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만 알 수 있는 집의 의미

by 유니로그

20대가 되고 나는 본가를 기점으로 주위를 떠돌아다녔다.

대학생 때는 기숙사에서 4년을,
유학생일 때는 외국인 기숙사에서 1년을,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회사 바로 위층 기숙사에서 2년 반을,
대만에서는 원룸, 게스트하우스, 투룸 빌라집에서 3년 반을 보냈다.


사실 10대의 집은 나에게 외로운 장소였다.
맞벌이 부모님, 공부하느라 집에 없는 오빠.
나는 늘 혼자 큰 집에 TV를 보며 지냈다.


부모님이 주택으로 이사하면서 집을 예쁘게 꾸미셨고 화목한 가정을 꿈꾸셨지만,
현실은 네식구가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 날이 거의 없었다.
주중에는 다들 잠들기 직전에야 집에 들어왔고,
주말에는 밀린 잠을 자거나 외식을 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집을 나왔다.
바깥세상은 나에게 환희였다.

새로운 사건이 매일 일어났고, 집 밖에서 먹는 음식은 뭐든 맛있었다.

유학을 가서도 세상은 새로움으로 넘쳐났고, 집은 그립지 않았다.

직장을 가지고 기숙사에 살 땐 내 돈을 벌어 쓰는 맛,
부모님 눈치 보지 않는 자유에 취했다.

그렇게 나는 집의 소중함을 모른 채 20대 내내 집 밖을 떠돌았다.

20대 후반, 서른이 되고 대만 생활의 연차가 쌓이면서
가끔 한국 집에 올 때마다 이상하게 늘 변함없는 그 모습에 놀랐다.

“엄마, 우리 집은 주택인데 왜 낡은 느낌이 없지?”
“네가 집에 없어도 우리는 늘 집에 있었잖니. 페인트도 새로 칠하고, 나무 가지도 치고, 늘 집을 보살피고 있지.”

언제나 변함없이 있다는 건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손길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집에 간다는 건 분명 설레는 일이었지만, 오래 머무는 건 이상하게 싫었다.
집에 있으면 나는 멈춰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타이베이의 방에 들어가면
소라게가 제 껍질 속으로 숨어들 듯 나도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외국 사는 이방인, 대만에서는 일하는 외국인.
나는 어디서나 조금은 다르게 보였지만,
적어도 그 방 안에서는 내가 만든 성벽 속에서
나를 인정하고 편안히 쉴 수 있었다.


가이드 생활의 70%를 호텔에서 지내던 나에게
변하지 않는 내 공간이 있다는 건 큰 위안이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고,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2주간 격리를 하게 됐다.

움직이지도 않고 매일 영상만 보던 어느 날,
잠이 오지 않아 방 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열어보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졸업사진, 어릴 적 좋아하던 웹소설, 친구들과 주고받던 편지들.
그리고 그 속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유품을 발견했다.

할머니의 메모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남편은 늘 멋지다. 남편이 내 곁에 있는 것이 고맙다.”

사진첩 속에는 할아버지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꽂혀 있었다.
내 방에 이런 것들이 있었다니, 신기한 마음으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집은 어쩌면 나의 정신이자 뼈대가 아닐까.
떠돌다 지친 내가 돌아왔으니,
이런 것들을 마주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부모님과, 어린 시절 오빠와 나의 사진,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집은 단순히 머무는 장소가 아니었다.
내가 떠나 있어도 계속 살아 숨 쉬며,
언제든 돌아오면 내 뿌리를 확인시켜 주는 곳이었다.


대만에서의 방은 나를 지켜준 작은 껍질이었다.
하지만 진짜 집은, 내가 떠나 있어도 변함없이
나를 기다려준 시간과 사람들의 흔적이었다.

집은 결국 나의 역사이자 뼈대였다.
떠나야만 알 수 있었다.

집의 의미는 단순한 가족의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를 지탱해 준 삶과 기억이라는 것을.

이전 19화어느샌가 익숙해진 이 나라, 이 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