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생존의 경계에서(3)

의지를 통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다

by 에스더

서울에도 가혹한 삶의 초침이 돌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친정 가게까지 걸었는지.
체력은 이미 한계에 닿아 있었고,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마침 모여 있던 동생들이 나를 바라보며 놀란다.


“언니, 왜 이렇게 말랐어?!”

대답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내 몸이 알고 있었다.
저 안쪽에, 잠시 내려놓을 자리가 있다는 것을.

자석에 끌리듯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전기장판 스위치를 켜고 담요를 끌어당겼다.
얼마나 그리워했던 온기였던가.

몸과 마음이 동시에 따뜻함에 녹아 내리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온기에 완전히 잠식된 채,
나는 죽음보다 깊은 잠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가볍게 어깨를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간신히 실눈을 떴다.

“언니, 이제 집에 올라가자.”

동생의 목소리가 안개 속처럼 어슴푸레 들려왔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정말 서울에 와 있다는 사실이 또렷해졌고 실감할 수 있었다.

문득, 마치 긴 방황 끝에 겨우 돌아온 탕자가 된것만 같았다.

얼마나 그리워했던 서울인가.


그러나

마음은 시골에 두고 온 아이들에게로 달려가 있었다.
문틀을 붙잡고 서서 울던 아들이 떠올랐다.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훌쩍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갔다 오라’며 어린 마음으로 애써 웃어 보이던 딸아이 역시,
오지 않는 엄마를 하루 종일 문턱 너머로 기다리고 있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그리고 아프게 조여왔다.


지난날 내가 쓰던 방에 누웠다.
아주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듯, 방바닥에 몸이 닿는 순간 안락함이 밀려왔다.




그밤 부터 이상증세가 시작되었다.

서늘한 한기가 서서히 몸을 감싸더니, 이내 열이 훅 치밀어 올랐다.

시간이 지날 수록 열기는 더 치솟았고,
밤새 끓어오르는 열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몇 번이고 정신을 붙들어보려고 벌떡 일어나 앉아 보았지만,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있을 뿐이었다.

이해 할 수 없었던 건, 날이 밝으면 거짓말처럼 정상적인 체온으로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낮에는 한기가 스멀스멀 몸속을 훑고 지나갔고, 밤만 되면 견딜 수 없는 열이 다시 치솟았다.


그 외엔 더 다른 증세가 없었기에 감기라고 보기엔 어딘가 맞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저 해열제만 복용하며 그렇게 일주일을 버텼다.


그러던 날.

낯에는 한기외엔 특별한 증세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방문을 열었다.

미스 때 부터 한집에 살던 아줌마와 유연히 마주쳤다.


"아니, 왜 그렇게 말랐어?!"


아줌마는 뭔가 짐작한 표정으로 얼굴이 굳어졌다.


며칠 뒤, 모친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나를 부축해 보건소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려 몇 걸음 옮기던 순간이었다.
세상이 갑자기 샛노랗게 변했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당황한 모친은 나를 업은 채 겨우 보건소 안으로 들어섰다.
간호사는 급히 X-ray실 앞 의자에 나를 앉히고,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한 순서를 진행했다.
한참 후, 멍한 의식이 돌아 올 즈음, 간호사가 조심스레 모친에게 말을 건넸다.

“화병이면 큰 병원에 가셔야 하고요
화병이 아니면, 이곳에서 1년간 약을 드려요.”

왜 1년간 약을 주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오직 화병만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화병'이라는 말이 주는 막연한 두려움과, 병원비를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적 부담 때문이었다.


X-ray를 찍고 나오자,

모친은 곧장 ‘가족계획’을 위해 병원으로 데려가셨다.


아마도, “임신한 것 같다”는, 나의 걱정스런 맘을 전해 들으셨기 때문이다.


중환자 같은 몸은 수술대 위에 눕혀졌다.
소파 수술을 거쳐, 이어 배꼽 수술까지 받았다.

