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집은 마음속에 있어
한국에 있어도, 대만에 있어도 나는 늘 이방인 같았다.
오랜만에 돌아간 본가집에서도 가족 사이에 잠시 들른 손님 같았고,
오히려 대만 집, 내 방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에야
“아, 집에 왔다” 속삭이며 마음이 풀어졌다.
하지만 대만에서도 이방인 같은 순간은 늘 따라왔다.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을 때마다 나는 서두르듯 말했다.
“나 코리안, 응 노쓰 아니고 사우쓰. 부산에서 왔어, 안녕하세요.”
외국에서 친구를 사귈 때면 꼭 따라붙던 질문,
“유어 노쓰 코리안?”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노, 노. 마이 그랜마더 온리 노쓰 코리안.”
그러면 그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처음엔 농담처럼 흘려보내던 그 순간들이,
어느 날부턴가 지겨워졌다.
대만 친구들이 어눌한 발음으로 건네던
“안녕하세요”조차
어느새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너, 이방인이지?”
아무리 친해져도 그들의 ‘우리’ 안으로는 끝내 들어가지 못하는 기분.
외향적인 성격 덕에 늘 웃고 섞여 있었지만,
내 안에는 ‘이방인’이라는 보이지 않는 낙인이 찍혀 있는 듯했다.
누군가 묻곤 했다.
“그럼 한국으로 돌아가면 되잖아?”
나는 대답했다.
“한국에서도 나는 이방인이야.
오히려 외국에서의 이방인 취급보다, 한국에서 느끼는 소외가 더 아프더라.”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나는 늘 무리에 속한 듯 보였지만,
사실은 살짝 비껴 서 있었다.
겉으로는 활발했지만, 어디에도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기분.
처음 대만행을 택했을 땐 홀가분했다.
아무도 내 배경과 성격을 모른다는 사실이 자유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또다시 나를 정의해야 할 때가 오자,
나는 금세 지쳐버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문제는 장소가 아니었다.
한국이든 대만이든,
결국은 내가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과 비슷해야 한다는 강박,
어딘가에 속해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나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들어온 건 아닐까.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말할 수 있다.
어딘가에 속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경계 위에 서 있어도, 전혀 다른 곳에 있어도,
나는 동시에 여러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그 시선이 오히려 나를 넓고 깊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대만에 다시 정착하기 전,
러시아 여행 중 우연히 들어간 작은 식당에서
포춘쿠키를 받았다.
그 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You are the ‘home’ where my heart is.”
나는 그것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어디든, 너의 마음이 닿는 곳이 곧 집이다.”
그 마음을 품고, 나는 다시 대만의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