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샌가 익숙해진 이 나라, 이 공기

by 유니로그

대만에 산 지 2년이 넘던 시절, 분기마다 한국을 오갔다.

타이베이 집에서 출국 준비를 할 때면 늘 설렜다.
“가서 뭐 먹지? 이번엔 누구를 만나 놀까? 어디를 가볼까?”


한국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여행 같았다.

도착하자마자 먹는 엄마 밥, 돼지국밥, 치킨, 갈비.


가을이면 꼭 새우를 먹으러 갔고,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힐링 타임이었다.


하지만 행복한 쿨타임이 끝나면 다시 대만으로 돌아가야 했다.
타이베이행 비행기에 오를 때마다 아쉽고 허전했다.
그래서 늘 공항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사 들고 타는 게 내 루틴이 되었다.

떠나기 싫으면서도 막상 다시 정착하고 싶지도 않은 묘한 마음.

한국에서는 외국사는 이방인, 대만에서는 일하는 외국인.
나는 어디에 있어도 조금은 다른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 한국에서조차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게 오히려 편했다.


그날도 책을 들고 밤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타이베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습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아, 이제 여기는 낯선 곳이 아니구나.
진짜 내 홈타운이 되어버렸구나.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우롱차와 딴삥을 먹고
타이베이 집으로 돌아간다.


일이 없는 날엔 침대에 콕 박혀 있다가,
주린 배를 잡고 동네 1인 훠궈 집에 들어가 배부르게 먹었다.
그리고 유바이크를 빌려 타고 강변으로 향했다.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강가에 앉아 야경을 바라봤다.
그 순간의 나는 스스로에게 취해 있었다.
“나는 멋지게 살고 있어.
좋아하는 도시에서 돈도 벌고, 내 터전을 가꾸며 살고 있잖아.”


기분이 무너질 때면 지금도 타이베이 강변을 떠올린다.
습하지만 시원했던 강바람, 혼자 자전거를 타던 나.
좋을 땐 노래를 흥얼거렸고,
안 좋을 땐 강물에 비친 야경을 오래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감정을 흘려보내며 살아가고 있겠지.”


결국 어디에 있든, 누구나 자기만의 지옥과 천국을 갖고 산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흘려보내고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


그때 나는 타이베이 강변에서
늘, 나쁜 기운을 흘려보내고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행복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 보물이 아니다.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보물찾기.
그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진리를
그때도,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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