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
워킹홀리데이로 처음 대만에 발을 디뎠을 때,
친오빠는 해외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얼떨결에, 둘 다 처음 가보는 대만에 함께 오게 됐다.
첫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대만 호스트는 우리를 놀라울 만큼 살갑게 맞이했다.
나는 그저 ‘손님에게 예의 바른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대만 여행이 시작되고 우리는 두 번 놀랐다.
하나는 6월의 숨 막히는 더위, 또 하나는 그 더위 속에서도 웃으며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
길을 물으면 목적지까지 함께 걸어주고,
식당에서는 자연스럽게 합석하며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는 사람들.
오빠는 배 수리공으로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낯선 이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한 나라는 처음”이라고 했다.
(실제로 대만은 ‘외국인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다.)
그래서일까. 나는 속으로 ‘첫인상이 너무 좋으면, 이제 실망할 일만 남았겠지?’ 하고 경계했다.
중국 유학 시절에는 실망스러운 일이 많았으니까.
오빠가 떠난 뒤, 나는 집을 구해야 했다.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집을 인계하던 동갑내기 여자를 만났는데,
우리는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사실에 금세 친해졌다.
그녀는 일주일간 무료로 재워주었고 아무 연고 없던 나에게
한국인 친구 한 명과 대만인 친구 한 명은 소개해주고 떠났다.
다시 혼자가 된 나는 공부만 하던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너무 외로워서 그 원룸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
취해 변기에 토하고 변기에 기대어 잠들었다.
그 꼴이 스스로 우스워, 공부는 잠시 미루고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언어교류 모임에서 만난 대만 친구.
그녀 덕분에 대만의 일상과 실생활 중국어를 배웠고,
중추절에는 고기 파티, 설날에는 그녀의 가족 식사 자리에 초대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비로소 대만 생활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무역회사에서 일할 때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었다.
입사 한 달 차, 나는 연이어 실수를 했고 사과만 되풀이했다.
퇴근 직전, 상사가 말했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일해요. 실수해도 괜찮아요. 다시 하면 되니까.”
한국에서라면 상사의 한숨과 꾸중이 먼저였을 상황.
그날의 그 말은, 나에게 ‘대만’ 그 자체였다.
외로워서 찾은 친구에게서,
이방인을 품어주는 따뜻함을 배웠다.
직장에서, 타인의 실수를 품는 너그러움을 배웠다.
물론 타지라는 이유로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이드 시절엔 명절에도, 생일에도 늘 손님들과 함께였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늘 내 편이 되어준 대만 친구들의 온기 덕분이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들의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다.
아마 이렇게 글로 남기고 싶었던 건,
그들의 따뜻함과 타인을 품어주는 마음의 여유를
다시 내 마음에 새기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