의사는, “아무것도 없는데…”라며 혼자 중얼거렸지만,
이미 두 가지 수술은 연이어 진행되고 있었다.


그날 밤부터 열은 더욱 치솟았다.

밤마다 치솟는 열기 속에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의식의 끈이 한순간이라도 풀리면, 마치 심연의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칠 것만 같았다.
몸은 격렬한 열에 잠식되고, 마음은 생사의 경계에서 의식을 잡고자 안간힘을 썼다.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순간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를 몇번인지 몰랐다.


밤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삶을 간절히 소망했다.


살아야 한다고.
살아야만 한다고.
아이들에게 ‘엄마를 일찍 잃은 슬픔’을 되물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 는 절실함, 이 두 가지 이유가
나를 이 세상에서 떠날 수 없는 이유로 강하게 붙잡아 두고 있었다.


모태신앙으로

유아세례는 받았다고는 믿지만,

나는 내 의지로 직접 받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셨다는 사실은, 나에게 반드시 이 길을 걸어야 한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렇게 열과의 싸움이 밤마다 반복되었고

일주일 후, 결과가 나오는 날 동생은 가볍게 말했다.


"언니, 폐렴이래 1년간 약을 먹으면 완치된다고 했으니까 꼭 약을 빼지 말고 잘 챙겨 먹어야 해."


나중에 알게되었다 급성 폐결핵이라는 사실을.


그날 나는 내 몸이 병중에 있음을 새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부터 비로소 정식으로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일어나 앉을 힘조차 빠져나간 몸은 이미 병약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종일 누워지내야만 했다.

치료를 위해서는 식사를 해야 했지만, 끼니마다 시간을 맞춰 챙겨줄 사람이 딱히 없었다.

모친의 도움을 받았지만, 가게일로 늘 바쁘셨기에 매 끼니에 정성을 다하기는 어려웠다.


한편, 내 혀는 이미 오래전부터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혀만이 아니라 위장도 제 역할을 하지 않으려는듯 전혀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몸 전체가 ‘먹는 것을 거부'하는 듯했다.

한 두 숟가락조차 용납하지 않으려는 것같았다.

애써 삼키려 해도 목으로 넘기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치료를 위해서는 시간에 맞춰서 약을 복용해야 하기에 겨우 몇 수저를 곱씹어서 삼켜야 했다.

한 줌이나 되는 독한 약을 목으로 넘기는 것도 쉽지않았다.


하루 일과는, 착잡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병상에 누워 말씀 테이프를 듣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막막한 일상 속에서 성경말씀은 큰 위로이자 한줄기 빛이었다.

벼랑 끝에 선 듯한 삶 한가운데서 내가 의지하고 붙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었다.


한편,

누워 지내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모든 것이 막연했다.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릴 아이들이 떠오를 때면 견딜 수 없는 아픔이 가슴을 적셨다.




문득, 이대로 누워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없는 몸을 겨우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곁에 있던 성경책을 집어 들었다.


"하나님, 이 책의 모든 말씀이 아버지의 말씀이오니,

지금 이시간 저를 향한 아버지의 뜻을 일러주옵소서.

이대로는 견딜 수 없사오니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내 영혼을 취하시고

아니면 치료하시고 살려 주옵소서!"


떨리는 손으로 성경을 펼치자, 시선이 우측 상단을 향해 고정되었다.
그 말씀은 내게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그 순간에도 그분께서는 내 신음같은 기도를 듣고 계셨다.

그리고 응답하셨다.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아니하겠으며 네 생명을 찾는 그 사람들의 손에 넘기지도 아니하리라.”
(예레미야 38:16)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섭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38장, 본문 말씀의 내용과,신학적 의미를 온전히 이해 할 수는 없었지만,

주신 그 구절은 분명히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믿었다.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지키시겠다는 뜻을 보여주셨음을 확신했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는 듯한 생명줄을 붙잡고 그저 힘겹게 버티던 막연함은
확신과 감사, 그리고 눈물어린 기쁨으로 바뀌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주신 긍휼하심과 크신 은혜.

