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붙들었던 시간에 대하여
한동안 나는 두 가지 생각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언니의 집을 다녀온 뒤였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나에게 익숙한 삶의 형태가 아니었기에,
그 안에서의 움직임과 생활 방식은 생각보다 또렷한 차이로 다가왔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동선,
몸의 부담을 덜어 주는 구조,
사소한 일상들이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환경은
낯설면서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감각으로 남아 있었다.
모처럼 찾은 언니의 집은
내게는 마치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먼저 온기가 전해졌다.
공간 전체에 고르게 머물러 있는 안정된 기운이었다.
정면에 걸린 성경 구절은
이 집의 중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조용히 드러내고 있었다.
넓고 아늑한 공간,
단정하게 정돈된 인테리어.
그 모든 요소들은 단순한 구조를 넘어
야무진 언니의 삶의 방식과 태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온 것은 주방이었다.
온수와 냉수가 한 번에 조절되고,
따뜻한 실내에서 무리 없는 동선으로 이어지는 일상.
그곳에서는 사소한 움직임조차
힘을 덜어낸 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평범해 보이는 환경이
내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로 다가왔다.
그 집을 나서는 순간,
나는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돌아오는 시간 내내,
내 삶의 환경은 이전보다 훨씬 또렷하게 떠올랐다.
네 식구가 겨우 몸을 누이는 작은 방,
빛조차 넉넉히 들지 못하는 창.
일부 주방일과 세탁은 계절과 상관없이
마당의 수돗가에서 이루어졌고,
겨울이면 얼어붙은 수도를 녹이는 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불편한 몸으로 오가는 얼어 붙은 동선은
늘 나름의 큰 부담이었고,
멀리 떨어진 화장실까지의 거리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늘
그 모든 일상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마음을 눌러 오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조건처럼.
나는 두 가지 생각 사이에 머물게 되었다.
하나는 편리한 환경을 향한 간절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떤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안정에 대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편리한 조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더 넓은 공간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형편이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아도 감당할 수 있었다.
다만,
신체적 불편에서 비롯되는 최소한의 제약만큼은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 바람은 욕심이 아니라,
나름의 신체적 조건에 맞는 환경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기도가 시작되었다.
“아버지, 제게도 아파트를 허락해 주세요.
활동이 불편하오니
사는 동안만이라도 빌려 주세요.”
나는 간절함으로 구했고,
반드시 허락해 주시기를 소망했다.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아파트를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말 그대로 아무런 조건도 구비돼 있지 않은 빈손이었기에 그렇다.
오직
현실적 한계를 넘어선,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불가능이 없다는 믿음뿐이었다.
그렇게 ‘오직 믿음’으로 기도하던 나날 속에서,
일 년이 흐른 어느날 밤,
9시 뉴스 시간에
정부가 영구임대 아파트를 짓고
영세민들에게 공급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응답이라는 것을.
그 뉴스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약속이었다.
빈손으로 떼쓰 듯 간청하는 내게
하나님께서는 정부라는 큰 매체를 통해
응답을 이루신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마침내,
믿음은 삶 속에서 실상이 되었고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환경이 주어졌다.
두 개의 방과 큰 창이 있는 집.
그 창으로 들어오는 밝고 따사로운 빛은
내게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하나님의 사랑의 온기였다.
참으로 만족 스럽고 편리한 환경,
더 이상 이삿짐을 싸지 않아도 되는.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내가 원했던 환경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바라보는 믿음을
먼저 이루고 계셨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믿음은
없는 것을 상상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현재의 실재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그래서 믿음은
미래를 기다리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현재를 살아내게 하는 힘이 된다.
또한 믿음은
단순한 인간의 심리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적 응답이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은혜의 방식이다.
그렇게 주어진 믿음은
하나님의 뜻과 연결되어
그 약속을 이루어 가는 통로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서 11:1)
많은 계절이 지나는 시간 속
단지 내 베란다 화단에는 늘 여러가지 꽃이 피어난다.
질서를 따라 이어지는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여전히 신실하게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조용히 떠올린다.
그리고 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이미,
삶 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