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면 사랑 못 받는다!!'
엄마와의 갈등이 최고조로 이렀던 중학교 시절 들은 얘기다.
그 얘기를 듣고 속으로는 '누가 엄마 사랑받고 싶대?' 하며 넘겼다.
그러나 그 말은 오랫동안 누군가를 만나려고 할 때나 만나는 중에나 헤어지는 중에나 항상 마음에 걸렸다.
초등학생 저학년 때부터 아동학대 수준의 폭언과 폭력을 겪고 나자
당연한 수순으로 본격적인 사춘기에 들어서는 엄마에 대한 반감과 증오가 더 크게 자라났다.
엄마가 부드럽게 말하거나 좀 잘해주려고 해도 과거에 당한 바가 있기에
나의 반응은 칼바람 부듯 쌀쌀했다.
한 번도 엄마의 과거의 행동과 말에 상처받아서 지금은 더 이상 잘 지내고 싶은 마음 자체가 사라졌다고,
과거에 대해서 마음 터놓고 얘기하지 못했기에 엄마는 나의 반항을
그냥 다들 겪는 사춘기 소녀의 치기 어린 표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시절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너 마음대로 할 거면 나가 살라'거나, '넌 내거니까 내 말대로 해' 같은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투철된 표현들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숨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애를 낳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내 엄마지만 자녀를 대하는 엄마의 태도는 요즘 같아서는 오은영 선생님의 분노를 유발할만한 정도였다.
점점 내향적이고 인간관계에 힘들어한 나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편히 지낼 수 없었다.
집에만 있으면 본인이 상처 준 행동과 말은 생각하지 못한 채
'왜 내가 아무 동기 없이 엇나간다'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하는 상념에 빠져 우울했다.
그 분노가 최고조로 달했을 때는 '나중에 늙고 병들고 가난할 때가 오면 어떻게 하려고 저러시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어떻게 해야 가장 멋진 복수를 할 수 있을까 고민도 했었다.
그러던 우연히 본 어느 신문기사에서 사람이 죽을 때 가장 마지막까지 기능하는 장기가 귀라고 했다.
기자는 그러니 마지막을 두고 있을 때, 귓속말로 '사랑한다.' 라거나 '감사했다.'라는 얘기를 하면서
마음 편히 보내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기사를 보고 다른 생각을 했다. 그럼 나는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같이 사는 동안 덕분에 나는 너무 불행했어.'라는 말을 속삭이고 싶었다.
그녀가 가장 힘이 없고 가장 패닉에 빠졌을 때 가장 확실하게 상처를 주고 복수를 하고 싶었다.
물론 지금은 그 정도 마음은 아니다.
어차피 과거는 바꿀 수 없으니 내가 겪은 최악의 경험을 내 딸에게는 대물림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그때를 회고하며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 세상에서 모녀 관계는 마냥 사랑과 애정으로 충만하기만 한 감정보다는
대부분 사랑과 미움과 약간의 증오와 약간의 연민이 복합적으로 섞인 애증관계가 더 많을 것이다.
마치 사춘기 소녀들의 예민한 감수성에 사소한 말과 행동에 오해가 쌓여 서운해하고
잠깐 미운 마음이 들다가도 별 대단한 계기 없이 진심을 적은 편지나 맛있는 간식을 나눠먹는다거나
하는 작은 행동으로 다시 자연스레 화해하게 되는 것처럼.
모녀관계는 아마 평생의 숙제일 것이다.
내 딸에게는 '상처 주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나도 모르게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딸에게는 건강한 회복력을 심어주어 언제든지 엄마와 아빠를 믿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눠 상처도 미움도 증오도 잠시 스쳐 지나갈 감정으로
딸의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