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왜 이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울까
대만과 한국을 오가던 시절, 비행기 좌석 앞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삶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 최인철 교수, 『굿라이프』
너무 익숙한 말이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깊이 받아들이긴 어려운 문장이었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외국 생활의 불편함은 없었지만, 늘 외로움과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언젠가 잘될 거야’가 아니라 ‘지금 행복하자’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안정감이 사라진 자리엔 늘 공허함이 남았다. 그 공허함을 나는 ‘새로움’으로 메웠다.
매번 다른 도시, 다른 사람, 다른 풍경 속에서 자극을 찾아다녔고 SNS에 그 조각들을 올리며 “나는 잘 살고 있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다 한국으로 돌아와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제야 알게 됐다.
‘안정감’이라는 게 얼마나 묵직하고, 또 얼마나 소중한 감정인지.
스스로의 삶에 만족할수록 굳이 세상에 드러낼 필요가 줄어든다는 것도.
물론 지금도 인스타그램과 스레드를 하며
내 생각과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기 위해서다.
가끔 옛 기록들을 되돌아보면
그때의 내가 내게 손짓하는 기분이 든다.
“너는 지금 잘 지내고 있니?
이때의 넌 이런 생각을 했단다.”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찬란했지만 동시에 많이 불안했던 마음까지 함께 기억난다.
마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그땐 정말 좋았지”라고 말하게 되는 것처럼.
그 시절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지만,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시간이 얼마나 빛났는지 깨닫게 된다.
코로나로 대만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을 때,
심리상담을 받으며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인간은 언제나 가지지 못한 걸 아쉬워하지.
시간이 지나면 가지고 있던 걸 그리워하고,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면서 살아.
결국 인생은 계속되고,
나는 지금도 살아있다는 거지.
그러니 순간에 감사하면서 살아.
대만에서는 한국의 안정된 삶이 그리웠고,
한국에 돌아오니 대만의 자유로움이 그리웠다.
나는 그 패턴을 두 번이나 반복했다.
그래서 더 이상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나는 ‘안정된 지금’을 선택했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 가정의 주부로 살아가는 지금, 가끔은 대만의 자유로운 공기와 가이드로서의 짜릿함이 떠오르지만, 남편과 아이의 웃음,
그리고 ‘대체로 평온한 하루’를 볼 때면
아, 지금이 내 삶에 맞는 시기라는 걸 스스로 자각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가요?
현재의 상황에 감사함이 든다면,
그건 당신이 이미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찾았다는 뜻이다.
그 과정의 고군분투는 결국 아름다운 서사가 된다.
반대로 지금의 환경이 불편하고 답답하다면,
그건 당신이 여전히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앞으로도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가겠지만,
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행복은 언제나 다음이 아니라, 지금에 있었다.
지금의 행복을 느끼며 삶에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다 보면 우리도 어느샌가 지금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