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투 음성, 호르몬 양성
힘든가? 초조한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날들이 지나갔다.
이상하게 답답하고 조급했지만, 시간은 또 잘 갔다.
“예약은 일단 잡았는데 그 전에 결과 나올 수도 있으니까 수시로 전화해서 확인해 보세요. 결과 나와 있으면 비어 있는 날짜 시간으로 예약 잡아 줄게요.”
융통성 없기로 소문 난 일본에서 이런 말이 참 놀라웠다.
남편은 삼시 세끼를 안 먹으면 큰일 나는 사람이다.
옛날 옛적에 히트 쳤던 내 남자의 여자에서 나온 홍준표 같은 남자다.
아 이렇게 연식 뽀록 나나.
“밥 안 먹어?”
“나중에.”
남편이 점심을 굶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암이란 녀석 심각한가 보다.
점심시간 넘겨서라는 말을 듣고 시계만 보고 있다가, 두 시가 넘어 전화했다.
“결과 나왔습니다. 이 시간 보호자 동반 오실 수 있으세요?”
이 말에 아니라고 대답할 사람이 있겠는가.
당장 되는 시간이 애들이 학교 마칠 시간 전이어서 학교에 전화해 막내를 집에 데려다 놓고 병원으로 향했다.
혹시나 기적적으로 섬유 선종 같은 거라면 이렇게 단 며칠이라도 빨리 알려줄 리가 없다.
이미 유방암이라는 소리도 들었고, 정황이 빼도 박도 못하긴 했는데 그래도 그래도 설마 했다.
섬유 선종은 눌렀을 때 딱딱한 부분이 도망가는데 암은 뿌리 박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눌러 봤는데 도망을 안 갔다.
아.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처음으로 격렬하게 떨려 오기 시작했다.
아.
내가 암이면 어떡하나.
언니는 어떡하지.
엄마한테 어떻게 말하지.
“김 상, 유감이지만 암입니다.”
림프 전이도 있어 2기 정도.
허투 음성 호르몬 양성이라고 했다.
허투가 뭐지?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갔다.
허투(HER2)는 유방암 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단백질 수용체로, HER2 유전자 과발현 여부를 나타낸다고 한다.
항암은 안 해도 될 수도 있다고 하셔서 일단 한시름 놓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항암을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라, 호르몬 양성에 독성 항암에 효과가 크지 않아 그런 거였다.
좋은 게 아니었다.
어쨌든 정확한 건 더 검사를 해봐야 한단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검사를 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주사를 맞고 피를 봐야 하는지 이때는 미처 몰랐다.
여기 병원에서는 치료는 할 수 없으니, 소개장을 써주셔서 큰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대학병원이 속해 있는 병원이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암 치료 만만치 않다.
치료야 의사도 아니니 시키는 대로 잘 따라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만만치가 않았다.
처음 찍어보는 MRI, CT, 생각도 나지 않는 검사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치료 계획이 세워졌다.
이틀 후면 첫째가 그렇게도 노래를 부르던 북해도 가족 여행이 잡혀 있었다.
비행기표며 호텔이며 취소하면 출혈이 크겠지만, 남편은 취소하고 싶어 했다.
나의 대답은 그냥 가자였다.
얼마나 오랜 시간 아니 어쩌면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초등학교 5학년 첫째가 고대하던 여행이니까 그 맘은 좀 지켜 주고 싶었다.
앞으로 엄마 역할을 잘 못할지도 모르니까.
유방암이 아무리 생존율이 높다고 해도 막상 걸려보니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