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곧 그 나라의 인상
외국 생활을 오래 버틸 수 있느냐의 관건은 결국 ‘그 나라의 음식이 내 입맛에 맞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음식이 일상이 되고, 입맛이 곧 삶의 리듬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 유학 시절, 생각보다 기름진 음식을 잘 먹는다는 걸 알았다.
특히 훠궈나 국수 같은 국물 음식에 유독 끌렸다.
집밥에도 늘 국이 있었던 한국에서 자라서인지, 국물이 없는 밥상은 어색하기만 했다.
그 감각을 안고 도착한 대만은, 예상과 달리 낯선 냄새와 새로운 비주얼의 향연이었다.
야시장은 매일이 새로운 탐방이었고, 그곳에서 나는 나의 취향을 다시 시험해 보았다.
대만에서 가장 매료된 건 ‘차 문화’였다.
중국에서는 늘 뜨겁게 차를 마셨지만, 대만 사람들은 차갑게 즐겼다.
습하고 더운 날씨가 만든 문화였다.
나는 원래 뜨거운 차보다 차가운 음료를 좋아했고, 차보다는 우유가 섞인 라떼를 더 선호했다.
그래서 대만의 마실거리에 금세 빠져들었다.
특히 우롱차.
녹차보다 덜 쓰고, 보이차보다 은은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난 뒤 속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대만의 우유 역시 담백해 라떼를 매일 마셔도 배가 불편하지 않았다.
아아만 고집하던 내가, 대만에선 라떼파가 되어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먹는 것이 곧 나를 설명하는 언어구나’ 하고.
대만의 동네마다 빠지지 않고 있던 건 ‘도시락집’이었다.
한국의 한정식 뷔페 같은 곳으로, 밥과 국, 매일 달라지는 반찬을 원하는 만큼 담을 수 있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식당이었다.
야채도, 생선도, 고기반찬도 챙겨 먹을 수 있었으니까.
다만 1년 가까이 도시락집과 조찬집의 딴빙(계란을 넣은 전병)으로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결국 질려버렸다.
그 무렵부터 나는 하루 한 끼는 훠궈, 혹은 일본 음식점으로 향했다.
대만은 일본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돈가스집과 초밥집이 흔했다.
가이드 정산을 마치면 늘 단골 돈가스집에서 배를 채웠고, 초밥은 어느새 나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즐기지 않던 초밥을, 대만에서는 주식처럼 먹게 된 것이다.
중국 유학 시절에는 맥도널드 치즈버거로만 버틴 적도 있었지만, 대만에서는 달랐다.
친구들과 해산물 요리도 먹고, 전통 음식에도 도전하며 맛의 폭이 넓어졌다.
코로나 이후 대만에 다시 가보지 못했지만, 임신했을 때 가장 간절히 떠오른 건 우육면이었다.
학생 시절, 일주일에 두세 번은 몸보신하듯 먹었던 음식.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던 그 맛은 한국의 국밥과도 닮아 있었다.
그리움이 치밀던 순간, 나는 깨달았다.
대만은 내 인생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나라라는 걸.
밤거리에서 허기를 달래던 딴딴면, 겨울 편의점 어묵, 학교가 끝난 뒤 알바 가기 전 급히 먹던 편의점 핫도그,
여름이면 꼭 사 먹던 애플망고와 석과까지.
과일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과일을 찾게 된 것도 대만이었다.
돌아보면,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 나라의 풍경이자, 그 나라를 설명하는 언어였다.
그리고 대만 음식은 나를 변화시켰고, 내 취향을 새롭게 빚어냈다.
나는 지금도 라떼를 마실 때, 우육면 냄새를 떠올릴 때,
잠시 대만의 골목과 여름밤을 함께 떠올린다.
음식은 결국 그 나라의 인상이자,
그곳에서 살던 나 자신을 기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