그 은혜를 믿는 내 믿음은 마침내 실상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증거로 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설 것이라 확신했다.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 평안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몸의 기력은 목에 걸린 가래조차 쉽게 뱉어내지 못할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어느날

치밀어 오른 농 덩어리는 기도에 걸려 붙어서는 삼켜지지도 밷어내 지지도 않았다.

밥으로, 물로, 힘겨운 기침으로, 또 손으로 문질러 보기도 하고,

목 살을 당겨보는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점차 숨을 쉬는 일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누워있어도, 앉아 보아도 그 덩어리는 나를 계속 괴롭혔다.

정상적인 호흡이 힘들었고, 어느 땐 목 살을 잡아 당겨서 숨을 쉬어야 했다.

때때로 그 부위에 쓰린 통증도 느껴졌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지내던 어느 날, 기도에 붙은 찰거머리 같은 농 덩어리에
또 다른 농이 치 솟아 올라 합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숨 쉬기가 더 힘들어졌다.

목이 막히니, 곧 숨이 멈출 것만 같은 상황이 되었다.

실오라기 같은 가느다란 숨길만 열려 있었다.


무슨 방법도, 도움을 요청할 힘조차 없었다.
손으로 목살을 당겨보고, 목을 위 아래, 좌 우로 뒤틀어도 덩어리는 그대로였고,
기도가 막히는 느낌에 온몸이 초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손으로 목살을 잡아 늘이고 간신히 헐떡이며, 누구든 속히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 하교한 여동생이 돌아왔다.
숨이 곧 넘어갈 듯한 모습을 본 동생은 겁에 질려 울면서 나를 업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때 마침 골목 앞에서 마주친 한 집에 사시는 아저씨의 차에 실려

신속히 병원(병원 이름은 밝히지 않고 싶다)으로 옮겨졌다.


의료진들에 의해 양쪽으로 부축되어 X-ray에 찍혔고, 응급조치를 받게 되었는데,

심각한 오진이 실행되어졌다.


X-ray 를 찍은 후 의료진들은 나를 부축해 앉히고, 서로 전문용어를 주고받으며

나의 등에다 주사를 놓는 듯 했다.

잠시 후, 중요한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확인하듯 물었다.


“이젠, 시원하시죠?..숨쉬기가 편하시죠?”


그들은 내 상태를, 폐에 불필요한 공기가 차서 호흡이 어려운 것으로 오진했다.

그리고는 '폐의 잔류 공기량' 을 주사기로 빼낸 듯 했다.


폐의 잔류공기는 호흡이 안정적으로 지속되도록 지켜 주는 '생명 보호 공기'로써 완충층 역할을 한단다.


잠시 후 생과 사 사이에서 1초가 다급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나마 겨우 이어가던 숨이, 공기를 빼낸 뒤로는 가스 교환 (산소 받고, 이산화탄소 내보내는 과정)이 어려워 졌다.


들이마실 수도, 내 뱉을 수도 없는, 곧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의식을 붙들었다.


알 것만 같았다.

사람이 왜 눈 뜨로 죽는지를.

의식이 있다해도 불현듯한 신체적 한계앞에서

숨이 넘어 갈 때 눈을 뜬 채로 죽는 것이라고.


의료진은 허우적거리는 나를 재빨리 들것에 눕히고, 어디론가 미끄러지듯 달리기 시작했다.

생사의 경계에서 의식을 붙잡으려는 안간힘이 계속되자, 생땀은 비오듯 전신을 적셨다.


어디론가 실려가서 젖은 빨래처럼 처진 몸이 부축되어 다시 X-ray에 찍혔고...,

거기 까지는 어슴프레 기억이 난다.


