기를 겪었다.
아무튼 공주 사건 이후로 나도 여자지만 여자애들의 정치 싸움에 확 질려버렸고,
딱히 무리에 들어오라는 사람도 없었지만 더더욱 혼자가 마음이 편한 성향으로 바뀌었다.
이런 나조차도 중학교 1학년 때는 특히나 여중생들의 여왕벌 게임과 그룹 나누기와 왕따 만들기 같은
정치싸움에 휩쓸려 꽤 힘들었다.
그 당시 우리 반에서는 4~5개 그룹이 있었는데, 약간 노는 무리인 A그룹은 처음엔 8명으로 시작했다가
한 달에 한 명씩 내부 분란인지 이간질인지 당해서 그 아이는 다른 그룹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혼자 지냈다.
A그룹은 그런 식으로 오디션 프로그램 마냥 한 달에 한 명씩 퇴출시키다가
점점 그 주기가 2주에서 1주로 짧아지더니 마지막에는 결국 3명만 남게 되었다.
쫓겨난 아이들끼리 다시 뭉치니 쫓겨난 아이들의 숫자가 훨씬 많아서 이젠 전세역전이 되었는데,
A그룹은 여전히 '내가 제일 잘 나가'라는 마인드로 살면서 소풍 같은 행사가 있어 대형버스를 탈 일이 있으면 꼭 맨 뒷자리를 선점하면서 '쟤네 3명이라 한 명 떨굴 수가 없으니 발악을 하네'라는
비아냥은 가볍게 무시하고 3명이서 끈끈하게 잘 놀았다.
이처럼 그 시절 우리 반의 분위기를 쥐락펴락했던 메인인 A그룹의 멤버가 몇 주마다 바뀌니
여자애들은 괜히 눈치를 보거나 몸을 사리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남자애들은 다 같이 축구하면서 노는 분위기였고, 쉬는 시간마다 시끄럽게 장난치거나 떠들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무감한 남자애들도 여중생들의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쉬는 시간에도 조용했고 여자애들 무리들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처음에는 조용한 무리에 속해 있다가 그 무리의 어떤 아이가 나를 싫어했는지
다른 아이들과 나 사이를 이간질시키며 퇴출되었다.
그 무리에는 나와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도 내게 거리를 두더니 소풍을 다녀와서 나처럼 팽개쳐졌다.
나중에 소풍 때까지만 짝을 맞추기 위해 그 아이를 껴줬던 거라는 후일담이 들려왔다.
딸을 품은 지금, 딸이 여자들의 그 복잡 미묘하고 긴장과 예민한 분위기에서
친구들을 잘 만나고 큰 상처받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지 너무나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