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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힌 Oct 31. 2021

#16 단풍

너와 함께 지지배배(遲㢟蓓㟝) - 더디게 걸어갈지라도 너와 함께 꽃 피울

 문득 나의 반려묘를 끌어안고 베란다로 나갔다. 머리 위로 햇살이 부서지듯 쏟아져 내렸다. 고양이의 노란 털 결과 동그란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 작은 반짝임에 감탄하며 한참 쳐다보다 고개를 드니,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푸릇하던 세상조차 붉은빛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가까이 보이는 빨간 단풍 나뭇잎도 저 멀리 보이는 노르스름해진 산자락도 언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베란다에 자리한 가슴팍까지 성큼 자라 버린 올리브나무와 흙 속을 헤치고 머리를 빠끔 내민 바질 새싹이 눈에 들어오자, 그리고 두 팔 안에서 5킬로의 무게감이 점점 힘겹게 느껴지자 나 혼자 그대로 인 듯 해 코끝이 시릴 정도로 아주 조금, 서글퍼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성정이 급했던 것 같다. 과거에 여러 가지 경험한 바 있어 꽤나 차분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조급한 성격이었다. 왜냐면 나는 변화나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는 게 몹시 답답하게 느끼며 못 견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웹툰이나 드라마도 완결이 나야 그제서 정주행을 했고, 게임도 조금씩 성장하는 RPG 게임보단 한 판 한 판 치고받아 결판이 나는 그런 게임을 좋아했다.     


 이런 조급증은 나 스스로도 피할 수 없었다. 공부를 할 때에도 그랬지만, 무엇보다도 민요를 연습할 때 이 급한 성격은 마음을 강하게 옥죄었다. 민요는 목을 열거나 떨고 누르는 등의 기술로 감정도 표현하고 노래도 부르는 것인데, 아무래도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보니 기술이 쉬이 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설명을 들어도 목을 그렇게 움직이기도 힘들었고, 설명을 알아듣기 조차 까다로웠다. 그 당시의 사용했던 민요집을 보면 음의 높고 낮음과 떨림, 소리가 크고 작아지는 음률들이 구불구불한 선들로 그려져 있는데, 그것도 선생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그려 넣은 것이었다.(원래는 악보가 아니라 일반 책들처럼 가사만 쭉 적혀있었다.) 배움에도 이렇다 할 틀이 확연히 보이지 않아서, 실력이 좋아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불안했다. 조마조마하고 답답해하다 결국 나는 제 풀에 지쳐 민요를 잡고 있던 손을 놔버렸다.     


 민요 레슨실은 1호선 끝자락인 회기에 있었는데, 수원에서 먼 그곳까지 가서는 문 앞을 뒤로하고 획 돌아섰다. 좁은 레슨실에서 녹음기 하나만 부여잡고 같은 노래를 반복하자니 꽤나 곤욕이었던 데다 실력이 좋은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과연 이 길을 가는 것이 맞는 건가 하며 뒷걸음질치고 있을 때다 보니, 레슨실과 민요에게서 정이 점점 떨어지게 되었다. 주변은 빠르게 변해가고 잘되어가고 있는데 혼자 돌멩이마냥 뚱하게 있는 내 꼬라지가 참으로 맘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민요도 그만뒀고 대학교도 다니다 중퇴해봤고, 다이어트를 비롯한 가끔씩 마음먹어봤던 작고 큰 도전들 역시 포기했다.     


 여전히 나는 빨리 변화되고 빨리 끝을 보는 것이 좋다. 때로는 머리도 길게 기르다가 숏컷으로 싹둑 자르기도 하고 회사 식구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퍼런색으로 염색하기도 하며, 느닷없이 낑낑대며 집에 가구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보기도 한다. 다른 일들에 비해 조금의 시간만 흐르면 결과가 척척 나오니 그렇게 속 시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겉으로는 확연히 바뀌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나를 계속 한 자리에 머무르게 했다. 빠르고 쉽게 얻어진 결과들은 대체로 몹시 달지만 안까지 녹아들지 않았다. 머리를 바꾼다고 해서 내 내면의 모습이 바뀌지 않고 집 구조를 바꿔봐야 기분만 개운만 해졌을 뿐이었다. 이런 습성이 내가 변화를 좋아하면서 변화하지 않게 만들었다. 서서히 바뀌어가는 긴 시간을, 답답함과 고됨을 인내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내던지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변화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쉽고 편하게 얻어지는 걸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쓴 맛 나는 약을 피해 도망가는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나는 더 자라지 못했고 졸업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적 푸른 때를 벗지 못한 채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있는 한 장의 시퍼런 나뭇잎으로서 살아왔다. 온 힘을 다해 빨갛게 물들 용기가, 세상에 떨어져 짓밟힐 용기가 없었다. 그렇지만 요즘 가끔씩 속에 있는 무언가 꿈틀대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굉장히 조금이지만 자라난 게 보여 퍽 신기했다. 그러자 삼촌이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짜식 많이 컸네 하는 느낌으로 자신을 마주 보게 됐다. 작게나마 크고 있는 건너편의 나에게 희망을 걸어보고 싶어 졌고 마음에는 서서히 용기가 고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느리게 변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답답해하지 않으리라. 쓰디쓴 겨울을 맞이하는 당당한 붉은 낙엽이 되어 넓은 세상에 흩날릴 수 있도록.









안녕하세요. 율힌입니다.

어느덧 이렇게 가을 시즌까지 끝을 내게 되었네요.

가을이 쉽사리 지나가는 것처럼

시간도 단풍이 붉어지듯 물 흐르듯 흘러버렸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

수십 여 번 돌이 튕겨지기도 하고 빗물도 맞기도 하고

햇살을 반사해보기도, 맑게 제 속을 드러내 보이기도 해서

너무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마음도 몸도 건조해지는 겨울,

여러분을 다시 찾아뵐게요.




2021년 12월 5일 일요일 오후 3시에 돌아오겠습니다.






너와 함께 지지배배(遲㢟蓓㟝) - 더디게 걸어갈지라도 너와 함께 꽃 피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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