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속도는 누가 정하는 건데?

- 급할수록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들

by 유니로그

10대의 시간은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에게 유난히 느리게 흘러갔다.

그 시절 나를 정의하는 키워드를 꼽자면, 힙합·자유·정의로움이었다.

힙합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청춘의 아픔과 불안함을 노래했다.

그 음악을 들으며 막연히 20대의 찬란한 청춘을 기대했다.

그때의 꿈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서 래퍼를 만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서울의 대학엔 가지 못했고, 지방의 어느 대학 OT에서 나는 이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힙합을 사랑하는 윤희입니다.”
그 멘트는 4년 내내, 아니 지금까지도 친구들 사이의 놀림거리다.


20대의 현실은 냉정했다.
입학하자마자 “어느 회사에 갈 거야?”라는 질문을 받았다.
닥치지도 않은 밥벌이 걱정을 그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밤새 라디오를 듣던 감성 가득한 힙합 소녀는 그렇게 사라졌다.


모두가 바빴다.
학점, 공모전, 대외활동.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갉아먹었다.
09학번이었던 나는, 술에 찌든 대학생활보다
10대의 줄 세우기와 다를 바 없는 경쟁의 연장선에 지쳐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교환학생으로 떠나며
1년간 현실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었다.

그때부터 내 관점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10대에도 나는 늘 헤드폰을 목에 걸고 혼자를 꿈꿨다.
하지만 여고생이었던 나는 실제로 혼자가 될 수 없었다.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지만,
누구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다.

그 시절엔 ‘혼밥’이 이상하게 보이던 때였지만,
유학을 가니 그게 가능했다.
1년 동안 나는 철저히 혼자를 선택했다.

혼자 걷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그때 처음으로 철학적인 생각을 했다.


그때 ‘좀 이상한 오빠’를 알게 됐다.
예수처럼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보헤미안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던 24살의 청년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웠고 타인에게 배려 깊었으며,
하고 싶은 건 꼭 해보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에게서 배운 건 이것이었다.

“마음대로 산다고 잘못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게 진짜 잘 사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를 통해 깨달았다.
남들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멋’이라는 걸.


유학 시절, 혼자 다니는 나를 불쌍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같이 놀자며 손을 내미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 ‘이상한 오빠’를 만나고 난 뒤 내 기준은 확고해졌다.
혼자는 외로움이 아니라, 자아를 찾아가는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 나는 나만의 속도로 살고자 했다.
지금은 다시 남들과 비슷한 속도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때의 사색이 없었다면 지금의 사랑도, 행복도,
이 글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자, ‘돈’이라는 단어가 모든 걸 바꿨다.
마음은 조급해졌다.
남들만큼 누리고 싶었고, ‘뽀대 나게’ 살고 싶었다.

그러다 이상하게도
욕심을 내려놓고 나에게 집중할수록
행운은 찾아왔다.

그리고 그 기회를 성실히 해냈을 때만
달콤한 열매가 돌아왔다.


그 진리를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조급하다.
성격이 급해서 요리하다가 자주 화상을 입고,
운전할 땐 급정거가 일상이다.
31개월 된 아들이 차에 타면 꼭 이렇게 말한다.
“엄마, 천천히.”

그럴 때마다 피식 웃는다.


아마 이 급한 성미는
10대부터 이어진 줄 세우기,
남들만큼 살아야 한다는 강박,
끊임없이 오빠와 비교하던 엄마의 잔소리에서
만들어진 기질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천천히 하는 연습을 해야지.’
그리고 또 한 번 화상을 입은 내 손을 보며 한숨을 쉰다.

이게 바로 인생인가 싶다.

피식 웃으며 되묻는다.

“인생의 속도는, 도대체 누가 정하는 걸까?”


빨리 가는 사람에게도 언젠가는 느려지는 구간이 찾아온다.
느리게 가는 사람에게도 어느 순간 속도가 붙는 시기가 있다.
결국 인생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수많은 구간의 연속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걸어갈 수밖에 없다.

정말 힘들고 조급한 순간마다
잠시 멈춰서 자신에게 묻는 시간.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그 한 걸음의 여유를
모두가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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