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고 싶은 마음의 이면

스스로 납득하기까지의 과정

by 유니로그


왜 나는 인정에 이렇게 오래 목말라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그 시작은 형제 구조에서 출발한다.

오빠는 늘 모범생이었고,

엄마가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주변에서 “참 잘 키웠다”라는 말을 듣게 해주는 자식이었다.
나는 달랐다. 성적도 평균 이하였고, 손이 많이 가는 편이었다.
엄마는 나를 힘들어했고, 불평이 잦았다.
그런 엄마에게서 칭찬이나 애정 표현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다른 아이들이 ‘엄마랑 쇼핑 갔다’, ‘엄마가 옷 골라줬다’ 같은 이야기를 할 때
그런 경험은 나에게 없는 세계였다.


20대 이후 엄마와 쇼핑을 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내 옷 입는 방식이 답답하다는 말이 먼저였다.

엄마와 나는 지금 사이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이를 봐달라고 하거나, 집에 와서 음식을 해달라고 기대한 적도 없다.
기대하면 실망한다는 걸 너무 일찍 배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선행학습을 해야겠다며 학원을 가고 싶다고 말했더니
엄마는 카드를 쥐여주며 “알아서 등록해라”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가 기본값이 됐다.


이런 배경을 가진 나는 사회에 나오자마자 인정에 집착했다.
즉각적인 성과를 원했고,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직원이 되고 싶었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남들보다 번아웃이 빠르게 찾아왔다.
2~3년마다 회사를 그만두는 패턴도 그때 만들어졌다.


그러다 스스로 선택해 해외생활을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꼈다.
10대에는 엄마의 인정에, 20대에는 사회적 인정에 매달렸던 내가
외국에서는 누구도 나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고, 한국에서는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그 애매한 위치가 오히려 편했다.

어디에도 맞추지 않고, 내 안위만을 기준으로 삶을 유지하는 방식이 나와 맞았다.

그 시기에 부모님은 처음으로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3년을 혼자서 버티고,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딸을 보면서
이제야 나를 한 사람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이 글에서 말하려는 ‘인정의 이면’은 두 가지다.
첫째는 부모에게서 충족받지 못한 인정욕구의 문제다.
둘째는 부모부터 받지 못한 인정결핍 때문만이 아니라 ‘평범함’이라는 기준점에 도달하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 때문이라는 점이다.


평범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고난 없는 무난한 삶”을 목표로 한다.

그 기준 안에 들어가기 위해 인생의 대부분의 에너지를 쓴다.
그리고 그 기준 안에서 타인의 눈에 ‘꽤 괜찮아 보이는 삶’을 유지하려 한다.


나 역시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
이제는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에너지를 쓰고 있다.

아파트 대출을 못 내면 어쩌지?
아이가 평범에서 벗어나면 어쩌지?
내가 남보다 없어 보이면 어쩌지?

이런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설득한다.

“이 정도면 괜찮아.”
“조금만 더 하면 올라갈 수 있어.”
“이 정도면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아.”

하지만 기준점은 어디에도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끝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나에게 하는 말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평범함이라는 허상을 향해 에너지를 모두 쓰지 말라고.
그 기준에서 조금 벗어나도 괜찮다고.
그만큼의 여유가 있어야 내가 나를 납득하며 살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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