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 보기도 전에 진 사람 여기 있습니다.

검사만으로도 정말 완벽히 지쳐 버렸다.

by 하필이면


북해도 여행 하루 전날까지 검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가장 기본적인 혈액 검사부터 심전도, CT, 초음파 검사, 유방 MRI…….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피폐해고 있었다.

바늘은 수십 번씩 혈관을 찔러댔고, 유방 초음파는 무려 30분을 했다.

이건 느낌으로 그 정도 걸렸다가 아니라 시간을 체크했다. 암이 있는 쪽 25분 없는 쪽 5분 그랬다.

그냥 헐벗고 누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건만, 최대한 움직임을 줄이고 누워 있는 작업은 생소하게 힘들었다.

이런 검사들을 차라리 하루나 이틀에 몰아서 해 버리면 좋았을 텐데, 최대한 빨리 이것저것 스케줄을 넣고 하다 보니 몇 번이나 병원에 가야 했다.

한국은 좀 몰아서 해주시는 것 같기도 하다.

여행 가기 전날 겨드랑이 생검을 했다.

유방 생체검사 때 전혀 통증이 없었기에 걱정도 안 했는데 웬걸.

너무 아팠다.

그 전 개인 병원 선생님이 프로라서 안 아팠을까?

유방 생체검사보다는 부담이 적다고 했는데, 마취할 때부터 꽤 아팠다.

유방 생검 할 때 마취가 정말 하나도 안 아팠고 괜찮냐고 안 아프냐고 다행이라고 너무 세심하게 물어봐 주셨었던 터라 비교가 되었다.

여의사 선생님(아마도 인턴이겠지?)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랐다.

공부도 잘했는데 얼굴까지 예쁘다니 다 가졌네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천장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다 하고 나서 피를 닦아주며 갑자기 출신이 어디냐부터 온 지 얼마나 됐냐? 자기는 외국어는 하나도 못 하는데 2개 국어하고 부럽다는 둥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저기요 긴장을 풀어주려는 친절이라는 것을 알지만, 정말 그 질문 일본 살면서 백번은 더 들은 거 같거든요.

농담으로 대놓고 말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 말할 기분도 아니었다.

앞으로 이거보다 열 배 스무 배쯤은 더 아파야 할 수술, 항암 등 남아있는 숙제가 한가득이거든요.

소심하게 맘속으로만 의료진에 한껏 짜증을 냈다.

그냥 이상하게 화가 치밀었다.

이 상황이 너무 엿같았다.

진통제를 먹기 위해 꾸역꾸역 햄버거를 시켰다.

맛있을 줄 알았는데, 쓰레기를 씹는 기분이었다.

이건 심리적인 건 아니고 그냥 웬디즈가 그지같은 맛인듯하다.

억지로 꾸역꾸역 먹고 알약을 삼키고 티셔츠는 입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블로그에서 봐서 색이 예쁜 셔츠와 급 세일 하는 남아 160 바지를 보고 오호 득템 하면서 두 개를 샀다.


잔인하게도 삶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

유방암 환자인 나의 시간도 째깍째깍 잘도 흘러간다.

운동을 지독히도 싫어했는데, 아침마다 한 시간 이상씩 산책을 하고 그만둘 일의 마무리를 하고 있다.

아무것도 확정된 일은 없다.

내일은 가족 여행이고 짐을 싸야 한다.

숨이 턱턱 막히게 더운 날씨였는데 홋카이도는 추울 지경이라고 해서 기대를 걸어본다.


암은 낙제점을 받은 시험 결과지 같았다.

그냥 교통사고 같은 거라고 운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위로가 되지 못했다.

인생을 잘 못 산 것 같았다.

천사표는 아니지만 누군가에 해를 가한 적도 없고 물건을 훔친 적도 없었는데 난 왜 이런 몹쓸 병에 걸린 걸까?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언니를 보러 가기로 했었다.

마지막으로 언니를 보러 갔을 때만 해도 같이 산책을 했었는데 몸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폐에 물이 차서 몇 번이나 빼기도 했고 스탠스(?)를 삽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치료 방법조차 정확히 정하지 못한 나는 뭔가를 결정할 수 없었다.

나의 병을 알릴지 말지 정해 했지만, 그것도 어려웠다.

“나도 암에 걸렸으니 우리 서로 열심히 해보자.”

이렇게 말할까?

하지만 착한 언니는 마음 아파하겠지.

오랜 고민 끝에 친정 식구들에게 비밀로, 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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