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부딪혀라
우리가 태어나서 선택할 수 없는 관계는 바로 부모와 형제다.
이건 바꿀 수도, 버릴 수도, 새로 만들 수도 없다.
나는 부모의 DNA를 받았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생명체가 아닌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난 존재다.
태어난 후 우리는 자주 부모에게 사랑을 구걸한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이 돌아오지 않으면 실망하고,
그 채워지지 않은 사랑은 결핍으로 돌아온다.
나의 사랑은 ‘0’에서 시작돼서
부모에게 받은 사랑, 그리고 사회나 타인에게서 얻은 새로운 관계 속 사랑으로
그 모양이 형성되고 결정된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사랑의 크기와 모양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의 생김새와 형태는 모두 달라서,
인간관계 속에서 수많은 사건과 오해, 그리고 또 다른 사랑이 태어난다.
모두가 0에서 시작하지만, 그 사랑의 근원은 부모에게서 오기 때문에
천륜의 인연은 그만큼 중요하다.
나의 경우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엄마는 내가 원하는 사랑만큼 주지 않았다.
엄마의 기분이 언제나 우선이었고, 확실히 오빠를 더 아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엄마의 눈물은
오빠가 군대에 간 뒤, 나에게 뭘 부탁했는데 내가 거절했을 때였다.
엄마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너희 오빠는 다 해줬는데, 넌 왜 못 해줘!”라고 소리쳤다.
어릴 땐 ‘엄마 말을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야’라고 믿었다.
말을 잘 들을수록 엄마는 나에게 더 무심해졌고 나는 점점 솔직하지 못한 아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날,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니 나도 그냥 말하고 싶었다.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던 편애를 대놓고 드러내는 엄마를 보며
‘이젠 나도 참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그 후로 나는 엄마에게 솔직했다.
조금이라도 오빠에게 더 잘해주는 모습이 보이면
“엄마, 왜 오빠만 좋아해? 어릴 때부터 그랬잖아.
나도 더 해줘. 오빠보다 더 해줘. 어릴 때 못 받은 만큼 더 더!”
그렇게 다 쏟아냈다.
솔직히 말하니 속이 후련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진짜였다.
내가 진짜로 해달라고 말하자
엄마는 더 이상 재지 않고 해 줬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사랑을 늦게나마 쟁취했다.
해외생활 중 크리스마스에 혼자 있기 싫어
자주 연락하지 않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말했다.
“네가 전에 말한 금목걸이 샀다. 그리고… 미안하다.”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을 두 번 했다.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진짜 괜찮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과가 기분을 더 상하게 했다.
‘그냥 끝까지 뻔뻔하지, 왜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해?’
그때 깨달았다.
부모 자식 간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사랑은 없다는 걸.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되면, 사랑은 쌍방의 이해와 노력 위에서만 유지된다
선택한 사랑의 기브 앤 테이크는 더 명확하다.
내가 5를 주면 10을 바라고,
연애할 때는 10 이상이 돌아와야 결혼을 고민했다.
하지만 결혼은 그렇지 않았다.
5를 줬을 때 5만큼 돌아와도 감사해야 하는 관계였다.
10 이상을 주는 사람도 지치고,
매번 그만큼 돌아오길 기대하는 사람도 결국 지친다.
그 지독한 줄다리기를 끝내고자 선택하는 게 결혼인데,
결혼을 한다고 해서 새로운 사랑의 연대기가 펼쳐지는 건 아니다.
그건 그저 냉정한 기브 앤 테이크의 연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걸 직시하고, 기대하지 않고 기브 하면
상대방도 언젠가 같은 마음으로 테이크한다.
주고받음에 서로 감사할 때, 그게 결혼의 가장 올바른 형태라고 생각한다.
남편을 정말 사랑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만큼 그 사랑이 돌아오지 않으면 여전히 화가 난다.
“나는 이렇게 100으로 표현하는데 왜 넌 이만큼밖에 안 해줘?”
징징거리고, 화내고, 달려든다.
돌이켜보면 부모의 관계도 그랬다.
그들은 감정보다 역할이 앞섰고
내 눈에는 그들의 주고받음의 서사는 확실했다.
그렇게 바라본 부부의 모습으로 나는 친구 같은 사람과 결혼하길 바랐다.
사랑보다 주고받음이 확실한 조금은 드라이 한 그런 관계가 더 오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난 뒤 알게 되었다.
아마 그것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지키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선택하지 못한 관계든 선택한 관계든
중심은 언제나 ‘나’다.
관계를 잘 이끌어가는 비결은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표현하고, 받아보는 것이다.
이건 사랑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본질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바라고,
그 기대가 커질수록 더 쉽게 다친다.
그래서 부제목을 ‘피할 수 없다면 부딪혀라’라고 썼다.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말해야 한다.
말하지 않고 알아주길 바라는 건
자기중심적인 기대일 뿐이다.
바로 그 기대심리가 자신을 파괴하는 사랑의 맹점이다.
가족이야기에서 어쩌다 내 생각의 가지가 사랑까지 뻗쳐 왔는지 아이러니지만
사랑에 대한 나의 생각은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표현해서 나의 사랑을 상대에게 알리고 내가 바라는 만큼이 다 돌아오지 않더라도 많이 실망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더 이상의 상처와 아픔을 겪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주고 받음의 사랑의 방식까지 와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글을 다 쓴 뒤 마음 한편이 조금 불편했다.
혹시 내 생각이 너무 단정적이진 않았을까,
누군가의 사랑을 가르치려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을까.
혹시 이 글이 불친절하게 느껴졌다면,
그건 사랑을 여전히 배우는 사람의 서툰 고백이라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