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생존기
회사에서 똑같이 월급 받는 처지에서 당연히 스스로 1인분의 몫을 해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이 채용한 사람에게 핸디캡이 있고, 그 점을 알고도 채용을 했다면
조직문화는 그렇다 쳐도, 업무 환경은 제대로 갖추어져야 한다.
가령 휠체어를 타는 직원이 있다면, 엘리베이터와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하고,
휠체어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사무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렇게 다른 직원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되어야 '1인분의 몫을 하세요.'라고
회사에서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물리적인 환경은 돈(예산)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에 대한 이해를 갖춘 동료와 상사와 조직문화를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전편에 간단히 언급했듯이 우리 팀은 사내에서 유명한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모여있었다.
중요한 행사가 있어 다 같이 도와야 하는 일이거나 무거운 물건 나르기 같은 일이 있다면,
대부분 '다 같이 해서 빨리 끝내자'라고 합심해서 일했을 터인데,
우리 팀원들은 본인의 업무 분장이 아니면 철저히 외면하는 개인주의였다.
애초에 이런 사람들이니 어떤 조그만 기대도 또한 상처도 받을 필요도 없지만,
그땐 직장생활이 처음이라 모든 게 힘들었었다.
팀 선배인 남자 대리와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데,
힘든 점이 있다면 말해보라고 해서 전화 응대가 힘들다고 했더니,
남자 대리가 퉁명스럽게 '전화를 못 받으면 사무직을 어떻게 해요?'라고 퉁명스럽게 얘기했다.
또 다른 일화로는 여자 대리는 거의 매일 2~3시간은 자리를 비웠는데, 전화가 많이 오는 포지션이었다.
내가 귀가 뻔히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전화 땡겨받으라고 매일 같이 지시를 했다.
나는 고유명사인 이름이나 기관명, 랜덤으로 부르는 전화번호, 숫자 등은 받아쓰기가 어렵다.
그래서 전화 메모를 잘 못하면 왜 못하냐고 화를 내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장시간 자리 비우지 말고 본인 업무는 스스로 하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참았다.
잠깐 자리 비우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너무 장시간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팀원이 전화를 대신 받아서 메모를 남겨놓는 것은 민폐가 아닌가?
내겐 첫 직장이었기에 다른 비교 대상이 없어서 선배들의 가스라이팅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몇 년 후 옮긴 직장에서는 첫날 팀장님과 면담할 때,
먼저 전화 업무는 어려울 테니 아예 내선번호를 사내 포탈에 공지하지 말라고 먼저 말씀해 주셨다.
게다가 전화보다는 거의 메신저로 일하는 문화라 전화응대는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하셔서
전 직장과 전혀 다른 문화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 직장 팀원들이 마냥 매정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도 하필 사무직에서 가장 기본적인 전화응대조차 힘든 직원이
팀 티오를 차지하고 있어서 불편하고 아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괜한 죄책감을 가졌으나, 시간이 좀 지나 타 부서 선배들과 교류를 하게 되면서
'고생이 많겠네. 거기 쉽지 않은 멤버들인데'라는 얘기를 듣거나,
'김분당 대리님 밑에 있어요' 하면 다들 '헉' 하면서 어떡하냐고 말씀을 아꼈을 정도니
나중엔 스스로 '내 잘못이 아니라, 그들이 너무한 거였어' 하며 죄책감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나를 위로해 준 동기들과 선배 직원들이 있어 하루하루 버텼었다.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