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시작하는 것에 가장 필요한 건 용기
육아휴직을 선언한 직후부터,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린 탓이었을까. 목은 계속 아팠고, 몸살 기운도 있었다.
그런데도 기분만큼은 이상하게 좋았다.
휴직 첫날은 금요일이었다.
아이가 아프면 쓰려고 아껴뒀던 연차를 6월 후반으로 몰아 쓰고,
7월부터 본격적으로 육아휴직에 들어간다.
그날 아침, 아이가 날 깨웠을 때 시계는 8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벌떡 일어나 10분 만에 등원 준비를 끝내고
(애 밥은 패스, 양치도 못 시킨 채) 부랴부랴 출근했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여유가 있으니 아이에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차분히 밥을 먹이고, 양치시키고, 가방을 챙기고 나니 8시 50분.
여전히 “양치 싫어”, “어린이집 가기 싫어” 하며 징징대는 아이를 봐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복직 후 1년 동안 단 한 번도 온전히 쉬지 못했는데,
내 시간이 보장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여유로워졌고 웃을 수 있었다.
그날 처음 알게 됐다.
‘시간 여유’가 이렇게까지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걸.
9시쯤 등원했을 땐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9시 가까이에 등원하고 있었고,
오히려 줄을 서서 선생님을 기다리는 풍경이 익숙한 듯했다.
8시~8시 반에 등원시키며 다른 부모를 거의 보지 못했던 나로선
낯선 장면이었다.
등원 후, 나는 루틴을 계획하고 계단 타기 운동으로 땀을 흘렸다.
샤워를 마쳐도 10시밖에 되지 않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두부 유부초밥을 만들고, 남편 도시락도 챙겼다.
그렇게 느긋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오후엔 살짝 나른해졌다.
GPT와 일상루틴 정리도 하고 싶었고, 책도 빌리고 싶고,
블로그 글도 써야 했는데…
결국 낮잠을 자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하원 시간.
4시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건 처음이라 설렜다.
그런데 거기서 또 새로운 풍경.
하원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고,
4시 정각에 엄마들이 한꺼번에 아이를 데리러 오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우리 아들은 얼마나 집에 가고 싶었을까."
어린이집을 옮긴 후 힘들어하던 아이는,
4시부터 하원할 때까지 눈물을 보이곤 했었다.
그 마음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육아휴직 첫 주를 지나며, 내 안의 변화를 정리해봤다.
✔ 1. 아이가 일찍 자기 시작했다
기존엔 9시 넘어 침대로 갔지만, 이젠 8시에 들어가서
책 읽고, 노래 부르며 9시면 잠든다.
우리에게는 큰 변화다.
✔ 2.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빨리빨리”가 사라지고,
등하원도 놀아주는 시간도 너그러워졌다.
내가 많이 웃고 있다는 걸 나도 느낀다.
✔ 3. 살림과 재정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
월급이 한 달 더 남아있음에도,
“아껴야 한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한다.
집도 더 깨끗이 정리하려 들고, 쉬고 있어도 쉬는 느낌이 아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질문이 밀려왔다.
지금 쉬는 게 맞는 걸까?
이렇게 여유를 누려도 되는 걸까?
내가 벌지 않는 동안, 우리 가정은 괜찮을까?
몸은 여전히 감기에 시달리고, 목소리도 쉬어버렸다.
줄어드는 잔고와 주택담보대출 상환은
내게 또 다른 압박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경제활동을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수익화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주위에 압박이 없었다면 나는 계속 워킹맘을 할 수 있었을까?"
수없이 반복되는 질문들.
하지만 되돌릴 수는 없다.
이건 ‘질러버린’ 선택이 아니라,
‘판단’ 끝에 내린 내 선택이었다.
지금 나는 다시 기로에 서 있다.
게으름도 피우고, 고민도 하며
하루하루 흔들리는 나날을 살아낸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건 결국 ‘용기’다.
어쩌면 그 용기는 절박함에서 나온다.
살결로 느껴지는 경제적 불안이
어느 순간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 것이다.
최근 친구들이 말했다.
“아이 발달은 시기가 지나면 되돌릴 수 없어.
지금 돈보다 중요한 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야.”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나는 확신이 없다.
워킹맘을 그만둔 내가 사라지고,
‘애 엄마’라는 타이틀만 남는 건 아닐지.
경제적 불안은 나를 계속 흔들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살아내고 있다.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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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길이 조금 덜 외롭기를 바라며, 저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