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혼 가정의 여행이야기
가이드를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무렵,
제주도에서 온 가족 단독 팀을 맡게 됐다.
여러 팀이 섞인 패키지와 달리, 단독 팀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일정도 일정이지만, 감정선도 한 팀으로 보니까.
공항에서 만난 가족들은 도착부터 표정이 모두 안 좋았다.
출국장에 함께 있던 가이드들이 어깨를 툭 치고 갔다 (힘내라는 의미였다)
도착부터 표정이 안 좋은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경우 대부분 난항이 예상된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나는 일정과 안전사항부터 설명했다.
분위기는 냉랭했지만 설명은 잘 들어주었다.
조금은 안심하며 점심식사 장소로 향했다.
우육면. 입에 안 맞으면 여행 첫날부터 무너지는 메뉴다.
다행히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 틈에 어머니께 조심스레 여쭤봤다.
“출국 전에 무슨 일 있으셨어요?”
“늘 이용하던 여행사라 그냥 맡겼는데, 나중에 보니 말도 안 되게 비싸게 예약했더라고요.
팁도 포함 안 돼 있고… 따지느라 분위기가 엉망이었어요. 가족들도 다 알아서 기분이 좀 그랬죠.”
그제야 이해가 됐다.
단독 팀의 경우, 가이드는 계약금액을 모른다.
여행사가 중간에서 다 정리하니까.
“그래도 여행은 즐겁게 만들어드릴게요.”
나름 자신 있게 말했다.
투어는 다행히 매끄럽게 진행됐다.
날씨도, 일정도 모두 순조로웠다.
그런데 이 가족, 뭔가 묘했다.
아이들은 고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네 명.
겉으론 평범한 형제 같았지만, 어딘가 어색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투어 중 눈치로 알게 됐다.
두 분은 각자 자녀를 둔 상태로 재혼한 부부였다.
첫날엔 몰랐다.
아이들끼리도 무난했고, 부모님도 잘 맞는 분들 같았다.
하지만 둘째 날, 균열이 생겼다.
어머니 쪽 막내딸이 어떤 일로 감정이 상했는지
“엄마아~ 엄마아아아!”
하며 울먹이며 어머니 품에 안겼다.
그 모습을, 같은 나이의 아버지 쪽 장녀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오래 남았다.
엄마 품에서 울 수 있는 아이,
그 걸 조용히 바라보는 아이.
둘은 친구처럼 지냈지만,
그 눈빛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서로 자영업 하다가 같은 동네에서 알게 됐어요.
아이들도 또래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됐네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아이들이 다 밝고 예뻐요. 좋은 여행 되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날에는 아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나도 학생 때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어.
근데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건 끝까지 해보는 스타일이었거든.
너희도 그런 거 하나씩 꼭 찾게 되길 바란다.”
그 말을 듣는 아이들의 눈빛이 빛이 났다.
여행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가족들은 “여행사 건은 우리가 한국 가서 알아서 할게요”라며 웃으며 출국장으로 향했다.
그 가족의 여행은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딸 눈빛을 잊지 못한다.
누구는 품에 안길 수 있었고, 누구는 멀찍이 서서 보기만 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 같은 온기를 누릴 수 있을까,
엄마 아빠의 역할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걸까..
같은 장면을 보며 전혀 다른 마음을 품던 그 눈빛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