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실망했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글을 쓰고 나서 많은 시간이 지났고, 결과는 당연히 거절이었다. 아니 읽씹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끝까지 나만 생각하고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어 에필로그를 쓰며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날 지켜보고자 한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난 답답했을 것 같다. 일단 처음 드는 감정은 답답함과 그리고 그 뒤에 밀려오는 배신감, 내 신뢰를 무너뜨린 것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감이 물밀려 오듯 밀려왔겠지.
하나의 감정만 힘들어도 그날 하루가 달라질 수 있는데 답답함, 배신감, 실망감을 안겨줬으니 나는 더 아파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사람은 결국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지인들을 다 차단하기 시작했다.
아마 본인의 소식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주위 친구들은 그 사람의 새로 생긴 연인을 보고 나서 의외였다고 한다.
너랑 분위기가 비슷했다고, 단지 더 스마트해 보이는 버전의 너인 것 같다고.
그래, 내가 스마트함과는 좀 거리가 멀긴 하지...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좋을지언정 현명함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나는.
시간이 많이 지났고, 나 또한 여러 번의 소개팅을 나가봤다.
총 3번을 나갔는데, 1번은 내가 거절, 1번은 내가 까였고, 마지막 1번은 이 글을 쓰고 나서 만나러 갈 예정이다. 운이 좋게도 애프터를 받게 되었다.
헤어지고 많이 힘든 감정이 시간의 흐름 앞에 무뎌져 가는 듯했고, 나 또한 감정이 무뎌졌다.
물론 그 사람이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는 제보(?)를 듣고 나서는 하루동안 누워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원망은 들지 않았고, 그저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하루종일 누워있었다.
앤 해서웨이 배우가 로버트 드니로라는 배우에게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무엇이냐고 묻자, 로버트 드니로는 이렇게 답한다.
"Only if i knew what i know now"
번역하자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이라는 뜻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날 괴롭히던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그 친구를 싫어하는 만큼 네가 날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친구가 다시 연락이 온다고 해도 난 연락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은 든다. 그 친구와 두 번 다시 엮이기는 싫지만 그 친구가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비슷한 맥락으로 너는 두 번 다시 날 만나지 않겠지만, 내가 너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미안함, 참 어려운 감정이다.
미안함을 느끼는 만큼 상대방에게 그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다.
얼마만큼 미안하냐고 묻는다면, 일상생활에서 네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심장을 누가 움켜쥐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 만큼 미안하다.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너의 얼굴도 흐려져 간다.
그리움도, 사무치는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너와 나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겠지.
만일 저승에서라도 만난다면 그동안 잘 살았느냐고, 보고는 싶었지만 다가갈 수는 없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다음생으로 가는 널 보며 웃어주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앞에서만 울고 뒤에서는 혼자 눈물을 삼키겠지.
이게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다.
후련하게 잘 가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아마도 절대 안 될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전에는 인연이라면 만나겠지 라는 말이 희망적으로 들려서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면, 이제는 다른 시각으로 보인다.
우리가 헤어지게 된 것은 어쩌면 인연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뭔 짓을 해도 우리는 그때에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가끔은 네가 힘들기를 바라고, 때로는 네가 잘 살기를 바라며 , 자주는 네가 날 전부 잊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