아련한 의식을 붙들고 보니, 코끝에는 산소호흡기가 꼽혀 있었다.

가슴께로 내려가자, 오른 쪽 옆구리에는 새끼손가락 굵기의 호수가 박혀 있었고,

그 끝은 절반쯤 물이 찬 큰 병속에 담겨 있었다.




입원한 지 몇 날이 지나자,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보다 병원비가 더 큰 문제로 야기 되었다.

이런 저런 사정을 이해한 병원 측은, 다행히 서대문 시립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옆구리에 꼽혀 있는 호수는 한 뼘 정도로 잘려 끝부분이 접힌 뒤, 고무줄로 단단히 묶여졌다.

호흡도 온전치 못하고, 몸도 제대로 지탱하기조차 힘든 상태로 나는 어느 건물 계단 한켠에 그대로 놓여 졌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곧 경찰차가 태우러 온다는 각본속에서

강한 한기 속에 떨며 계단벽에 몸을 기대고 얼굴을 무릎에 묻은 채 앉아 있었다.

그저 계획된 일이 빨리 진행되기만을 바라며, 힘겹게, 아주 힘겹게 기다렸다.


시간은 천천히, 그러나 잔혹하게 흘러갔다.

온 힘을 다해 앉아 있다보니 숨은 갈수록 가빠왔고, 호흡 하나하나가 온몸을 타고 퍼지는 통증으로 느껴졌다.

몸은 움추려져 냉기에 떨고있었다.


'경찰차는 왜 이렇게도 오지 않는 걸까.'


시간이 늘어진 건지, 내가 절박한 마음인 건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몸은 체력이라는 단어를 이미 오래전에 상실했었고,
그저 벽에 기댄 채, 마지막 의지 한 오라기를 힘겹게 짜내고 있었다.

버티고 버티는 의식 속에서 어린 아들이 방문에 서서 펄쩍 펄쩍 뛰며 울고 있었다.

“엄마, 갖다 와” 라는 딸아이의 나직한 말이, 살아나야 함을 다짐받듯 속삭였다.


'그래 애들아, 기둘리고.. 있어...

엄마가... 꼭, 갈께...'


감긴 눈 사이로 눈물 한 줄기가 흘렀다.

남은 기력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증명하듯 가늘게 흘러 내렸다.


몸도 마음도 텅 빈 진공상태로 굳어 질 즘, 마침내 나는 백차에 실렸다.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지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의식속을 길게 파고들었다.

눈을 감으면 그대로 쓰러져버릴 것만 같아, 실눈을 억지로 치켜뜨고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랬다.


뒷 자석에 기대어 앉아 숨을 헐덕이는 나를 Room mirror로 살피며 쓰고 있던 모자까지 벗은 경찰관은

연실 이마의 땀을 닦아 내며 일방통행으로 달렸고, 얼마 후 나는 서대문 시립병원 응급실에 눕혀 졌다.


미처 안도의 숨을 고르기도 전에,
뜻밖의 귓가를 때리는 말 한마디가 마음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허참, 그 사람, 금방 식사하고 돌아눕더니 그새 죽었네.
간호사 불러.

싱거운 사람 다 보겠네.”

부축받아 응급실로 들어설때, 몇몇 환자분들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채 가시지 않은, 음식 냄새가 남아 있는 그 공간에서 '금방 식사한 사람이 죽었다'는 말은
현실감 없이 공중에 떠 있는 문장처럼 들렸다.


'...정말?!'


식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생명이 꺼져버렸다니.
그 순간, 내 병이 내가 아는 수준보다 훨씬 심각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서늘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곧,
죽은 사람의 벗겨진 환복이 내 침대 발쪽에 놓인 큰 고무통에 아무 의미 없이 담겨졌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어디론가 실려 나갔다.
인생무상 삶의 회의가 무언지, 조금은 알것만 같았다.


