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압박 속에서 숨을 고르며 산다는 것

강박과 공황, 그 사이에서

by 유니로그

‘공황장애’라는 병명을 처음 들은 건 2015년이었다.
스무 살 때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해진 오빠가 말했다.
자신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고, 이 병은 완치가 없다고.

그때만 해도 TV에서조차 공황이란 단어를 들은 적이 거의 없었다.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건, 심각한 우울증이나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만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오빠는 첫 소개팅 자리에서 낯선 여자와 대화하던 중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했다.
119가 와서 응급실로 이송됐고, 정신이 들었을 땐 링거를 맞고 누워 있었다고 했다.

눈앞이 흐려지면서 고개가 뒤로 젖혀지는 순간까지는 기억이 나.
그 뒤엔 아무 기억이 없고 ‘사람이 이렇게 죽는 거구나.’라는 것만 있었지


의사는 특별한 질환이 없다고 했다.
다만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한 급성 쇼크일 수 있다며 정신건강의학과를 권유했다.

그곳에서 오빠는 자신처럼 젊은 사람들도 어두운 얼굴로 줄지어 있는 걸 보고
‘공황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 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지방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혼자 모든 걸 해내야 했다.
개발자로 일하며 마감 압박에 시달렸고, 숨이 막히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게 쌓이고 쌓여 결국 소개팅 자리에서 ‘공황’으로 폭발한 거였다.


그 오빠는 내게 말했다.

너도 남들과 달라지고 싶다는 강박이 있잖아.
근데 그게 결국 너를 옥죄일 수도 있어.

그때는 그 말의 무게를 몰랐지만, 시간이 흘러 이해하게 되었다.


이사를 온 후 친해진 언니가 있었다.
같이 육아를 하며 자주 만났는데, 언젠가부터 “몸이 안 좋아서 오래 밖에 있질 못한다”라고 했다.
며칠 전, 조심스레 이유를 물었더니 그녀도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코로나 때 갑자기 몸이 굳고 숨이 막혀 응급실로 실려갔다고 했다.
가족이 모두 보는 앞에서 쓰러졌고,
그 이후로는 항상 약을 들고 다닌다고 했다.


그녀는 완벽주의자였다.
늘 ‘잘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았다.
그러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공황이 찾아왔다고 했다.
완벽을 내려놓고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려 하자, 서서히 증상이 줄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십 년 전 오빠의 말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전혀 달랐지만, 결국 같은 말이었다.
사람은 타인의 압박보다 자기 자신이 만든 압박 속에서 무너진다.


나 역시 그랬다.

“쉬면 뒤처질 거야.”
“이 정도는 해야지.”
“잘해야 인정받는다.”

내가 만든 틀 안에서 나를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그 언니가 공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15년째 공황을 겪은 지인의 조언 덕분이었다.

“강박은 없앨 수 없어.
대신 그걸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해.”


예를 들어 큰 소리에 예민하다면
벨소리를 잔잔한 멜로디로 바꾸고,
전화를 안 받는 사람에게 집착하기보단
‘지금은 바쁘겠지’ 하고 다른 일을 하며 생각을 돌린다.
하나씩 그렇게 관점을 바꾸다 보면
강박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자기 연민이 자라난다.


그녀는 이제 말한다.

“돈을 열심히 모아도 아프면 아무 소용이 없더라.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해.”

그래서 요즘은 가족과 제주도 여행을 준비하며 웃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돈에 대한 강박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맞벌이를 했다면,
나도 공황이 왔을까?”

휴직 전, 나는 자주 심장이 조여 오고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육아휴직을 내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였을까.


공황은 완치가 없다는 말이 무섭지만,
결국 ‘관리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각자의 압박 속에서 살아가며,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행복의 결’이 달라진다.


요즘 나는 ‘평안(平安)’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평(平)은 ‘고르고 안정됨’을, 안(安)은 ‘마음이 편안함’을 뜻한다.
즉, 몸과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 고요한 상태다.

“사는 게 무엇인가요.”
아마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사는 건, 인생의 압박 속에서도 평안을 찾아가는 일.”


모두가 인생의 압박에서 조금씩 벗어나
마음이 흔들림 없이 고요해지길 바란다.

그 평안을 찾는 일은 어쩌면 평생의 숙제일지도 모른다는 걸.

우리는 각자의 강박과 불안을 안고, 그 속에서도 숨을 고르며 살아간다.
다시 무너져도, 또다시 일어나며 그렇게 조금씩, 평안을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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