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커플과 그 지인들이 만든 파국의 패키지
일반적인 패키지 여행엔
젊은 커플이 잘 오지 않는다.
3박 4일짜리 투어에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녀 네 명이 등장했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알고 보니 구성이 특이했다.
남녀 커플 + 여자친구의 사촌오빠이자 남자친구의 친구 +
여자친구의 동성 친구(남자친구 있음).
“그냥 짝 맞추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라며
다들 웃는 얼굴이어서 분위기는 좋았다.
첫날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지나갔다.
저녁엔 호텔에 체크인시키고
“내일은 자유 일정이니 즐기시고,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아니 새벽 1시쯤
여자친구의 동성 친구(여1)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이드님… 살려주세요!! 빨리 와주세요!!”
“네?? 무슨 일이신데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우당탕 소리,
그리고 바로 끊긴 신호음.
머리가 하얘졌지만 일단 짐을 챙겨 택시를 잡았고
동시에 호텔에서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손님들끼리 싸움이 났어요.
경찰 불렀고… 상황 심각해요.”
경찰?
경찰을 불렀다고?
나는 사무실에 긴급 보고를 올리고
호텔로 급히 향했다.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방 안은 말 그대로 피범벅이었다.
남자 둘이 술을 마시다 싸움이 났고,
그중 한 명은 술병을 깨 유리조각을 들고
상대에게 달려들었단다.
눈 옆이 찢어지고 손목에 상처가 난 상태.
응급실로 실려간 건 다행히 한 명뿐이었다.
도착한 나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피를 흘린 남자는 커플의 남자친구였고,
옆엔 여자친구가 울고 있었다.
의사는 봉합이 필요하다고 했고,
골절여부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 수속을 밟는 동안
나는 그 사이에서 통역을 맡았다.
남자는 술이 덜 깬 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고
여자친구는 눈물만 흘렸다.
봉합이 끝날 시점에,
여자친구의 동성 친구(여1)가 와서 상황을 설명해줬다.
싸움의 원인은,
술을 마신 두 남자 사이에 일어난 감정 충돌이었다.
여자친구의 사촌오빠이자 친구(남1)가
“네가 내 동생한테 너무 막 대하는 것 같다.
남자친구로서 아닌 것 같다”라고 했고,
술에 취한 남자친구(남2)는 화를 참지 못해
술병을 깨고 유리조각을 휘두른 거였다.
그러니까…
서로가 친구이면서도,
정작 감정선은 완전히 어긋나 있었던 셈이다.
나는 물었다.
“그럼… 여자친구 친구분(여1)은 이 남자 두분을 원래 알았던 사이예요?”
“아뇨. 이 여행 와서 처음 본 사이예요.
저도 여친 친구니까 따라온 거고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 모든 상황이
단 며칠의 여행에서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병원비를 정산하고,
그 커플을 다시 호텔로 보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푹 쉬세요.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새벽 4시,
나는 집에 돌아와 멍하니 씻었다.
다음날, 여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저희… 한국 돌아갈게요.”
남은 일정 포기하고 조기 귀국.
환불은 불가하다고 안내했지만,
그들은 상관없다고 했다.
호텔은 난장판이었고,
다른 손님들도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같은 호텔 투숙 중이라 난동 소리 다 들음)
그 와중에 여자친구의 사촌오빠 (남1)가
호텔 파손에 대한 배상비 400만 원을 전액 지불했다.
투어 마지막날 여자친구사촌오빠(남1)과
여자친구의 친구(여1)은 어색하게 패키지 투어의 버스에
각자 탑승했다.
그 날 스케줄이 꼬여서 마지막 관광지를 늦게
도착해서 야시장 투어로 급하게 노선을 틀었다.
손님들께 죄송하다고 했고 내가 사비로 야시장에서
먹을 것들을 사드렸다.
그리고 샌딩 이후 나는 여자친구의 친구(여1)로 부터
마지막 관광지를 못 간걸로 컴플레인을 받았다.
그 투어는 정말 많은 걸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진짜 극한의 돌발상황과
인간의 다양한 면면들.
사람의 또 다른 면은,
여행이라는 비좁은 무대에서
진짜 얼굴을 드러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