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글녀의 삶에 후회는 없으신가요?
투어를 시작하기 전, 사무실에서 이번 일정과 손님 명단을 전달받았다.
이번 팀은 조금 특별했다.
모두 미국 국적을 가진 60대 모임이었고, 단체로 대만 패키지여행을 온다고 했다.
가족도 아닌데 한국에서 출발해 함께 여행을 한다니,
독특하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입국장으로 향했다.
손님은 열다섯 명 남짓.
미국 같은 동네에 살며 오랫동안 친분을 이어온 ‘이웃사촌 모임’이라고 했다.
대부분 부부로 오셨는데, 한 분만 혼자 계셨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바쁘셔서 못 오신 건가요?”
“아뇨, 저 싱글이에요.
엄마 아니고 아-가-씨랍니다.”
나는 급히 입을 막으며 웃었다.
“헉, 죄송해요. 다시 보니 정말 제 또래신데요?
제가 선글라스를 껴서 잘 못 봤나 봐요.”
그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부부 모임에 혼자 동행할 정도면, 보통 성격은 아니시겠다. (좋은 의미로!)
투어는 순조로웠다.
모두 젠틀했고 시간 약속도 철저했으며, 자유 시간에도 각자 흩어지기보다 함께 다니길 원했다.
자연스럽게 한 팀처럼 움직였다.
그분도 밝고 호탕한 성격 덕분에 어색함 없이 어울리셨다.
둘째 날,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정이 있었다.
부부들은 나란히 앉았고, 혼자 남은 그분 옆자리에 내가 앉았다.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며
그분의 삶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와
정착하느라 바빴던 시절,
형제들을 부양하느라 시간을 놓쳐버린 이야기,
그리고 같은 지역 한인들과 자영업을 하며 지금까지 이웃사촌처럼 지내게 된 사연….
듣다 보니 궁금증이 차올랐다.
“이게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사실 저도 혼자 살고 있어서,
언젠가 싱글로 살 수도 있겠다 싶거든요.
다들 ‘젊을 때나 혼자가 좋지, 나이 들면 후회한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어떠세요?”
그분은 잠시 망설이더니 담담히 말씀하셨다.
“나는 가족과 함께 이민 와서 적응하고 먹고살기에 바빴고, 형제들 챙기느라 시기를 놓쳤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여행도 다니고,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그럼 싱글의 삶을 추천하시는 건가요?”
“추천이라기보다… 본인이 확고하다면, 굳이 결혼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중요한 건,
나이가 들어도 싱글이라서 꼭 외로운 건 아니라는 거죠.”
그 담백한 대답이 오래 남았다.
하지만 투어가 이어질수록 부부들이 서로 챙기고,
자식 이야기를 나눌 때 조용히 웃고만 계시는 그분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투어 마지막 날, 나는 그분께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행복하세요.”
호텔방에서 혼자 지내던 나 역시 스스로에게 '나는 괜찮아, 행복해'라고 되뇌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그분의 존재는
내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사람은 누구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막연한 후회를 품는다.
하지만 그분의 삶에는
뚜렷한 후회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들이 서로를 챙기고
자식 이야기를 나눌 때,
조용히 미소만 지으시던 그분의 모습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웃음 뒤에 감춰진 공허한 눈빛이 순간순간 스쳐 지나가며,
나는 마치 그분의 깊은 속내를 엿본 듯 가슴이 시렸다.
“싱글이 꼭 외로운 건 아니야.”
그분의 말은 담담했지만,
나는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가끔 그분의 웃음을 떠올리면,
그 눈빛이 함께 따라와 마음이 저릿해진다.
저는 현재 2개의 연재를 진행 중입니다.
[패키지 투어에는 없는 이야기]
실제 대만 가이드로 일하며 겪었던 웃지 못할 사건들과 사람들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tourguidestory
[대만 청춘일기, 나를 찾아가는 낭만]
대만에서의 워홀·생활 속 외로움과 청춘의 고민, 그리고 스스로를 찾아가는 기록
https://brunch.co.kr/brunchbook/dear-taiwan
이번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다른 에피소드들도 함께 읽어주시면 더 즐겁게 따라오실 수 있을 거예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