원활치 못한 숨을 몰아쉬며 복잡한 심정을 안고 누워 있는데,
몇 겹의 두꺼운 마스크를 쓴 의사와 간호사들이 내게 다가왔다.
의사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명령하듯 말했다.

“기침해봐!”

나는 기침을 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게 무슨 기침이야?! 더 크게!!”

온 힘을 다해 애썼지만,

입만 벌린 채 고개만 애써 끄덕일 뿐, 소리 하나 나지 않는 날숨이었다.
의사는, 소리를 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를 지켜보더니 아무 말 없이 병실을 나갔다.
잠시 후, 큰 노란 링겔병의 주사기 바늘이 내 팔에 꼽혔다.


가만히 지켜보던 사람들이, 언제부터 앓았는데 그렇게 말랐느냐고.

젊은 여자가 안됐다는 듯이 물어왔다.

정신없이 치뤄내야 했던 일련의 과정속에서 내 외적 변화를 알지 못했었다.

아니 신경조차 쓸 여유가 없었다.


유아기에는 다리를 고쳐보기 위해, 몸에 좋다는 약을 많이 먹였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래선지 힘이 장사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덕분에 유년 시절, 동네 또래 남자아이들에게도 힘으로 밀어붙이곤 했다.

성장하면서도, 언니에게 늘 ‘꽃돼지’라는 별명을 들었다.
그 기억은 뇌리에 깊게 남아, 나는 스스로 늘 뚱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모처럼 보게 된,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변해있었다.
쇠골 위로 소주 한 잔이 들어갈 정도로, 과연 뼈만 남은 몰골이었다.




응급실 이틀 후, 내 옆구리에 호수가 꼽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의사는 몹시 화를냈다.


“어느 병원이야?!.

말을해봐!

어느병원에서 수술 받았냐구?!”

사람을 이런 상태로 내보내다니, 이건 살인에 해당하는 경우야!!


며칠째 노여움은 계속되었다.


"호수가 빠지고 공기가 폐로 들어가면 당신은 바로 죽을 수 밖에 없어!!!

왜 말을 안 하는거야?!!!

그 병원을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 할 수 있는거라구!"


"그런 병원, 그런 의사는 용서할 수 없어,

환자를 이렇게 내어버리다니,

어느 병원이야?!!

어느 병원에서 수술 받았냐고?!!!”


그러한 몸 상태로 길가에 버려진 사실을 용납할 수 없다며,
흥분한 의사는 격한 화를 내며 사실을 고하기를 설득하려 했고,
연이어 대답을 추궁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저… 모르겠어요.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질만능주의 사회 구조와 냉정한 현실 속에서
철저하게 버려진 몸, 돌아볼 부모나 형제도 없는 신분이 되어야만
입원이되고 치료받을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왜 그렇게 되었는지도 몰라야 했고,

나는 홀로 단신의, 조금 모자라는 사람으로 위장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지내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서대문 시립병원에는 대체로 돈 없고 홀로 버려진 사람들이 많이 실려 왔다.
나 역시, 그렇게 버려진 채 백차에 실려 온 사람 중 하나였다.


그렇게 해서 다행히 시립병원 응급실에 입원되어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가장 힘든 일은 화장실을 왕래하는 것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겨우 숨을 조절할 수 있었지만,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바로 숨이 차올랐다.
몇 걸음 걷고, 멈춰서 서 숨을 겨우 가다듬고를 반복하며
25미터를 왕복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고역인지,

자유롭게 호흡 할 수 있는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날마다 실감해야 했다.

공기를 마음껏 들이쉴 수 없다는 사실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실존적 고통이었다.
기도에 붙은 작은 농 덩어리 하나,
그 하찮은 것에 의해 내 몸의 생리 기능이 좌우된다는 것을
체감하며,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나약한 존재인지 철저히 깨닫게 되었다.

