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바꾸시는 하나님.

침묵의 손길

by 에스더



어느 때부터인가 앞집 아줌마의 욕설이 잦아졌다.
술이 들어가면 소리는 더 커졌고,
그 방향은 늘 우리 집이었다.


나중에서야 사정을 알게 됐다.
남편이 보증을 섰고,
돈을 빌려간 사람은 끝내 갚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말로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는 차용인이 운영하는 공장으로 들어갔다.
며칠 머물며 일을 도우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던 모양이었다.


보름쯤 지났을 무렵,
낯선 남자가 집을 찾아왔다.
얼굴에는 근심이 깊게 내려앉아 있었고,
몹시 지쳐 보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공장 사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남편은 그와 함께 완성된 농을 팔았다고 했다.


잘못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고 했다.
경기 침체로 월급은 밀려 있었고,
생활비에 병원비까지 겹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돈은 나뉘지 않았다.
농을 판 뒤, 남편은 사라졌고
그 남자만 절도 공범으로 몰려 있다고 했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내는 아이를 낳았지만,
미역국을 끓일 여유조차 없다고.


절도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대의 딱한 사정을 알고도
혼자 챙겨 달아났다는 점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 상황은 납득 이전에,
당혹스러움에 가까웠다.


공장 사장은 바로 신고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딱한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도
책임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다만 며칠 안에 남편이 나타나지 않으면
절도 공범으로 경찰에 접수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 남자는
한 가닥의 줄이라도 잡고자
우리 집을 찾아왔다고 했다.


초췌한 눈빛에는 낙담이 깊게 배어 있었고,
무엇보다 남편을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절박함이 서려있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야
한 장면이 떠올랐다.
농을 팔았다는 바로 그날이었다.


남편은 집에 들러
십만 원을 건네주고 나갔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앞집에서 빌린 돈을 갚았고,
내게는 생활비로 준 것이라 생각했다.


몇일전 해산한 산모에게

미역국도 끓여주지 못한다는 말을 듣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겹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몇 만 원을 쓰고 남아 있던 돈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고맙다며 돈을 받아 쥐고는
자신의 사정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급했고, 딱했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말이었다.


남편이 나타나면
반드시 연락을 달라며
몇 차례나
간곡한 부탁을 반복했다.


그러고는
힘없이 돌아섰다.




그날 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의 처신은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새벽 무렵,
나는 꿈을 하나 꾸었다.


비탈진 긴 바위 한가운데로
위에서 아래까지
깊은 골이 파여 있었다.
그 골을 따라 물이
아래쪽의 둥근 웅덩이로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웅덩이 안에는
어린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 웅덩이는 넓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움직임이 살아 있었다.


지켜보는 사이
물길이 막히는 듯하더니
흐르던 물줄기가
점차 가늘어졌다.


웅덩이로 내려오던 물이 끊기자
물고기들의 움직임도 느려졌다.
그대로 두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안되겠다 싶어
막힌 곳을 조금 건드렸다.
그러자 물이 다시 흘렀다.


웅덩이는 금세 물로 차올랐고,
넘친 물이
가장자리로 흘러내렸다.


작은 물고기들은
다시 힘을 얻은 듯
물속을 가로질렀다.


잠에서 깬 뒤에도
그 장면은 또렷했다.
분명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 가족과
무관한 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즈음,
두 아이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먼저였다.
며칠 뒤에는
아들도 따라 했다.
감기 기운은 보이지 않았다.
열도 없었고,
콧물도 없었다.


그런데 기침이 한 번 시작되면
수초 동안
멈추지 않고 콜록거렸다.
시간을 두고
두 아이가 번갈아 했다.


낮보다
밤이 더 심했다.


잠들었나 싶으면
다시 시작됐고,


심상치 않은 기침 소리에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혹시
나와 관련된 일은 아닐지.


폐 질환으로
큰 고비를 넘긴 적이 있는 나로서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회복기에 접어들어
약(아이나)을 복용하고 있던 때였다.


아이들이 기침을 할 때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들이
차례로 이어졌고,


‘혹시’라는 생각이 무겁게 마음을 눌렀고
밤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떤 경우라 해도
그 질병은
나 하나로 끝나야 했다.
그 고통이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일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그랬기에

더욱 더 간절함을 담아
가슴을 졸이며 기도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병원에 데려갈 형편도 없었다.
돈이 없다는 이유는
그 자체로
설명이 되지 않는 막힘이었다.


기도는 닿지 않았고,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난감했고,
답답했다.


그 모든 안타까움은
시간을 두고
심중에서
점점 아픔으로 깊어져만 갔다.




그러던 중
다니던 교회 교단 안에서
신축 헌당을 기념하는
연합 부흥회가 열렸다.
장소는
신설동에 새로 지은 교회였다.


다시 일으켜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진리를 사모하던 때였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부흥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우리는 교회에서 가까운 친정집으로 갔다.


아이들의 기침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밤이 되면 더 심해지는 증세도
변함이 없었다.
잠들었나 싶으면
다시 콜록거렸고,
딸인가 싶으면
아들이 이어서 했다.


사흘째 되는 아침,
아이들 기침이 너무 심하다며
부친께서
병원비를 건네주셨다.


서둘러 소아과로 향했다.
하지만 그날은
정기 휴일이었다.


근처에
다른 소아과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막연히
찾아다닐 수도 없었다.


결국
다음 날 다시 오기로 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부흥회 사흘째.

저녁 예배 중
감사헌금 시간이 되었다.


마음은 있었지만
손에 쥔 것은 없다고 여겼다.
그때
부친께서 건네주신
아이들 병원비가 떠올랐다.


망설이지 않았다.
그 돈을
모두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봉투 겉면에 짧게 적었다.


‘아버지 하나님,
두 아이의 건강을
치료해 주세요.’


이윽고
통성 기도가 시작됐다.
헌금 봉투에 적힌
각자의 기도 제목이 읽혔고,


모두가
그 제목 앞에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아뢰었다.


내 목소리조차
분간되지 않을 만큼
부르짖는 기도 소리.
성전 안은
뜨거운 기도의 공간이 되었다.




이어서
회개의 기도가 흘렀다.


부모의 어리석음을
은혜로 덮어 달라고 구했고,
아직 말도 다 구사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간구했다.


또한

되돌리고 싶지 않은
지난 날 들의 그 고통이
나 하나로 끝나기를 소원했다.


그렇게 울부짖으며
하나님의 돌아보심을 간청했다.


그날 밤,
아이들의 기침이 잦아들었다.
완전히 멎은 것은 아니었지만,
밤사이
어쩌다 한 번씩이었고
분명 이전과는 달랐다.


이튿날 아침,
기침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들은
평소처럼 움직였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밤마다 잠을 깨우고
가슴을 아리게 했던
두 아이의 기침 소리는
그날로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혹시
폐 쪽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지,
하는 걱정과 불안도 함께 사라졌다.


하나님의 위로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위로는
고통을 지워버리는 응답이 아니라,
고통 한가운데서도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는
침묵의 손길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분은

내게 주어진 환경을 돌아보게 하셨고

무엇을 구해야 할지 알게 하셨다.

그리고

긍휼히 여기심의 자리에

나를 앉히셨다.


환경을 바꾸기보다
내가 서야 할 자리를
바꾸시는 분.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기를 원하노라.”
(시편 20: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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