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족의 비밀(?) 이야기
대만은 여름이 비성수기이다.
대략 6월부터 8월까지 매우 덥고 습하기 때문이다.
대만은 휴양지가 아니라 '관광지'이기 때문에
오히려 여름엔 비성수기로 초저가 패키지가 등장하는데
여러분이 가끔 인터넷이나 홈쇼핑에서
에엥? 어떻게 저런 가격이 나와? 싶은 패키지들이다
이런 패키지인 경우
바로 비행기+숙박 권 이외에 모든 건 옵션투어로 진행된다.
기본식사 이외에 대부분의 투어는 옵션투어로 진행되고
옵션투어를 선택하지 않으면 차에 남아있게 되거나
아예 동의서를 작성 후 호텔밖에 나오지 않는 손님들도 계신다.
초저가 패키지인 경우 가이드는 날을 바짝 세우고
입국장에서 손님들이 맞이하게 되는데
실상 '만만치 않은 손님'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때는 8월 초였다.
매우 무더운 여름이었고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여름날
20명이 넘는 패키지 손님들을 맞이했다.
사실 초저가 패키지라 해도 손님들은 대부분 옵션투어를 진행하고
정말 원하지 않는 1-2개의 투어만 선택하지 않는데,
한 가족 팀이 처음부터 옵션투어를 모두 진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셨다.
당황했지만, 그런 경우는 저도 처음이긴 한데 문제가 없기는 하나
그럼 계속 차에 있으셔야 하고, 기사님도 주차하신 후에
시원한 곳에 가서 따로 쉬시러 가기 때문에 더워서 차에 계속 있으실 수도 없다고 안내드렸다.
가족분들은 당황스러워했지만
일단 모든 옵션투어를 진행하지 않는 걸로 원하신다 하여
알겠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때부터 그 가족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가이드 입장에서 돈도 돈이지만,
단체로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개별로 움직이시다가
길을 잃으시거나 안전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족을 눈여겨보니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보였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그 정도 아이들은 입국부터
꺄르륵 대며 온갖 장난을 치고 가끔 기분이 좋아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데
그 아이들은 너무나도 조용했고 말 수가 적었다.
유난히 땅을 많이 쳐다보았고
내가 설명할 때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내가 말을 먼저 걸어도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얼버무리곤 했다.
음.. 이상하다.. 이상해.. 여행을 왔는데 참 수상히도 조용한 가족이었다.
나는 속으로 '여행오기 전에 대판 싸웠나.. 뭔 사건이 있었나..'
그렇게 첫날은 지나가고
둘째 날이 되자 손님들을 데리고 와서 집합장소에 있는 가족들을 보니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부채질만 하며 서있었다.
'설마.. 아무 데도 안 가고 여기 계속 있으셨던 건 아니겠지..'
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가이드가 직접 손님에게 뭐 하고 있으셨어요?라고 묻는 것도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모른 척하며 지나왔다
밥을 먹고 다들 더위에 아이스크림이나 음료를 마실 때에도
가족들은 호텔에서 가져온 물만 마셔댔다.
그리고 야시장에 갔을 때 나는 경악했다.
그 가족들이 정말 아무것도 사지도 먹지도 않는 것이었다.
내가 가이드 경력이 긴 건 아니지만
그런 가족은 정말 처음 봐서 너무 놀랬다.
진짜.. 진짜... 돈이 없어서 안 드시는 건가..???
속으로 별의 별생각이 다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기 위해 꾹 참았다.
가이드 입장에서 옵션투어를 안 하는 손님이 이해 안 갈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도 손님의 자유 선택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며,
특히나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물건은 파는 거에 있어서는
정말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정교한 스킬이 필요하다 (돈은 벌어야 하는 부분이기에 ㅎ)
옵션투어를 안 하는 것도, 쇼핑을 안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지만
야시장에 와서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이건 너무 충격적인 부분이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자서 당황스러웠던 부분이었다.
집합장소에 아이가 먼저 와서 화장실을 묻기에
화장실을 알려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여기 음식이 입에 안 맞니?"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아니요.. 괜찮아요.."
그렇다면 진짜 돈을 안 쓰시기로 작정한 걸까..
마지막날이 되어 쇼핑센터에 들어갈 때
그 가족의 부모님께서 "죄송한데 아예 안 들어갈 수는 없나요?"
"정말 죄송한데, 쇼핑센터도 투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안 들어가실 수는 없고
쇼핑센터 안에 의자가 있어 거기서 쉬실 수 있기 때문에 같이 들어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손님들을 안내한 후 그 가족에게 갔다.
어머님께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님.. 제가 진짜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순수하게 제가 개인적으로 묻고 싶어서요,
여행 오셔서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시는 게 이 관광지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신 걸까요?
아니면 혹시 다른 이유가 있으신 걸까요?"
나에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충격적인 말이 돌아왔다.
"솔직히 저희는 해외여행 처음이에요, 여기 오고 싶어 온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방학마다 친구들은 어디 갔다 왔다 말하는데 아는 척도 못하고
그런 이야기만 나오면 애들이 더 위축되는 거 같고 미안하기도 해서
가격대도 좋고 하길래 와본 거예요"
아........ 인터넷 어딘가에서 한번 봤던 그 말이
진짜였다니.. 애들이 방학만 되면 어디 간다고 말하고
안 가면 개근거지라고 놀리는 게 진짜라니..
나는 대꾸할 말을 못 찾고 뚝딱거렸다
"아 예..... 제가 미혼이고 아직 어려서 그런 줄은 전혀 예상을 못했네요.. 네네.."
그렇게 그 패키지 팀을 보내고 아주 오래도록
아이들의 풀 죽음과 나이대에 맞지 않은 조용함이
마음속에 남아있다.
나는 그 아이들이 그 여행을 어떻게 기억할지 가끔 상상해 본다.
‘그때 대만 갔었지’라는 말에, 어떤 표정이 따라붙을까.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 말도 없던 그 시간들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기를.
그 조용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한 순간을 남기고 갔기를 바란다.
안녕하세요, 유니로그입니다.
저는 현재 브런치에서 2개의 연재를 진행 중입니다.
[패키지 투어에는 없는 이야기]
실제 대만 가이드로 일하며 겪었던 웃지 못할 사건들과 사람들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tourguidestory
[대만 청춘일기, 나를 찾아가는 낭만]
대만에서의 워홀·생활 속 외로움과 청춘의 고민, 그리고 스스로를 찾아가는 기록
https://brunch.co.kr/brunchbook/dear-taiwan
이번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다른 에피소드들도 함께 읽어주시면 더 즐겁게 이야기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