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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힌 Sep 05. 2021

#11 가을

너와 함께 지지배배(遲㢟蓓㟝) - 더디게 걸어갈지라도 너와 함께 꽃 피울

  늦은 장마와 함께 가을이 성큼 찾아왔다. 뜨거운 여름 햇볕에 피부가 많이 달구어졌던 걸까. 살갗에 스치는 밤바람이 더 스산하게 느껴졌다. 이파리가 푸릇해지고 풀벌레가 울기 시작했던 무렵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무더위는 느닷없이 훌쩍 떠나갔다. 여름의 빈자리를 보고 있노라니 시간이 이다지도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서글퍼졌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린이들이 꼭 읽어야 하는 명언집이란 책에서 읽었던 말이었다. 그때는 어려서 그 의미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머리가 어려서 이해를 못했던 건지 나이가 어리니 시간이 많아 아깝지 않게 느껴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금보다 더 귀한 것인 줄 몰랐다. 공기가 당연하듯이 시간도 항상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그렇게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넘쳐나는 시간들이 어서 흘러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생이던 나의 하루는 몹시도 길어서 6번의 학교 종소리를 듣고 난 후 하교를 하고, 친구네 집에서 신나게 놀며 눈이 어지러워 멀미가 날 뻔했던 컴퓨터 슈팅게임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향해도 햇님은 빠알갛게 얼굴을 붉히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더디 가는 하루하루에 조급해져 한 살이라도 빨리 더 먹기 위해 설날에는 꼭 떡국 두 그릇을 비웠다.


 시간은 굉장히 요상한 게 빨리 가랄 때는 굼벵이처럼 기어가고, 늦게 가줬음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소풍으로 몇 년 만에 에버랜드에 갔을 때, 명절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기 전 이모네 집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에 한창 폭 빠져 재미있게 읽고 있을 때나, 가족들과 겨울밤 오대산에서 은하수를 바라보던 때와 같은 행복한 시간은 잡으려다 놓쳐버린 고추잠자리처럼 손아귀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갔다.



 반면에 좋지 않은 기억은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어린 나는 책상에 앉아 공을 들여 세일러문 같은 만화 캐릭터를 따라 그리고 있었다. 한 남자애가 그림을 뺏더니 그림 위에 돼지코를 그리는 식으로 그림을 망가뜨려 댔다. 여러 번 지우고 고치고 하며 맘에 들게 그려진 그림이 우스꽝스럽게 변해가자, 화가 났다. 평생 그토록 성이 난 적이 없다 싶을 정도로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벌떡 일어나 그 남자애의 뺨을 손바닥으로 때리고 말았다. 그만큼 화가 난 게 처음이어서인지 사람을 때린 게 처음이어서인지 혹은 남에게 처음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후련해서인지 이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 잊으려 해도 내 머릿속에 엉겨 붙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좋은 시간들만 기억해주면 좋으련만, 야속하게도 나의 뇌세포들은 어둡고 쿰쿰한 자극적인 일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뇌세포가 사람이었다면 TV 앞에 앉아 펜트하우스 본방을 사수하는 막장드라마 애청자였을 게 틀림없다.



  참으로 신기하다. 행복한 기억이 나쁜 기억을 덮어주고 선이 악을 이길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선선하고 풍요로운 가을은 빠르게 지나가고, 가을의 추억은 여름날 뙤약볕에서 땀 흘리며 고생하던 기억보다 흐릿하게 남는다. 추억을 회상해보라고 하면 왠지 가을보단 여름과 겨울에 있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른 아침부터 무더위에 시달리며 촬영하다 문득 본 여름의 푸른 바다나 짧은 팔다리로 가파른 오대산을 힘겹게 오르며 만난 하얀 설산과 눈부신 별바다는 더 선명하게 남았다. 가을의 붉은 단풍과 쾌청한 하늘도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더위와 추위라는 별다른 굴곡이 없어서 그런지 바라보던 그 순간은 너무 아름다웠으나, 그 잔상은 머릿속에 새겨지지 않은 채 연기처럼 흩어졌다.


 시간은 공평하다. 누구나 같은 양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이라는 새하얀 도화지를 채우는 건 온전히 자기 몫이다. 나의 시간이니 마음껏 펜을 휘갈겨보아도 되고 자주색이든 빨간색이든 원하는 대로 물감을 칠해도 된다. 누구보다 예쁘고 화려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다. 하지만 여느 전시회를 가면 그렇듯이 그저 곱기만 한 그림보다 작가의 거칠고 슬픈 온갖 감정들이 담긴 그림이 훨씬 더 우리의 뇌리 속에 깊숙이 박혀 든다. 작품 속 감정에 공감하고 같이 분노하기도 슬퍼하기도 하며 우리는 그 작품을 몹시 애정 하게 된다. 그러니 억지로 시간을 아름답게 꾸며낼 필요 없으며, 시간의 조각들이 커다랗게 뭉친 인생이라는 덩어리는 그 사람의 고난과 시련의 물감이 묻어날수록 어쩌면 더 길이 기억되며 사랑받는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초등학생의 나였을 때보다 교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보다 술을 마시고 밤거리를 서슴없이 활보하던 20대였던 때보다 점점 더 쏜살같이 흘러간다. 잽싸게 지나가는 시간은 찬란한 빛을 띠는 조각들보다 어둡고 까끌거리는 조각들을 더 크고 묵직하게 남기며 스쳐간다. 나는 이 어둠의 조각이 몹시 싫었다. 내 인생은 왜 그럴까 나는 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는 걸까 하며 한탄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둠의 조각이 있기에 빛의 조각은 더욱 눈부시게 아른거리며, 빛의 조각이 있기에 어둠의 조각이 매혹적인 이채를 뿜는다는 사실을 안다. 모든 조각은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는 이 모든 조각을 하나씩 하나씩 마음속 오르골 상자 속에 고이 넣어두려 한다. 한 장의 사진으로, 한 바닥의 그림으로, 그리고 한 문장의 글귀로 되새기면서.







글 쓴 시누이 - 율힌 yulhin

그림 그린 새언니 - 전포롱 jeon polong



시누이와 새언니

새언니의 집은 책들로 가득하다.

글 쓰는 시누이에게 새언니는 켜켜이 쌓인 책들 사이에서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책들을 꺼내어 준다.

한 번은 보고서 눈물을 흘렸던 그림책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시누이는 기뻐서 가끔씩 지치고 우울할 때 그 책을 펼쳐본다.

시누이는 새언니의 책들도 새언니도 너무도 사랑스럽다.

그런 새언니가 새로운 공부를 한다는 소식에 시누이는 자신의 책장을 뒤졌다.

마침 새언니가 시작하는 공부가 자신의 전공이었기 때문이다.

새언니가 시누이에게 준 마음보다는 안되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오래된 전공서적을 먼지를 털어냈다.

건네는 책은 낡았지만 건네는 마음은 새롭고 따스하게 느껴지길 바라는 시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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