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감을 포기하고 무모한 도전을 했던 이유

- 20대 후반에 갑자기 워홀이라뇨

by 유니로그

2030대 직장인들 중에는

지금도 내가 회사에 맞는 인간인가?


아니 4050이되어도

나는 직장인이 정말 안 맞아, 때려치울 거야!!

치킨을 튀겨도 이 것보단 나을거야아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지?


내가 첫 회사에 입사한 나이는 24살이었어.

빠르다면 빠른 나이였던 거 같아


그리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복지와 환경이었지

집을 무조건 떠나고 싶었지만 연고지는 좋아하는 나에게

기숙사를 제공해 주는 첫 회사는 너무 매력적이었어


그렇게 첫 직장 생활을 하게 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아주 친절한 대리님 두 분을 만나서

A부터 Z까지 회사 일에 대해서 배웠고

거래처는 가끔 전화 와서 "니는 머리가 없나? 대가리 없이 일하나?"

이런 막말 폭언을 했지만 스트레스를 받긴 했는데

막 울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어


다만, 아무 애정 없는 이 일을 결혼 전까지 지속할 용기가 나지 않았어


그때쯤 육아휴직을 끝내고 돌아온 나를 뽑아준 인사팀 팀장님이

(나는 여직원들이랑 잘 지내는 편은 아니었는데 유일하게 이 분이 많이 챙겨줬어)

복직 1년 뒤에 그만두면서 10년 동안 20대의 청춘을 다 받쳤는데

막상 나가려니 아무 미련이 없다.

여기서 더 이상 가져갈 것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그냥 일반 직장인은 회사만 믿고 다니면 끝이구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던지, 계속 지속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싶어 선택한 게

다시 중국어를 하는 거였어.


나는 중국어전공이고 대학 다닐 때 교환학생 1년 다녀오면서

중국어를 나름 한다는 편이라고 생각했거든


원래 꿈은 호텔리어였지만 박봉에 궂은일.. 감당하지 못할 거 같아서

면접 수십 군데를 보다 나를 뽑아준 그나마 괜찮은 곳에 취직을 한 거였으니

그만두는 데는 크게 미련이 없었던 것 같아


그만두기 전부터 꾸준히 중국어 학원 가서 다시 배워갔지

그렇게 대만 워킹홀리데이가 시작되었어


처음 갔을 때 목표는


1. 중국어로 밥벌이를 할 만큼 잘하자

2. 대만에서 민박집을 해보자 (당시엔 에어비앤비가 활성화되기 전)

3.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순수하게 내 노력으로 많은 걸 해보자


이거였는데 정말 좋은 대만친구를 만나서 거처도 마련하고, 현지 친구들도 좋은 사람들만 만났어

혼자 있거나 대만 친구들이랑 있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에 중국어는 빠르게 늘었어


민박집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게스트하우스 상주 알바는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고

민박집을 내가 하면 이 모든 일을 혼자 해내야 하는 생각에 엄두가 안 나서 포기를 하고

어학당에서 만난 한국친구가 추천해 준 무역업체에서 한중 번역알바를 했어


게스트하우스 상주 알바를 할 때는 그 게하에 같이 살던 '아꼬'라 부르던 이모가 있었는데

학교 갈 때 아침으로 먹으라고 샌드위치를 싸주고 밥 굶지 말라고 냉장고에 늘 있던 빵과 주전부리들


무역업체 사무실에서 만난 70살이 넘은 사장님은 늘 나를 이뻐해 주셨는데

대부분 어린 학생들만 알바로 쓰다가 직장인이었던 알바는 처음이라고

나한텐 당연한 것들 (사무실 청소하기, 내 커피 탈 때 동료분들 타드리기 등) 이런 걸 받아본 적이 없으시대


근데 나도 출근하자마자 용돈이라고 십만 원 투척하는 사장님은 처음이라

잘해드릴 수밖에 없었지


이런 따뜻함을 주는 대만 사람들이 있기에 내 인생에 대만은 잊지 못하는 나라이고,

나에겐 2번째 고향이야.


나는 별로 인복이 없는 사람인데

사주에는 늘 인복이 있다고 나오더라고?


이런 인생에서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내 인복이 아닐까 싶어.


해외든 낯선 곳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진심으로 닿고자 하면,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언어보다 강한 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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