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통과한 신뢰
부친의 환갑잔치와 남동생의 결혼식을 같은 날 치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빈손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체면도 서지 않았고, 초라한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참석 여부를 두고 한동안 망설였다.
그럼에도 평생 한 번뿐인 날이라는 생각에,
가족으로서 얼굴이라도 비추는 것이 맞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서울에 거주한 뒤 모처럼 마주한 가족들은 반가움이 먼저였다.
이전과 달리 회복된 내 모습과 한결 밝아진 얼굴에 모두가 놀라워했고 기뻐했다.
마치 기적과도 같다는 표현으로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걱정하던 눈에 보이는 초라함보다 혈육의 진한 환대가 앞서 있었다.
잔치는 큰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오전,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사춘기 시절, 옆집에 살던 아줌마였다.
그 시절의 그녀는 얌전하고 단정한 인상이었다.
햇볕이 들던 마루에 앉아 손뜨개질로 아이들 스웨터를 짜던, 고생을 모르고 사셨던 분이셨다.
남편의 사업 실패 이후, 생활이 어려워져 고궁 근처에서 행상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생활고에 찌든 듯한 눈앞의 그녀는 기억 속 모습과는 달랐다.
햇볕에 그을려 거칠어진 얼굴과 빈곤의 무게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차림새였다.
한때의 우아함은 자취를 감춘 듯 보였다.
아줌마는 나를 알아본 듯 잠시 눈을 마주친 뒤, 조심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날 잔치 자리에서는 뵙지 못했는데, 참석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인사차 들른 것처럼 보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잔치를 치른 다음 날이었고, 일부러 찾아온 손님을 그냥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순간, 내 몫으로 따로 싸 두셨다던 떡 한 봉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추억 속의 다섯 아이들의 얼굴이 함께 겹쳐졌다.
떡이라도 먹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아이들 역시 많이 자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내 의식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사실 그 떡은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반찬이 없어도
세 끼쯤은 든든한, 맛난 주식이 되어 줄 수 있는, 나름의 양식이었다.
그럼에도 그 순간에는,
눈앞에 서 있는 초라한 모습의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는 마음이 더 앞섰다.
그날 오후였다.
귀가한 나를 붙잡고 주인 집사님이 들뜬 표정으로 소식을 전했다.
무슨 일이 잘 풀렸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오전에 우리 집에 수녀님들이 방문했는데,
집에 사람이 없어, 다시 오겠다며 돌아갔다고 했다.
누구의 추천이었을까.
우리 형편을 아는 이는 주인 집사님과 구멍가게 아줌마뿐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튿날 오후쯤, 두 분의 수녀님이 조용히 방문하셨다.
잠시 대화를 나눈 뒤 돌아가셨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쌀이 방으로 배달되었다.
먼발치에서 부럽게 바라보기만 했던 쌀이었다.
그것도 20kg 두 포대가, 거짓말처럼 방 안에 놓였다.
상황이 선뜻 실감 나지 않았다.
되어진 일이 설명되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고 앉아 있었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 난 듯 했다.
윤기 나는 쌀로 아이들에게 밥을 지어 줄 생각을 하니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뜻밖의 은혜 앞에서 감사로 무릎을 꿇는 순간, 사르밧의 과부가 떠올랐다.
사르밧의 과부는 아들에게 줄 마지막 한 끼를 앞에 두고 있었다.
그 이후의 삶을 더는 상상하지 않았고, 그래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그녀는 엘리야의 말을 들었고, 순종을 선택했다.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왕상 17:13)
선택 이전의 그녀는 죽음을 향해 있었고,
선택 이후의 그녀는 말씀대로 행했다.
믿음은 상황을 분석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말씀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서 비롯된다.
그녀의 선택은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합리적이지도, 안전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말씀 앞에서 계산을 멈추고, 요구된 방향으로 자신을 내어주었다.
모든 조건이 정리된 이후의 결단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는 상태에서도 방향을 트는 선택이었다는 뜻이다.
그것이 인간이 말씀 앞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주석은 이를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자유 의지가 맞닿는 지점으로 설명한다.
그렇게 그녀는 은혜가 임할 자리를 열었다.
그녀는 믿음을 이미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믿음이 향해야 할 방향을 바꾸어 낸 사람이었다.
그 선택 위에 기름과 가루가 마르지 않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가 놓였다.
그것은 '비가 지면에 내리기까지의 복' 이었다.
비가 지면에 내리기까지의 복이란, 한순간의 공급이 아니라
은혜가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돌보심을 의미한다.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왕상 17:16)
그녀의 결단을 통해,
말씀 앞에 믿음으로 반응한 선택이 삶의 실제 안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엄마로서 매 끼니를 앞에 두고 속을 태우며 안타까워하던 현실은 그날로 멈추었다.
한 줌의 떡을 내어놓았을 뿐인데, 하나님은 백 배의 복으로 채워 주셨다.
그것은 분명 ‘비가 지면에 내리기까지의 복’이었다.
그리고 그 쌀이 다하기 전, 영세민으로 급히 선정되어 생계비 지원을 받게 되었다.
가루와 기름이 다시 마를 일 없는 은혜였다.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를 묻고 계신다.
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받을 자리를 먼저 준비하느냐는 질문이다.
그 ‘먼저’는 결국 믿음을 요구한다.
“이제야 내가 알겠노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왕상 17:24)
이 고백은 설득된 믿음이 아니라, 경험을 통과한 신뢰였다.
말로 이해한 하나님이 아니라, 삶 속에서 확인된 하나님에 대한 인정이었다.
동시에 그 기적을 가능하게 한 ‘보내신 분’의 권위를 알아보는 고백이기도 했다.
이방인이었던 그녀!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그녀의 삶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을 걸 것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분께 삶을 맡긴 흔적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