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까라면 까"-영업의 본질을 파악하기까지

일반 사무직이 제품소싱과 해외영업으로 직종을 바꾼 이유

by 유니로그

"그냥 까라면 까는 거야."

어느덧 사회생활 14년 차. 누군가는 이 말을 시대에 뒤떨어진 수동적인 태도라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 이 말은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닌,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 내고야 마는 **'야생의 실행력'**을 의미했다. 일반 사무직으로 시작해 대륙을 뒤지는 소싱 전문가가 되기까지, 나를 키운 건 8할이 이 지독한 '해내기 정신'이었다.


01. 엑셀의 칸을 채우며 배운 '직장인의 무게'

나의 첫 사회생활은 평범한 일반 사무직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응애' 아기 같던 내가 돈을 받고 책임을 다하는 어른의 세계에 진입한 것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하고, 내 일 때문에 누군가 두 번 손대게 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별것 아닌 서류 정리를 위해 기꺼이 야근을 자처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주 사소한 일조차 실수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태도가 내 자리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갈증이 생겼다. "딱 여기까지만 해도 된다"는 적당함 속에 내 그릇을 가둬두고 싶지 않았다. 진짜 내 그릇의 크기가 궁금해졌다.


02. 알리익스프레스 1페이지부터 100페이지까지

대학 시절 전공한 중국어와 무역 통상을 실전에 써먹어 보고 싶어 직종을 바꿨다. 두 번째 직장에서 내게 주어진 미션은 '중국발 전자부품의 최저가 소싱'이었다.

AI도, 똑똑한 툴도 없던 시절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알리익스프레스 1페이지부터 100페이지까지 무작정 뒤지는 것이었다. 판매자들에게 다이렉트 채팅을 보내고 단가를 깎았다. 공장에서 보내오는 불량 원인을 분석해 중국어 PPT로 리포트를 만들어 다시 제조사에 보냈다. 그렇게 불량률을 줄이는 것이 곧 회사의 마진이자 나의 성과였다. 6개월간 미친 듯이 파고들었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제품'에 대한 흥미였다. 조금 더 가슴 뛰는 제품을 다뤄보고 싶었다.


03. 맨땅에 헤딩으로 얻어낸 '한국 총판'의 권리

세 번째 직장에서 드디어 운명 같은 제품을 만났다. 어른들의 장난감, '피규어'였다. 3명뿐인 단출한 회사였지만 나는 이곳을 내 비즈니스의 첫 실험실로 삼았다.

우선 일본 제품의 수입 단가를 낮추기 위해 대만 업체를 샅샅이 뒤졌다. 유통 단계를 줄여 마진을 20% 가까이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 성취감에 힘입어 이번엔 중국 제조사의 '한국 총판권'에 도전했다. 웨이신과 위챗, QQ를 이잡듯 뒤져 AS 센터 연락처를 알아냈고, 담당자와 닿기 위해 한 달 동안 끈질기게 구애했다.

"이미 한국 총판이 있다"는 거절이 돌아왔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기다리겠다, 우리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증명하겠다"며 비전을 제시했다. 결국 진심은 통했다. 영업이란 결국 상대의 수익을 높여줄 확신을 주는 일이라는 본질을 그때 몸소 배웠다.


04. 서류가방 하나로 세계를 누비던 그들처럼

대만 무역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 나의 첫 업무는 무작정 한국의 골프채 판매처 리스트를 뽑아 전화를 돌리는 '콜 영업'이었다. "이게 정말 될까?" 싶었지만, 실제로 계약이 성사되고 거래가 터졌다. 서류가방 하나 들고 전 세계를 누볐다는 대만 상인들의 저력이 무엇인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일반 사무직이던 내가 거친 무역과 영업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건, 결국 **"까라면 일단 제대로 까보겠다"**는 정신이었다.

돈을 받는 프로라면 시키는 일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 '나의 흥미' 한 방울을 섞을 수 있다면, 그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닌 나만의 커리어가 된다. 오늘도 나는 나를 소싱한다. 시키는 일을 넘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키는 일로 만들기 위해서.

월, 목, 일 연재
이전 06화인생에 정지 버튼이 눌렸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