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규어 팔아 억대 매출 찍던 라이브 커머스 완판녀

'해외영업'의 실체는 맨땅의 헤딩이다

by 유니로그

가장 최근까지 내가 했던 일은 중국에서 성인용 수집 피규어를 소싱하고 수입하여 국내에 판매하는 일이었다. 사실 나는 피규어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보물일지 모르나, 내 눈에는 필수재도 공공재도 아닌 그저 사치품이자 예쁜 쓰레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에 수많은 사람이 열광하고 지갑을 여는 세계가 있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어쩌다 보니 피규어 소싱 MD가 되었고,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팔 수 있을지 밤낮으로 궁리하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때는 2021년, 코로나의 파도를 타고 온라인 쇼핑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라이브 커머스’가 시장을 뒤흔들고 인스타그램엔 ‘팔이피플’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그때,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다닌 회사는 10년 넘게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해 온 곳이었다.

마침 네이버는 '브랜드스토어'를 밀어주며 라이브 쇼핑 수수료 할인 프로모션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경쟁사들이 유명 유튜버를 섭외해 화려하게 시작할 때,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가기로 했다.

**"해외 브랜드 직수입을 통한 가격 경쟁력"**을 슬로건으로 걸고 직원이 직접 카메라 앞에 서기로 한 것이다.

“대표님, 제가 해보고 싶습니다. 저 사실 유튜버 출신이거든요.”


당황한 대표님 앞에서 내 유튜브 채널을 증거물로 들이밀었다.

그렇게 ‘피규어 알못’인 여직원의 무모한 라이브 도전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오히려 피규어를 모른다는 점을 전략으로 삼았다.

고가의 피규어를 명품 가방 다루듯 하얀 장갑을 끼고 조심조심 다루는 전문가들과 달리, 나는 피규어를 손에 쥐고 마구 포즈를 잡았다. “여러분 보세요, 진짜 튼튼하죠? 저 같은 ‘똥손’이 막 다뤄도 안 부러집니다!” 캐릭터 분석과 설명은 동료들에게 속성으로 전수받아 콘티를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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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0년간 소통 없던 자사몰에 갑자기 등장한 여직원이 피규어를 휘두르는 모습은 고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직구보다 싼 정식 수입품이라는 메리트와 라이브 단독 할인이 맞물리며 주문 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이는 자연스럽게 자사몰 신규 고객 유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카메라 밖에서 벌어졌다.


1년간 공을 들여온 중국의 신성, 가성비 끝판왕으로 불리는 모 브랜드의 **‘한국 공식 총판권’**을 따내기 위한 사투였다. 연락처조차 알 수 없던 그 회사에 닿기 위해 나는 위챗(WeChat), QQ, 바이두, 웨이보를 샅샅이 뒤졌다. AS 센터 연락처로 매일 다른 내용의 메일을 보내며 간곡하게 어필했다.

마침내 연결된 담당자는 “이미 한국 총판이 있다”며 거절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현재 총판은 마케팅이 전무합니다. 우리가 맡는다면 SNS 마케팅은 물론, 한국 시장에서 가장 핫한 ‘라이브 커머스’ 역량을 총동원하겠습니다.”



이커머스의 핵심이 라이브 방송인 중국 브랜드에 이 제안은 매력적인 카드였다. 결국 기존 계약이 종료되자마자 우리는 독점 총판권을 거머쥐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네이버 쇼핑 MD에게서 직접 연락이 왔다.

네이버에 브랜드 샵으로 승격과 라이브쇼핑 시 메인 배너 구좌를 지원해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 전화를 받던 순간, 지난 1년의 개고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은 ‘해외영업’이나 ‘MD’라고 하면 화려한 비즈니스 미팅을 떠올린다. 하지만 내가 배운 실체는 다르다. 해외영업은 맨땅에 헤딩하는 용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의 다른 이름이다. 네이버 메인에 걸린 우리 브랜드 배너를 보며 느꼈던 그 짜릿한 성취감은, 오직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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