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가이드로서 참가한 패키지의 여운
가이드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는 사실 단순했다.
이미 지인들이 먼저 하고 있었고,
나 같은 성격이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해외에서 살면서 당장 돈이 필요했는데,
꽤나 수입이 괜찮은 일이라 끌렸다. (능력제 인센티브 방식이긴 하지만)
사람 대하는 게 어렵지 않았고,
특히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익숙했던 나였다.
이 세 가지 이유로, 가이드는 생각보다 쉽게 내 손에 들어왔다.
면접을 보고 일을 시켜주겠다는 확답을 받자
나는 워홀러의 끝에서 ‘재정착러’가 되었다.
처음 따라간 보조 가이드 투어는
25명 남짓의 부부 동호회 패키지였다.
내 나이는 29살이었지만 앳돼 보이는 얼굴 덕에
손님들이 딸처럼 챙겨주셔서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사수 가이드님은 굉장히 FM 스타일이셨다.
루트 짜는 법, 동선 조절, 손님 대하는 팁까지
정석대로, 아주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몇 년 전, 남자친구랑 보라카이에서 만났던
현지 가이드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대만은 휴양지가 아니라 '관광지'라
설명도 많고 발로 뛰며 진행하는 일이 많았다.
에너지 소모도 꽤 큰 편이었다.
유학생들이 돈 좀 벌겠다며 시작했다가
하루 만에 도망치거나, 눈에 불을 켜고 돈만 벌다
감정 소모에 지쳐 떨어져 나가는 일도 흔했다.
이 일은 성격의 외향성보다,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빠른 진행과 성격의 유연함이 더 중요했다.
소위 말하는 기존쎄는 오히려 이 일이 맞지 않고
담백하고 유연한 사람이 오래 버텼다.
회사원만 하던 내가 과연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은 많았지만,
여행 온 사람들의 들뜬 표정을 보고 있자니
‘재밌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첫 투어.
사수의 유려한 설명과 매끄러운 진행 덕에
큰 문제 없이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는데,
마지막 날, 관광버스에서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투어의 마지막날 관광버스답게 노래를 부르시고 싶다하여
대만 버스에서 한국 노래방이 시작되었는데
한참 손님들끼리 재밌게 노시다가
“우리 막냉이도 한 곡 해봐바~!”
쭈뼛쭈뼛 겨우 앞으로 나간 내가
갑자기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버지! 대한민국에서 꼭 사야 되는 거 뭐예요?!”
“응? 뭐라는 거야?”
“아파트~~~!!! 별빛이 흐르는~ 다리는 건너~ 으쌰라 으쌰~”
손님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조용히 있던 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마이크를 잡고 흔들고 있으니
그 광경이 더 웃겼나 보다.
내 눈앞엔 누군가 흔들고 있는 5만 원짜리 한 장.
왠지 그게 용기를 줬는지도 모르겠다.
호텔로 돌아와 사수님이 말했다.
“야, 너는 조용하게 생겨가지고 깡이 있네.
가이드 잘하겠다야.”
그 말이 참 오래 남는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진짜 가이드를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