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은 생각은 책상 앞에 앉으면 사라질까?
왜 글은 쓰기 전에는 완벽해 보이는데 쓰려고만 하면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릴까? 심지어 쓰기 전이나 쓰려는 중간이나 문장이 생각나는 건 똑같은데 말이다. 가장 그럴 듯한 가설은 잘 쓰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머뭇거리기 때문이라는 거다. 생각할 땐 자유롭게, 기승전결을 맞춰서 떠올리지 않아도 되니까 사그라 들지 않는 샘물처럼 문장이 퐁퐁 솟아나지만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형식과 절차에 얽매여 가뭄이 드는 것이다. 비싼 식당, 고급 문화 예술을 누리려고 멋진 옷을 입고 있으면 괜히 삐그덕대는 것처럼 말이다.
어디까지나 유력한 가설이라는 것이다.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모든 학계가 그렇듯 ‘왜 글쓰기 전에는 완벽해 보이는데 쓰려고만 하면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릴까?’ 학회에도 유력하지 않은 가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바로 도둑이다.
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고 하는 사람에겐 뱃속에 거지가 들었다고 하지 않나. (이제는 사라져야 할 숙어이다.) 그런 도둑이 배에만 있는 게 아니라 머리에도 든 게 아닌가 하는 가설이다. 책상 앞에만 앉으면 멍 때리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몰래몰래 생각을 빼앗아가는 도둑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참나. 이런 놀라운 사실이. 내가 글을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거다. 역시 세상은 넓고 핑계는 많다.
생각해보면 비슷한 현상이 하나 더 있다. 정반대의 이야기지만 무척 흔히 접할 수 있는 현상이다. 샤워나 설거지를 할 때만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나? 멍 때리며 한곳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지는 건지도 모르지만 아닐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유력한 가설은 이런 생각이 수용성이라 생각하자마자 물에 씻겨 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단순히 성실한 일꾼이 물소리가 들릴 때마다 일하는 건지도 모른다.
물이 틀어졌을 때만 노동을 할 수 있는 환경에 사는 생각의 요정이 (인간도 전기가 돌아 불이 켜져야만 일을 하는 것처럼) 열심히 좋은 아이디어를 캐내면 책상 앞에 앉았을 때만 훔칠 수 있는 도둑이 하나씩 훔치는 거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런닝맨 같기도 하다. 쫓고 쫓기면서 자신의 목적을 사수해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면 나는 당연히 생각의 요정을 응원해야 하는데, 이게 또, 글을 샤워하면서 쓸 수는 없어서 참 곤란하다. 샤워하는 동안 녹음기를 켜둘까 싶기도 했지만 물소리에 묻혀 안 들릴 거 같아 관뒀다. 또 생각의 도둑 친구 ‘말하려니까 까먹었다’와 ‘막상 말하니까 재미없네’가 일을 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꼴이 되어서 큰 효과도 없을 거다.
그러면 어떤 수단을 사용해야 나의 팀, 나의 빛과 소금, 나의 태양인 생각의 요정이 이길 수 있을까? 난 어떻게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디어 공장을 도울 수 있을까? 오늘도 생각하는 사람 자세로 고민하느라 정작 중요한 생각은 까먹고 만 N. 판이 깔리면 이런 생각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쩌면 과학이 모르는 진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남몰래 하는 N. 생각의 요정이 유난히 많이 서식한다는 N이 사는 세상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