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생존기
첫 직장에서 처음 발령 받은 팀은 사내에서 알아주는 개성강한 캐릭터들이 모여있는 팀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꽤나 정치적인 자리였다.
차장이 팀장 승진을 위해, 과장이 차장 승진을 위해, 대리가 과장 승진을 위해 몇 년간 참고 고생하면
승진 확률이 높아 승진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그런 팀이었다.
나야 이제 막 입사한 막내라서 그들의 수발을 들어 줄 뿐이었지만.
전임자 얘기로는 조그만 실수라도 절대 용납할 수 없고, 팀 분위기 자체가 강직적이고 예민한 편이라고 했다. 그리고 전임자가 공식 행사에서 실수를 해서 수습 기간이 끝난 후 팀장님이 타 팀으로 발령을 냈고,
그 후에 인사팀에 신입직원 안받는다고 했는데, 그것도 장애가 있는 내가 온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청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줄 알았다.
굳이 숨기려는 건 아니었고, 당연히 숨겨지지도 않지만, E-HR에 팀원 인적사항이 표시되는걸 알고 있었기에 출신학교와 학부나 자격사항이나 인턴 같은 경력사항과 그 외 특이사항이 반영되어 있으니
당연히 청각장애에 대해서도 알고계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처음 인사드리자 마자, 팀원 중 한 명이 '시옷 발음이 잘 안되네?' 해서 '네 잘 안됩니다.' 하고 넘겼다.
항상 말하는 거지만 이정도 무례함은 숨 쉬듯 당해서 아무렇지도 않다.
게다가 아직 첫 날이니 나에 대해 모르실 수도 있고 해서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지나보니 팀 전체가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모양새 같았다.
이 상황에서 똑부러지게 내 상태를 설명 했어야 했는데, 나도 첫 사회생활이라 대처가 미흡했다.
물론 속으로는 '내가 얘기를 꺼내야 하나?, 근데 얘기 했는데, 팀장이나 팀원들이나 기본적으로
너무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라 그래서 어쩌라고 같은 반응일 것 같은데...,' 아니면 까칠하게
'그래서 뭐 특혜라도 달라는거야? 봐달라는거야?'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도 들었기에 그냥 하루하루 무거운 마음을 안고 견디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바라며 퇴근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와 다를바 없이 출근 했는데, 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알고보니 전 날 같이 식사를 한 옆 팀장님이 '교정하세요? 발음이 좀 특이하네.'하셔서
청각장애가 있다고 말씀드렸었다.
그래서 옆 팀장님이 우리 팀장에게 전달했고 그제서야 다들 알게된 것이다.
팀장은 퉁명스럽게 '왜 미리 얘기 안했냐'고 물었고, 나도 무덤덤하게 '알고 계신줄 알았어요'. 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난청이 있든 없든 한결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배려 받는 것에 조금 과할 정도로 죄의식이 있는 편이다.
타인의 댓가 없는 호의를 의심하며 선의가 부담스러워 거절하거나 받더라도 마음이 무겁다.
옛날부터 스스로 '남들과 똑같이'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특혜 받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거나
'배려가 당연한게 아니니 내가 이겨내고 적응해야지' 하는 강박증이 있다.
남들은 관심도 없는데 괜히 신경쓰며 과하게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지인들은 배려라기 보다는 너의 당연한 권리인데 너무 그렇게 자신을 몰아세울 필요 없다며,
한 예로 시각장애인들한테 '잘 좀 봐'라고 해서 시각장애인이 노력해서 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냐며,
청각장애인도 똑같이 아무리 노력해도 잘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배려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못한다.'라고 말하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사람들에게 도움도 구하고 흔쾌히 받을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나도 사람들의 배려와 선의를 서스럼 없이 받으며 밝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고 싶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신기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아마 내 생각엔 나 스스로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라는 포지션이 싫고 부정하고 싶고
부끄러운 마음이 이미 내재 되어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지인들 사이에서도 쉽게 도움을 구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망설이다 결국 단념하고 포기하고 어영부영 되는 것이다.
사회초년생이었던 나의 서투름과 피해의식과 스스로 당당하지 못한 마음이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아 꽤 오래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