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달 동안 임신을 숨긴 여고생의 여행
패키지여행 가이드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상황을 겪는다.
그중에서도 아직까지 잊을 수 없는, 사무실에서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건이 있다.
어느 날, 엄마 친구들끼리 모인 팀이 패키지여행을 왔다.
그중 한 분은 고3이 될 딸을 데리고 왔다.
첫날은 여느 팀과 다름없이 웃고 떠들며 일정을 소화했지만,
그 딸아이만은 표정이 어두웠다.
'엄마 따라와서 재미없구나.'
나는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둘째 날은 관광지 간 이동 거리가 길었다.
(관광지에서 다른 관광지로 이동시간 1시간씩 소요)
첫 관광지를 다녀온 뒤, 그 학생이 배가 아프다고 했다.
혹시 전날 먹은 것이 문제라면 약을 사주겠다고 했지만,
“괜찮아요”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얼굴은 점점 창백해지고, 손이 떨렸다.
혹시 생리통일까 싶어 진통제를 건넸지만 역시 거절했다.
점심을 먹고 이동하는 버스 안,
다른 손님들은 하나둘 잠들었지만 그 학생만은 눈을 감지 않았다.
세 번째 관광지에 도착했을 때,
그 학생은 차에서 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여기까지 와서 뭘 쉬냐”며 아이를 데리고 내렸다.
소원을 쓰고 천등을 날리는 체험이었는데,
그 학생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진통제를 주머니에 넣어주며 “참지 말고 먹어”라고 했지만,
그 후 화장실에 간 학생은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너무 오랫동안 나오지 않아 걱정되어 들어갔더니
“배가 너무 아파요.”
“그럼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숙소로 갈래?”
"휴... 아니요"
짧은 대화 끝에 다음 관광지로 이동했지만,
그 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학생의 다리 사이로 피가 흘렀다.
조금이 아니라, 바닥이 흥건해질 정도였다.
순간, 어머니와 학생,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얼어붙었다.
다른 손님들을 내려 대기시키고, 119를 불렀다.
구급차에 실려 간 학생은… 복통이나 생리통이 아니라,
출산을 시작한 상태였다.
숨겨진 10개월
엄마에게 임신 사실을 숨긴 채,
열 달 동안 복대를 하고 지낸 아이였다.
출산 예정일이 언제인지조차 모른 채,
그 복대를 두른 상태로 여행을 따라온 것이다.
아기의 아버지는 21살 대학생이었다.
책임질 수 없다는 말을 들었고,
아이 엄마는 지우는 것도 두려웠다고 했다.
출산 후 엄마는 아이에게 애 아빠가 누구냐 다그쳤고
전화번호를 끝내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것은 남자아이가 아닌 그 아이의 엄마였고
자기들은 전혀 금시초문인 이야기이니,
알아서 하라고.. 그게 통화의 끝이라고 했다.
그 후 엄마와 딸은 귀국하지 못했고
외국에서 태어난 아기를 한국으로 데리고 가려면
출생신고서와 번역본을 한국 대사관에 제출해
입국 허가를 받아야 한다.
10일 만에 허가가 떨어져,
엄마와 딸,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는
대만에서 산후조리까지 한 뒤 귀국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나도 알지 못한다.
이 사건은 패키지 역사상 손꼽히는 ‘역대급’ 사건이 되었고,
사무실 사람들은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
“손님이 배 아프다고 하면, 꼭 한 번 더 살펴봐라.”
마지막으로
그 어머니는 아이에게 얼마나 엄했기에,
그 학생은 어떤 마음으로 10개월을 숨겼을까.
단순히 여행 중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에서 결코 잊지 못할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도, 영화보다 현실이 얼마나 더 극적인지
다시 깨닫게 해 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