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어도 고! 하고 싶은 건 일단 하고 보자
졸업을 앞두고 다시 유학을 갈지, 당장 밥벌이를 시작할지 고민하던 내게 부모님은 '지원 중단'이라는 강수를 두셨다.
"교환학생 때 거기서 졸업할 기회를 네 발로 걷어찼으니, 이제부턴 네 돈 벌어 네 인생 살아라."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나는 등 떠밀리듯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는 2013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로 신입 일자리는 씨가 말랐던 '취업 빙하기'였다. 중국어를 살리고 싶었지만, 쟁쟁한 인턴 경험을 앞세운 '중국 현지 대학 출신'들을 이기기엔 내 스펙은 너무 얇았다. 결국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복지가 가장 괜찮아 보이던 자동차 부품 회사의 품질보증부 신입 자리를 꿰찼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정해진 업무만 끝내면 나머지는 고졸 인턴들이 알아서 척척 해냈고, 나는 그저 서류 정리나 하며 시간을 때웠다.
남들은 '꿀보직'이라며 부러워했지만, 젊은 내 안의 열정은 갈 곳을 잃고 썩어가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인생에서 유일하게 재미를 느꼈던 '중국어'를 단 한 마디도 쓸 일이 없다는 게 너무 아까웠다.
회사에서 아낀 에너지를 퇴근 후 중국어 학원에서 불태우며 결심했다. "그래, 대만 워킹홀리데이를 가자."
대만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중국은 싫고, 홍콩은 영어를 잘해야 했으니까. 번체자를 다시 배워야 한다는 두려움 따위는 '여기서 탈출하고 싶다'는 갈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 연고도, 친구도 없이 도착한 대만에서 나는 세상이 나를 속이나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방을 양도해 준 친구부터 그 친구의 친구들까지, 아무것도 모르던 나를 대만 생활에 녹여주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한국에서의 안정감을 버리고 온 배수진의 마음이었기에 3개월간 미친 듯이 중국어에 매진했다.
"딱 3개월만 빡세게 공부하고, 그다음부턴 내 손으로 돈 벌어 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대만생활이야기는 아래 링크에 있어요)
https://brunch.co.kr/brunchbook/dear-taiwan
대만에서의 첫 밥벌이는 게스트하우스 스태프였다. 청소부터 예약 관리까지 도맡으며 막연하게 꿈꿨던 '민박 운영'의 환상은 깨졌지만(너무 고됐다!), 그만큼 치열하게 놀고 일하며 하루를 채웠다.
6개월간의 고된 민박 체험기를 마치고, 어학당 친구의 소개로 골프채 수출입 업체 통번역 자리로 옮겼다.
여기서 나는 내 인생의 뜻밖의 재능을 발견했다. 내 일은 단순 번역에 그치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한국 시장을 뚫고 싶어 했고, 나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 영업'을 시작했다.
방법은 단순하고도 무식했다.
네이버에 '골프채'라고 검색해서 나오는 규모 있는 업체들을 죄다 리스트업 했다.
그리고는 무작정 전화를 돌렸다. 대만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우리 회사를 알리고 제안을 던졌다.
전화를 안 받으면 포기하지 않고 메일을 보냈다. "우리 이런 회사인데,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라고.
솔직히 누가 대만에서 온 전화를 덥석 믿어줄까 싶었지만, 진심을 다해 두드리고 나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십 통의 전화와 메일을 뿌린 끝에 기적이 일어났다.
대구와 경기도에 있는 업체 두 곳에서 연락이 닿은 것이다!
단순히 상담에서 끝난 게 아니라, 실제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복수 전공으로 책에서만 봤던 '국제통상'의 이론들이 내 손끝에서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만든 리스트가 계약서가 되고, 실제 물건이 오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그 희열은 한국의 자동차 회사에서 '월급 루팡'으로 지낼 때는 상상도 못 할 종류의 것이었다.
'아, 나는 앉아서 서류 정리할 사람이 아니라, 직접 부딪혀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구나.'
내가 뭘 잘하는지 처음으로 명확하게 깨달은 지점이었다.
워킹홀리데이는 단순히 돈을 벌거나 언어를 배우는 시간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큰 도판 위에서 내가 어떤 패를 던졌을 때 승률이 높은지 '맛보기 체험'을 하기에 이보다 좋은 프로그램은 없다.
나는 해외 경험을 주저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무조건 떠나라고 외친다.
네이버 검색창 하나로 해외 영업을 성사시켰던 그 무모한 도전이 지금까지 이어온 밥벌이의 힘이었으니까.
맨땅에 헤딩하며 온몸으로 체득한 경험은 내 안에서 세상 그 무엇보다 단단한 싹으로 피어난다.
그 경험 하나가 인생 전반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무조건 못 먹어도 고! 일단 가보는 거다.
자, 이제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판을 키울 차례다. 이번엔 물건이 아니라 아예 '사람의 마음'을 통째로 훔쳐보기로 했다. 바로 길바닥 위의 영업, '투어가이드'라는 직업을 통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