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유지하는 방법
10대 시절, 나에게 친구란 힙합 다음이었다.
힙합은 나의 자아를 온전히 받아주는 음악이었고,
친구는 그런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초등학교 이후 맞벌이하는 부모님과 공부하는 오빠 사이에서
나는 늘 혼자였다.
그 외로움을 이어주는 유일한 존재가 친구였다.
학교는 공부의 공간이 아니라,
그저 친구를 만나러 가는 장소였다.
어린 나이에도 사회생활은 이미 버거웠다.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학교를 다닐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내게 친구는 삶의 중심이었다.
중학교 때 만난 여섯 명의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1년에 두세 번씩 만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 사이엔 수없이 싸우고, 화해하고,
지지고 볶는 시간이 있었다.
일곱 명의 여자가 어떻게 아직도 함께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서로의 성향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10대를 지나 각자의 새로운 환경으로 흩어졌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늘 함께였다.
같이 있으면 어떤 두려움도 사라지는
무적 군단 같았다.
술을 마시고, 싸우고, 다시 만나 웃는
그 반복 속에 우정은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 날,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외국으로 떠났고,
친구들은 각자의 연애와 결혼 준비로
조금씩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들과 어울리는 무리,
그 사이에 생긴 질투와 서운함.
누군가는 나에게 섭섭하다고 말했고
나는 한 명 한 명 전화를 걸어 설득하며
“이해해 달라”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관계는 더 틀어졌다.
그때 깨달았다.
친구란 서로를 이해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이라는 걸.
그 후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서로의 새로운 삶을 축복해 주며
한 사람의 인생을 인정할 줄 알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만난 친구들은
더 이상 방황하던 소녀들이 아니었다.
결혼은 끝이 아니라,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여는 시작이며 행복과 안정의 길이라는 걸 보여줬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결혼을 결심했다.
이제는 엄마가 된 친구들이
아이를 데리고 와 뒤치다꺼리를 하며
짧게 만나 웃고 헤어지는 게 전부지만,
그 짧은 만남 속에서도
서로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누가 더해줬고 덜해줬고를 따지는 건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각자의 삶을 성실히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이 되는 사이.
그래서 나는 좋은 관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
앞으로 어떤 오해나 사건이 생기더라도
개입하지 않고, 묵묵히 응원해 주는 것.
그게 친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는다.
가끔 친구가 다른 길로 가는 것 같아도,
“나는 너를 믿고 있어”라는 마음만 있다면
그 믿음은 언젠가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친구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