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랑 다섯&여섯"을 읽고 쓴 자기 사랑 노트입니다.
여름방학 동안 아이들이 외할머니댁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은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 어디에 다녀왔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를 쏟아내듯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 큰딸이 갑자기 울먹였다.
“엄마, 나 외할머니집에서 좀 힘들었어. 할머니가 잘해주셨는데… 뭔가 너무 힘들었어. 나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
나는 아이의 눈물이 놀랍지 않았다. 당황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그 말의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며 ‘조장자–의존자 관계’라는 개념을 접했고, 그 순간 나는 그 말이 나와 얼마나 가까운지, 내가 걸어온 치유의 길과 얼마나 겹쳐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내 안에 있던 상처가 선명하게 보였다.
세 달 전 글쓰기 모임에서 ‘더원트카드’를 뽑았을 때, 내 앞에 놓였던 것은 [불안] 카드였다. 그때 나는 단순히 ‘딸을 잘 키우고 싶어서 불안한 엄마’로만 나를 보았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져서, 딸의 감정까지 대신 짊어지고 안정까지 주고 싶어 하는 엄마.
그런데 글을 쓰고, 떠오르는 장면을 따라가다 보니 오래 전의 집이, 방의 모양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까지 아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 안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고, 동시에 나와 엄마의 관계를 마주했다.
엄마는 언제나 자신을 마지막에 두셨다.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고,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나서서 돕고, 늘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선택하셨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헌신한 대상은 내 오빠였다. 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늘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가졌다.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 내가 돈을 벌어도, 결혼을 해도, 엄마 생각은 늘 따라붙었다. “엄마가 저렇게 사는데, 나는 괜찮아도 되나?” 하는 죄책감 같은 것.
시간이 흘러 오빠가 성인이 되고, 더는 오빠가 의존자가 되지 않는 순간이 왔다. 그런데 최근 나는 알게 되었다. 오빠의 쌍둥이 아들 중 한 명, 그리고 내 큰딸이 할머니가 내어준 새로운 의존의 끈을 받은 것 같다는 사실을.
엄마는 나에게 자주 전화를 건다. 특별한 용건은 없다. 그냥 오빠의 아들 이야기를 하고, 다시 반복하고, 그러다 전화를 끊는다. 어릴 적 엄마가 내게 늘 오빠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이제는 조카이야기를 하신다. 그때 처럼 지금도 엄마의 세계는 누군가를 돌보고 걱정하는 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엄마의 방식이었고, 때로는 나를 괴롭히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 큰딸이 외할머니댁에서 힘들었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모든 것을 다 해주려는 부담스러운 호의, “이만큼 받았으니 나도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 굳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거절할 수 없었던 답답함,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을 느끼는 자체가 죄송한 마음. 그 복잡한 감정들을 아이가 경험하고 온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딸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싶어 했던 마음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이어진 대물림이었다. 희생과 집착이 사랑이라고 믿고, 그것이 완벽한 엄마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나를 갉아먹고, 딸의 삶까지 망가뜨릴 뻔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하고, 내 안의 어린아이를 끌어안으며 위로한다. 그렇게 쓰다 보니, 엄마가 보였고, 딸이 보였고, 내가 보였다. 글을 쓰다가 우는 내 모습을 아이들도 보았다. 감출 수 없을 만큼 눈물이 터져 나왔고, 그 울음을 함께 나누며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엄마 너무 불쌍해.”
“아니야. 엄마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야. 이제 엄마 마음을 잘 알고 회복하는 중이야. 그래서 진짜 엄마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거야.”
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두 딸은 내 품에서 함께 울었고, “엄마, 할머니도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건넸다.
얼마 전 나는 엄마와 통화를 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 엄마는 어렸을 때 어떻게 자랐어?”
“왜?”
“나 글 쓰러 다니잖아. 글을 쓰다 보니까 자꾸 어렸을 때 장면이 떠올라. 옛날 집 모양까지 다 생각나더라. 엄마 그때 오빠 걱정 많이 했잖아. 학교 갈 때 창문으로 오빠 나가는 거 보고 그런 거, 기억나?”
엄마는 곧바로 그때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랬지. 오빠가 잠이 많았잖아. 지각할까 봐 내가 창문 열고 보고 있었어. 아이고, 지금 생각해도 내가 참 대단하다니까. 너 고등학교 때 유학 보낸 거, 그때 다들 말렸는데 엄마가 혼자 했잖아. 비자받으러 서울도 몇 번을 오갔는지. 너 그거 다 기억하지?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해. 진짜 그런 엄마 없다니까.”
엄마는 그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한 번 하시더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그때 엄마 아니었으면 네가 어떻게 유학을 갔겠니. 엄마가 겁이 없었던 거지. 지금은 상상도 못 해. 아휴,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때는 내가 진짜 대단했어.”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마음이 공허했다. 엄마는 자신이 얼마나 헌신했고 대단했는지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지만, 내가 듣고 싶었던 건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엄마의 외로움, 엄마가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 가족이라는 이름 속에서 붙들고 있던 힘겨운 감정들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감정을 꽁꽁 숨겨놓은 문이 있는 줄 모르셨다. 아니, 문이 있다는 걸 알기에 더 꼭꼭 잠가두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전화를 끊고 많이 슬펐다. 내가 내면아이를 만나던 날 만큼 엄마의 닫힌 문을 알게 된 그 순간에도 눈물이 쏟아졌다. 불안 카드 속 울면서 가면을 들고 있는 사람은 엄마였고, 나였고, 먼 훗날 내 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더 단단히 다짐한다. 이 대물림의 끈은 내 세대에서 끊어야 한다. 내 내면아이를 더 끌어안고, 그 아이가 하고 싶었던 말, 듣고 싶었던 말을 기록한다. 혹여 시간이 흘러 잊힐까 봐, 꼭 붙잡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