그 나약함을 인정할수록
한 걸음 한 걸음은 나름의 성찰과 속죄의 시간이 되었다.
숨이 막힐 듯 차오르는 순간에도,
몸이 끊임없이 한계의 무력함을 드러낼 때에도,
나는 그렇게 하나님 앞으로 한 걸음씩 돌아갔다.
천천히, 그러나 절실하게 이어지는 회귀의 시간이
숨 가쁨과 몸의 고통 속에서 나를 붙들고 있었다.




어느 날,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던 농 덩어리가
‘툭!’ 하고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한순간 숨통이 트이는 듯, 후련하고 청량한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거북하게 막혀 있던 기도가 시원하게 트이자
몸 전체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살 것 같았다.

진공 상태 같던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듯했고,
순간 온몸에 생기가 돌았다.

공기의 맛!
그것은 세상 어느 맛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짙고 강렬한 삶의 맛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움직일 때는 여전히 숨쉬기가 편하지않았다.


몇 날 뒤,
화장실을 다녀온 후 침대에 오르기 위해 양손을 딛고 몸을 끌어올리던 순간,
옆구리에 꼽혀 있던 호수가 ‘쑤욱’ 하고 빠졌다.

손으로 호수를 눌렀는지, 어디에 걸렸는지 알 수 없었다.

빠진 호수 끝에는 젤리처럼 응고된 큰 농 덩어리가 붙어 있었다.
며칠 전 떨어졌던, 그 문제의 농 덩어리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황급히 옆구리를 손으로 막고 간호사를 불렀다.

잠시 후 응급조치가 취해졌다.
그 일로 인해 외부 공기가 또 폐에 들어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 뒤로 2주 동안, 응급실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공군 소위, 노숙자들, 기성복집 미싱사 아가씨, 그리고 잊을 만하면 다시 들어온다는 사람들.
그들 모두 나처럼 백차에 실려 왔다.

대낮이든, 초저녁이든,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백차의 차인벨이 울리면 여지없이 병약한 이들이 부축되든,또 들것에 실려서 응급실로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두 사람이 있다.
공군 소위와, 미싱사 아가씨이다.


공군 소위는 아주 잘생긴 젊은 남자였다.

처음 입원했을 때는 조금의 식사도 하고, 가끔 실눈을 뜨고 창밖을 초점 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외관상, 마음을 다잡고 치료를 잘 받으면 곧 퇴원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 앞에 초연한 듯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식사대신 링겔주사가 꼽혔고, 배뇨는 비닐 호수를 통해 배출되었다.
몸도 점점 야위어 갔다.

잠든 것인지, 기력이 없는 것인지 그는 늘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는데,
간혹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그 동공속엔 삶의 아무런 의욕도 없어 보였다.
그 역시,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홀로 남겨져 있었다.

어느 날,
실눈을 뜨고 있던 그는, 마주한 침대에 앉아 있는 나를 처다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주머니… 돈, 필요하세요?”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영양주사에도 한계가 있었고, 죽기를 바라는 듯 눈을 감은 채 시체처럼 누워 있던 그는
어느 날부터 , 마치 잠꼬대처럼 불교의 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육체의 한계 앞에서,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왜 이겨내려 하지 않았는지,참으로 딱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를 위해 기도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또 한 사람.
늦은 밤, 백차에 실려 온 그녀는 상태가 몹시 위중해 보였다.
사람들을 통해 그녀가 미싱사라는 것, 그리고 이곳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삶의 의욕을 잃은 듯, 매일 눈을 꼭 감은 채 체념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골반의 살갗은 뼈에 붙어버린 듯했고, 욕창이 깊게 패여 진물이 스며 나와 옷 밖으로까지 번져 있었다.
그저 모진 목숨이 끊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듯, 감긴 눈은 좀처럼 떠질 기미가 없었다.
그녀의 팔에도 링겔 바늘이 삶의 끈처럼 꼽혀 졌다.

