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착각
나는 고통에 강한 편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단 15일의 입원 기간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
입원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일단 입원하면 수도 없이 바늘을 찔러댄다.
그놈의 피검사는 어찌나 많이 하는지, 링거를 꽂고 또 꼽고.
간호사 선생님이 내가 너무 얌전하고 이쁘다며 손등에 붙인 링거를 간단하게 붙여 주었다.
밤에 잘 때가 문제였다.
잠버릇이 심했던 내가 몸부림을 쳐대서 링거 바늘이 빠졌다.
내 침대는 피로 붉게 물들었다.
놀랍게도 나는 엄마보다 놀라지 않았다.
엄마 지인 아들이 피부과에서 일한다며 점을 빼준다고 했다.
의사가 마취 없이 빼면 흉이 안 진다고 해서 스무 살인가? 마취 없이 했다.
엄마와 언니는 마취 없이 한다고 했다가 도중에 너무 아프다고 멈추고 마취했다.
나보고 독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나는 아이 둘을 자분 했음에도 아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소리 지르셔도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소리 지른다고 안 아픈 게 아니잖느냐고 대답했다.
쓸데없는 맵부심처럼 나는 그런 종류의 말도 안 되는 감정이 있었다.
유방암에 걸렸지만 수술 하고, 항암하고 그러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아픈 것쯤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고 혹시 정말 운이 나빠 전이에 전이를 거쳐 죽게 된다면……
공기 좋은 곳에 들어가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친구 시어머니가 조직 검사도 힘들어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코웃음 쳤다.
“너니 어머님 너무 엄살이 심하시다. 그럼 살 찢는데 그 정도도 안 아프니?”
부작용이 심하다고는 하나 끝이 있고 나는 언제나 그렇듯 잘 견뎌낼 수 있다고 착각했다.
선 항암 1차를 예약해 놓고 갑자기 고통이 찾아왔다.
누가 내 위에 올라타서 오른쪽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이게 한번 도려내고 말았으면 괜찮았는데 진통처럼 연속해서 도려내고 또 도려냈다.
나는 진통제를 잘 먹지 않고 감기약도 잘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조직 검사를 한 병원에서 지어준 진통제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 진통제가 있었지만 나는 참아 보기로 했다.
나는 아픔 따위 잘 참을 수 있으니까.
이런 건 잘 견디는 애니까.
나는 독하니까.
지독한 착각이었다.
3시간 만에 나는 굴복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멍청하고 오만했는지를.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쉴 틈 없이 칼로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이었다.
기운이 없어 기어서 1층으로 내려갔다.
후에 남편이 깨우지! 그랬냐고 했지만 그건 속 편한 소리였다.
1초라도 빨리 진통제를 손에 쥐어야 했다.
진통제 두 알을 삼켰다.
먹자마자 효과가 있는 걸로 착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진통제는 보통 30분 정도 지나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프기 전에 잽싸게 먹어야 한다.
기력이 없어 침실로 올라가지 못하고 소파에 누웠다.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기절하듯 잠들었다.
진통제는 몇 번 먹을 것이 없고 다음 항암 오리엔테이션(용어조차 지랄 같다. 항암 하는데 오리엔테이션이 뭐냐) 까지 삼사일은 남아 있었다.
그날 대학병원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알고 보니 평일이었으나 연휴여서 그런 거였다.
뭔 놈의 휴일이 이렇게 많은지.
이럴 때 일본이라서 짜증이 올라왔다.
불안함은 극도로 향했다.
대학병원 주제에 아플 때 전화조차 연결되지 않는다면 어찌 믿나 싶었다.
항암은 부작용이 높기로 악명이 높은데 걱정은 스멀스멀 목을 조여왔다.
다음날 전화를 하자 전화를 받았고 담당의의 출근날이 아니었지만, 다른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봐 주시고 일단 일단락이 되었다.
암은 경고한 것인지 제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 통증이 사라졌다.
암이 나에게 경고를 한 것처럼 다시 통증은 사라졌다.
딱 이틀 아프고 만 것이다.
짧다면 짧은 이틀.
하지만 두려움을 알았다.
나는 고통에 강하지도 않은, 그냥 한낱 미물일 뿐이었다.
갑자기 확 번지지는 않을 거라는 말에 무념무상이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조급하다.
조급해서 미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