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에너지원은 한정적이라는 것
멈춘다는 건 먹사니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현대인의 삶은 정글의 동물과 다르지 않다.
사냥하러 나가지 않으면 서서히 죽어가는 구조 속에서,
밥벌이는 생존을 위해 멈출 수 없는 활동이 된다.
밥벌이가 안 되면 의식주도 어렵고,
설령 ‘캥거루족’이 가능하더라도 그 자괴감이 인간을 파괴한다.
누구나 결국 자신을 책임져야 하고,
그 책임을 지기 위한 일은 인간을 단단하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끝없는 고통 속에 머물게 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거의 예외 없이 맞닥뜨리는 질문이다.
‘이 길이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고민을 하는 것조차 배부른 소리인가 하는 죄책감까지 뒤따른다.
나 역시 이런 착각을 벌써 세 번째 하고 있다.
타인이 아니라 늘 나 스스로를 문제 삼고, 걸고넘어지고, 다시 뜯어보는 과정을 반복하며
내 길을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한 길을 가다가 갑자기 멈추는 행동은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다.
멈춘다는 건 용기다.
그리고 오늘날 그 용기를 내지 못해 몸과 마음이 고장 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멈춰보면 매번 확인되는 사실이 있다.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적이라는 것.
이번에 워킹맘을 경험하며 이 사실을 가장 뼈저리게 느꼈다.
양육, 일, 가정.
어디에서도 빠지고 싶지 않았고,
내가 없어져도 모든 곳이 문제없이 흘러가길 바랐다.
그 마음으로 뛰어든 결과, 나는 잿더미가 되었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고 나면
그 에너지를 다시 채울 시간을 나에게 줘야 하는데
나는 그 사실을 무시했다.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동시에 해내려 하면
결국 몸이 먼저 무너진다.
내 에너지원은 무한하지 않다.
어디에 집중할지 정하는 것이 효율을 극대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잿더미가 된 뒤에야 이 사실을 인정했다.
매년 더 현명해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나는 몸소 겪어봐야 체득하는 인간이라는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
번아웃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 속에서 마음의 병을 얻어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결국 나라는 인간을 과시했던 탓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과신했고, 견딜 수 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진실은 단순하다.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잊고 산다.
SNS 속 ‘갓생’을 보며 쉽게 속는다.
“난 다 해내는데, 너도 못 할 이유가 없다”는 메시지에 흔들린다.
하지만 인간은 모두 다르게 생겼고 에너지의 크기도 다르다.
N잡을 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효율을 극단적으로 계산하며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점을 간과한 채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오해하고
스스로에게 너무 높은 기준을 들이댄다.
그러다 좌절하고, 다시 시도조차 못한 채 주저앉는다.
아파봐야 아는 사람이 남긴 글을 읽고
더 이상 새롭게 아픈 사람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마음을 헤집고 아픈 것을 드러내며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에너지원은 한정적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쓸 것인지, 무엇을 거둘 것인지
멈추지 않고 조급해지는 대신
차분히 조율해 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