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공부를 왜 해야 되는데요?
매일 학교-학원-집을 무한 반복하는 인생이 정말 죽기보다 재미없었다.
그 답답함을 메우려고 귀엔 힙합을 꽂고, 라디오 속 남 사는 이야기나 들으면서 세상 구경은 책으로 대신했다. 사실 학교 생활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인데도 학교 안의 그 묘한 사회생활이 너무 피곤했다.
"왜요?"라는 질문은 안 통하고, 이해도 안 가는데 무조건 "그냥 지켜라", "따라라" 하는 규율들이 내 자유를 갉아먹는 기분이었다.
다들 초중고 졸업하고 대학 가는 게 당연한 루트라는데, 난 그게 왜 당연한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공부만이 답이 아닐 것 같은데 아무도 다른 길은 안 알려주고 "일단 공부나 해"라고 하니 속만 터졌다.
사고를 쳐야만 자퇴할 수 있는 분위기라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솔직히 학교는 나한테 감옥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안 했다.
지금 와서 공부 안 한 핑계를 길게 늘어놓나 싶지만, 사실 그때 누군가 내 눈높이에서 "네가 하기 싫은 일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공부는 도구로 필요해"라고 딱 한 번만 제대로 말해줬다면 내 성적표가 그 모양은 아니었을 거다.
공부는 안 했지만 이상하게 운은 좋았다.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친구 따라 들어간 합창부에서 상을 휩쓰는 바람에, 실업계 성적이었던 내가 가산점을 받아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별이 보고 싶어서 학교 내 제일 지원이 빵빵한 천체 관측 동아리에 들어갔다.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는데, 면접 때 중학교 합창부 이야기를 써먹었다.
학교에선 참 이상한 학생이었다.
규율은 지키는데 무리엔 안 끼고, 혼자 햇볕 아래 앉아 힙합이나 듣고 있었다.
친구들이 나보고 '돌아이'라고 부르며 커서 뭐 될 거냐 물으면, 난 "평생 여행이나 하고 살고 싶다"라고 했다.
공부 빼곤 다 관심 있었다. 특히 정치. 학원 가는 길에 은행 들러서 혼자 신문을 정독하고 나올 정도였으니까. 나중에 대학 가서 학생회나 농활을 다니며 민노총에 가입한 학생들을 통해 실체를 보고 정나미가 뚝 떨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난 세상 돌아가는 게 궁금했다.
대학 입시가 다가와도 탱자탱자 노는 나를 보며 아빠는 "혹시 대학이랑 이미 계약이라도 되어 있냐"라고 비웃었다. 그러다 국어과외 선생님이 추천한 논술학원을 잠깐 다녔는데, 거기 선생님이 "너 글쓰기에 소질 있다, 기승전결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서술할 줄 아네?"라며 칭찬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어릴 때 하릴없이 읽었던 책들이 나도 모르는 새 내 무기가 되어 있었던 거다.
공부는 안 했지만 내신이 중하위권이라도 하던 내신은 엄마가 전폭적으로 지원한 사교육에 있었을 것이다.
학교 학원 과외를 전전하며 듣기라도 한 것들이 시험문제에서 동그라미를 그리게 되었던 것
"내 학원비 안 아까웠어?" 물어보면 엄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 돈 썼으니 네가 비행청소년이 아니라 그냥 공부 안 하는 청소년이었던 것"이라고.
고등학교 때 북경을 다녀온 오빠의 권유로 중국어과를 선택했다.
사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보고 감명받아서 간 것도 크다.
내신은 바닥이었지만 고등학교 동아리 상장 몇 개로 4년제 대학에 합격했다.
친척들까지 "네가 4년제를?" 하며 놀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막상 대학에 가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공부를 안 했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근데 신기하게 중국어는 너무 재밌었다. 내가 선택해서 듣는 공부는 꿀맛이었다. 리포트도 술술 써냈다.
대학생활의 정점은 중국 교환학생 시절이었다. 거기서 '보헤미안의 삶' 그 자체인 선배를 하나 만났다.
자유를 선망했고 하고 싶은 건 앞뒤 재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사람이었다.
그 선배를 따라 학교 안에서 한국 선크림을 팔기 시작했다. 학교 내 장사를 하는 대신 장사 수익금은 한국어를 공부하는 현지 학생들에게 기부했다.
교과서 붙들고 외울 땐 죽어도 안 들어오던 중국어가, 물건 팔고 사람 만날 땐 입에서 막 터져 나왔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던 내가, 누군가의 공부를 돕기 위해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느꼈다. 유학을 온실 속 화초처럼 공부만 하러 왔다면 절대 못 느꼈을 그 '하면된다'라는 명제가 내 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걸.
생각보다 잘 지내는 나를 보고 부모님이 중국으로 편입해서 거기서 졸업하라고 했으나, 중국의 무질서함과 무례함이 싫던 아직 어리던 나는 거절하고 한국으로 컴백했고 한국에서의 취직을 준비했다.
그 이후 가이드 일을 하면서 10대 학생들을 만나면 내 솔직한 과거를 다 말해줬다. "나도 공부 진짜 못했다"라고. 하지만 지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고.
내 공부 인생은 남들보다 늦게 터졌을지 몰라도, 그만큼 더 선명하고 재미있다.
앞으로 내뱉을 이야기가 더 많다. 내 '공부 잔혹사'는 여기까지지만, 내 '인생 유랑기'는 이제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