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말기와 유방암2기

암도 같이 걸리는 사이

by 하필이면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언니의 진단명은 폐암 말기였다.

전조증상을 묻는다면…… 있었다.

아무런 전조 증상이 없었다고 하면 속이 조금 편하려나.

몸은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는데 언니는 그걸 애써 무시했다.

외국에 살고 있던 나는 감기였다가, 냉방병이었다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소리들을 바보처럼 그냥 흘렸다.

살이 빠졌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하셨냐며 놀라워 한다고 했었는데도 그냥 그려려니 했다. 내가 국내에 있었더라면 언니의 얼굴을 보았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끌고 갔을 텐데 하는 후회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믿었다.

언니가 나을 수 있을 거라고.

폐암 말기라고 했지만 나는 의학의 발전을 맹신했다.

요즘 암은 암도 아니라는 말을 하면서 인터넷 검색을 했다.

폐암 말기의 생존률 2%.

충격적인 숫자였지만, 그래도 희망을 걸었다.

유투브에는 많은 암 환자들이 자신들의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4기 폐암 환자도 있었다.

훌륭한 외모에 패션 센스, 베이킹도 하고 버스를 타고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4기도 저렇게 산다 이거지.

말기와 4기는 한끝 차이라고 억지로 믿으면서 언니도 저렇게 되길 바랬다.

암 말기 5년차, 9년차 들의 동영상을 보며 희망을 가졌고, 그러다가 먼 길로 소풍 떠났다는 걸 알게 되면 절망 하기도 했다.

설마 정말 죽어버리리고는 꿈에서도 생각 못했다.

죽더라도 병원에서 일년 정도는 골골 하면서 산소 호흡기라도 꽂고 있을 줄 알았다.

뼈전이가 심해 너무 너무 아프다고 죽고 싶다고 했을 때도 모질게 말했다.

“골골 하면서 살아. 이제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니까 아파하면서 살아.”

그러지 말걸.

조금 더 그 마음을 어루만져 줄걸.

외롭다는 말에 조금 더 공감해 줄걸.

씩씩해 지라고 어려운 요구를 서슴없이 하지 말 것을.

간병하는 엄마와 형부 사이에서 스트레스 받을 때 조금 더 언니 편을 들어 줄걸.

후회는 길고 제정신으로 살기가 힘들었다.

처음 진단을 받고 1년도 채 살지 못했다.

남아 있는 시간이 이렇게 짧은 걸 알았다면 나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을까.

한참 언니의 병으로 정신이 없었다.

소5,소3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내게 긴 한국행은 쉽지 않았다.

남편의 양해를 구해 일주일씩 두 번 언니를 보러왔다.

살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죽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요즘 유행이라는 맨발 걷기도 같이 다녔다.

처음에는 표적 항암제의 효과도 있었고 조금씩 좋아질거라고 믿었다.

그러다가 몸이 안좋다 간수치가 높아 단약을 했다 이런 소리를 들었다.

일년에 한번씩 하는 건강 검진을 받았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바로 조직 검사를 받았고 나는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다.

겨드랑이 림파 쪽 전이가 있어서 수술을 하면 앞으로 생활 하는데 불편함이 따를 것이라면서 선항암을 하자고 했다.

정신없이 스케줄이 잡혔고 검사들이 이어졌다.

독성 항암 8회.

그 독성 항암이 끝나면 한달간의 휴식을 거치고 나서 수술을 할 거라고 했다.

어떻게든 밀리지 않고 항암을 하기 위해 꾸역 꾸역 먹을 것을 밀어 넣었다.

악착같이 항암에 매달렸다.

어서 이 독한 항암을 끝내고 휴식기에 언니와 시간을 보내야지 그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언니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3차 항암을 했을 때 언니는 허망하게 가버렸다.

항암을 잠깐 중단하고라도 언니를 더 보러 갔었어야 했을까.

지나치게 긴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괜찮아 지고 있는 나를 보며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 죄책감도 나중에 가서는 희미해 지겠지.

아직은 삶이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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