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루틴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이 버겁다.
이 문장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우울할 때도 언제든 쓰인다.
기쁠 때는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몰라 불안해서 버겁고
슬플 때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갇혀 그저 괜찮아지기만을 바라며 버겁고
우울할 때는 끝없이 가라앉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버겁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버거운 인간들 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인생은 자기만의 지옥에서 낭만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래서 자주 행복을 느끼고, 낭만을 찾아서 계속 나아갈 힘을 가져야 한다.”
5년 전 글 속의 나는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인생의 쓴맛을 볼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인생의 쓴맛을 몇 번이나 삼키고 소화해 내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뜻일까?’
어쩌면 우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오감 중 유독 ‘쓴맛’만 자주 찾아오거나,
그 쓴맛을 해독해 줄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긍정적이고 희망의 회로가 단단하다고 자부했었다.
그래서 한때는 연예인들의 우울로 인한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쓴맛이 깊어질수록 깨닫는다. 그들의 인생엔 얼마나 많은 쓴맛이 켜켜이 쌓였을까. 그 생각이 너무 끔찍해서 이제는 그저 조용히 명복을 빌어줄 뿐이다.
SNS가 보편화되며 ‘루틴’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떠올랐다.
하루의 일과, 규칙적인 습관, 자기 관리의 상징.
사람들은 건강과 목표를 위한 행동들을 ‘루틴’이라 불렀고 그 루틴을 꾸준히 지켜가는 사람들에게 열광했다. 자기 계발서마다 루틴의 중요성이 등장했고
모두가 자신의 루틴을 자랑스럽게 공유하던 시대가 찾아왔다.
루틴의 힘은 강력했다.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성취감을 주었으며, 때로는 루틴의 노예로 살게도 했다.
하루 일과를 빼곡히 채워두고 하나라도 빠지면 불안해지는 사람들.
루틴이 깨지면 마치 인생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그랬다.
책 몇 페이지, 러닝 몇 분, 매일 챙겨 먹는 영양제와 피부 관리.
하나라도 빼먹는 날이면 그동안 쌓아온 모든 날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루틴은 어느새 ‘강박’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다잡았다.
루틴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마법이 아니다.
하루 어긴다고 내가 해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계획’ 일뿐,
내 삶의 일부이지 전부는 아니라고 역순으로 나 자신에게 주입했다.
루틴을 어긴 날은 속상했지만
그다음 날, 아니 그다음 주라도 다시 이어가면 되는 거였다.
그럼 나는 여전히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 또한 하나의 루틴이다.
인생의 버거움을 이야기하다가 왜 갑자기 루틴 얘기를 하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루틴이야말로 버거움을 견디게 한 도구였다. 다만 요즘은 그 루틴조차 사람들을 좀먹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하다.
‘갓생러 하다 골병든다’는 말처럼.
인간의 삶에는 고유한 리듬이 있다.
달릴 때는 앞만 보고
어느 날은 옆을 보고
또 어떤 날은 잠시 뒤로 물러서기도 한다.
시간은 계속 흐르지만 우리가 진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신체는 점점 느려지고 퇴행하지만 정신은 점점 고도화되고 자기만의 성벽을 단단히 쌓아간다.
결국 인생은 ‘시간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성벽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의 싸움이다.
그렇다.
이 모든 말들은 사실,
이틀 동안 운동하지 않은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거대한 수식어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운동을 하고 돈이 떨어지면 돈을 벌고 가족을 돌보며 나만의 성벽을 조금씩 더 쌓아갈 것이다.
인생의 버거움을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는 연습.
그게 어쩌면, 조금은 더 여유롭게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가 너무 버겁고 세상이 각박해져도,
우리 모두 살아가기 위해 각자의 루틴에 기대어 있는 존재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