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이건 트루먼쇼다!

by 유니로그


말 안 듣는 ‘미친 네 살’이라는 말이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세 살까지는 밥 잘 먹고, 잠 잘 자는 것에도 칭찬을 받던 아이가
네 살이 되면 자아가 생기고
최대한 자기 뜻대로 모든 걸 하려고 할 때 붙는 표현이다.


부모는 아이를 사회에 내보내기 위해
선과 악,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려 하고
아이는 그 모든 규율을 받아들이지 못해
울고 소리 지르고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저항을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 모두 이런 시기를 지나 어른이 되었다.
사랑받고 자랐고, 예의와 매너를 지키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른의 세계’는 노력한 만큼 길이 열릴 거라 믿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면
세상은 그런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타이밍, 환경, 인간관계, 감정, 돈.
이 변수들이 한 번만 어긋나도
내가 만든 계획 전체가 흔들린다.
분명 정직하게 살아왔고, 부모가 알려준 선을 지켰는데도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때부터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마치 세상이 나를 일부러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와, 세상이 날 억까하네?” 같은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가끔은 내 인생이 트루먼쇼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말이 안 되는 일들이 연달아 터지는’ 그 순간의 감각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있다.

이건 분명 누군가의 테스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나를 압박해 오는 현실을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때 ‘럭키비키적 사고’가 유행한 것도 같은 이유다.
사람들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버텨내고 있는지
그 밈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결국 긍정은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생존 기술에 가까운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다.
대부분은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을 실패라고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그 순간이
방향 조정의 신호일 때가 많다는 점이다.


어린아이가 네 살 즈음 처음으로 좌절을 배우는 것처럼
어른도 일정한 주기마다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흐름을 마주하게 된다.
이건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구조 자체가 원래 그런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할 때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무조건 버티는 게 아니라
“지금은 조정의 구간이다”라고 인식하는 감각.
이 감각이 있어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아무리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


시간은 흐른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고통 때문에 주저앉을 수도,
고통을 통과해서 껍질을 벗고 더 큰 나비로 변할 수도 있다.

이 선택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본인이 택하는 것이다.

숨을 죽이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해나가다 보면
세상은 다시 기회를 준다.
마치 “테스트를 통과했구나. 그렇다면 이번엔 이 동아줄을 받아봐라”
하고 건네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인간의 퀘스트는 죽으면 끝나지만
사는 동안 주어지는 시험은 수도 없이 반복된다.
그렇다면 조금은 재미있게 해 보는 건 어떨까.
피할 수 없는 게임이고 어차피 플레이해야 한다면
내 방식으로 즐겁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결국 인생은 나의 것이고
나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은 실패가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한다는 표시일지 모른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
그게 어른의 세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새로운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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