이미 달아날 수도 벗어 날 수도 없는 쇠사슬 같은 삶 앞에 그저 침묵으로 대항하고 있는듯 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서글프고 아팠다.




달에 몇 번,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X-ray를 찍는 지정된 날이 있었다.
그날 역시 촬영을 마쳤는데, 검사 결과가 곧바로 나왔고
폐 안에 남아 있는 불필요한 공기를 빼내기 위한 수술날짜가 잡혔다.


막연한 두려움속에서, 나는 수술대 위에 조용히 눕혀졌다.

서명까지 한, 더 내려갈 곳도 없는 생의 가장 밑바닥의 현장이었다.


잠시 후

이유를 알 수 없이, 양 팔이 벌려진 채 간호사들에 의해 단단히 붙들려 고정되었다.

무슨 영문인지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수술이 시작되었다.


너무 저체력이라 마취를 하면 깨어나지 못할까 걱정했기 때문일까—

훗날 그런 추측만 조심스레 해보았다.


차갑고 뾰족한 금속이 내 가슴에 사정없이 박혀 들어왔다.
순간, 숨이 막히는 듯한 충격과 격한 통증이 온 몸으로 전해졌다.

나름의 비명과 몸 부림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간호사들의 팔에는 내가 꼼짝할 수 없는 힘이 가해지고 있었다.


아무리 말랐다고 해도, 누운 자세에서는 살이 밀려 작은 두께라도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의사는 정확한 지점을 찾아 뚫기 위해
도구를 찌르고 빼고, 다시 찌르는 동작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의도대로 잘 뚫리지 않는지, 금속이 스치고 비틀리는 느낌이 그대로 두려움과 통증으로 전해졌다.


“왜 이렇게 안 뚫리지?!!... 이크, 혈관이 터졌네! ...나일론 실.!”


얼굴과 목, 가슴으로 뜨끈한 액체가 튀었다.


감히 나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이를 해산할 때 비로서 자신을 낳은 엄마를 생각하듯,

살이 찔리는 통증을 느끼다 보니 가혹한 십자가의 예수님이 생각났다.

더 설득력있게. 더 실감나게, 그 고통과 또 크신 사랑과 은혜가 가슴깊이 와 닿았다.

또 다른 뜨거운 눈물이 심중속으로 흘렀다.


의사의 손에 들린 나이론 실이 제역활을 다 하는 동안, 혈액이 가슴을 타고 목으로 흘러 내렸다.

한스러운 울부짖음 속에서 응답의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아니하겠으며 네 생명을 찾는 그 사람들의 손에 넘기지도 아니하리라.”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를 위로하고 계셨다.

그리고 작은 마음이 확신으로 안위할 수 있도록 붙들고 계셨다.


의사는

잘 뚫리지 않아도, 혈관이 터져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담담히 자신의 일을 끝내고 나갔다.

옆구리가 아물기 전에 다시 가슴에 호수가 꼽혔다.

자꾸 기침을 해서 폐의 불필요한 공기를 빼내라고 일러준 대로 눈물을 닦으며 기침을 해 보았다.

물에 잠겨 있는 호수 끝으로 공기가 빠져 나가는지, 뽀르륵 뽀르륵 소리와 함께 공기 방울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날 밤에 들것에 실려 응급실에서 윗 병동 입원실로 옮겨졌다.

비로서 안정된 정식 병동생활이 시작되었다.




입원 되었으니 치료만 잘 받으면 될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되었다.

밤이 되면 또 열에 시달리며 큰 얼음주머니를 가슴에 안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떨어야 했다.

응급실에서는 식사를 조금씩 할 수 있었는데, 수술 후 병실로 옮긴 후론 다시 입맛을 잃어버렸다.

끼니 때 마다 맛을 모르는 혀 때문에 수저 들기가 고역이었다.

음식물을 삼키는 일도 순조롭지 않았다.

약을 먹기 위해 겨우 두 세 수저를 억지로 뜨는게 최선이었다.

호흡이 한결 편해졌으나, 물 병을 들고서 화장실에 왕복하는 것도 신체적으로 여전히 힘든 일이었다.


병동생활이 나름 안정이 되자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 깊어졌다.
그리움이 차올라 참지 못하는 밤이면,
서러움의 눈물이 베개와 시트를 흥건히 적시곤 했다.

열이 오르내리는 밤이면 얼음주머니를 품에 안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조용히 흐느끼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 병상을 속히 벗어나 아이들 곁에 달려 가고 싶었다.

“하나님,
저를 속히 회복시켜 주신다면 남은 생을 주의 일을 하며 살겠습니다.”

그 서원은 절박함에서 나온 한숨이었지만, 또한 내 건강을 속히 회복받고자 하는
가장 절실한 바람의 고백이기도 했다.


끼니 마다 밥을 앞에 두고 힘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맞은편 침대에서 식사를 하던 아가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언니, 밥맛이 없어도 조금씩은 드셔야 회복돼요.
나도 처음엔 한 입도 못 넘겼는데,
어느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매일 한 숟가락씩만 늘려 보라고.
그렇게 하다 보니 점점 밥맛이 돌아왔어요.
이 병은요… 먹어야 잡을 수 있는 병이에요.
못 먹으면… 죽는 병이에요.”

그녀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공군 소위도, 미싱사 아가씨도 식사를 거부한 채
절망을 껴안고 눈을 감고 누워만 있었다.
그들의 쇠약해져 가는 모습이, 그렇게 죽어가는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날 부터, 나는 매 끼니를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듯 비장한 각오로 수저를 들었다.
겨우 몇 숟가락이 전부였지만,
음식물을 오래 씹어서 액체를 만들어 겨우 삼켰다.
‘한 숟가락만 더…’
그 말은 어느새 내 삶을 세우는 주문처럼 매 끼니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되뇌어졌다.


간절히 매달린 기도와 애쓴 노력들이 쌓이면서,

이십여 일이 지났을 무렵부터 서서히 입맛이 돌기 시작했다.

입맛이 돌아왔다는 건, 다시 건강해 질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들어가자 몸의 기력도 날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호수를 뽑아낸 가슴의 상처 역시 천천히 아물어갔고, 반 공기 정도의 식사도 가능해졌다.
조금씩 숨이 붙자 찬양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전의 폐활량이 아니라는 건 분명히 느껴졌다.

숨이 짧고, 음도 끝까지 붙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또 기도했다.


‘아버지 하나님, 찬양하게 해 주세요. 폐를 회복시켜 주시면, 찬양으로 영광 올려 드리겠습니다.’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시고 훗날 찬양사역으로 이끌어 가셨다.


병원 생활이 석 달이 되던 어느 날, 수간호사는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병원에 더 있으면 오히려 전염의 위험이 있어요. 이제 퇴원해야 합니다.”

조금의 현기증속에서 흔들리는 발걸음으로 친정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지난 넉 달 동안의 일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극한 순간들이 많았음에도, 순식간에 지나온 하나의 터널 같았다.


짧다면 짧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길다면 길었던 4개월의 기간은

하나님이 나를 다시 빚으시는 성화(聖化)의 시간
가장 낮아진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영적 재탄생의 골짜기였다.


언제나

새로운 시작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안에 서기를 간절히 원하는 내 의지를 통해서.


고집스레 나섰던 길,

그 일련의 과정속에서, 한편 단단한 인격적 관계를 형성케 하시려는,

크신 은혜안에서 존재됨을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도 같이 자리했었다.


고백한다.
가장 신속히, 그리고 완벽한 치료의 그 모든 과정은 은혜였음을.

그리고 당신을 부름의 응답이었음을.










작가의 이전글사랑과 생존의 경계에서(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