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사무직이 제품소싱과 해외영업으로 직종을 바꾼 이유
"그냥 까라면 까는 거야."
어느덧 사회생활 14년 차. 누군가는 이 말을 시대에 뒤떨어진 수동적인 태도라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 이 말은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닌,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 내고야 마는 **'야생의 실행력'**을 의미했다. 일반 사무직으로 시작해 대륙을 뒤지는 소싱 전문가가 되기까지, 나를 키운 건 8할이 이 지독한 '해내기 정신'이었다.
나의 첫 사회생활은 평범한 일반 사무직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응애' 아기 같던 내가 돈을 받고 책임을 다하는 어른의 세계에 진입한 것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하고, 내 일 때문에 누군가 두 번 손대게 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별것 아닌 서류 정리를 위해 기꺼이 야근을 자처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주 사소한 일조차 실수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태도가 내 자리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갈증이 생겼다. "딱 여기까지만 해도 된다"는 적당함 속에 내 그릇을 가둬두고 싶지 않았다. 진짜 내 그릇의 크기가 궁금해졌다.
대학 시절 전공한 중국어와 무역 통상을 실전에 써먹어 보고 싶어 직종을 바꿨다. 두 번째 직장에서 내게 주어진 미션은 '중국발 전자부품의 최저가 소싱'이었다.
AI도, 똑똑한 툴도 없던 시절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알리익스프레스 1페이지부터 100페이지까지 무작정 뒤지는 것이었다. 판매자들에게 다이렉트 채팅을 보내고 단가를 깎았다. 공장에서 보내오는 불량 원인을 분석해 중국어 PPT로 리포트를 만들어 다시 제조사에 보냈다. 그렇게 불량률을 줄이는 것이 곧 회사의 마진이자 나의 성과였다. 6개월간 미친 듯이 파고들었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제품'에 대한 흥미였다. 조금 더 가슴 뛰는 제품을 다뤄보고 싶었다.
세 번째 직장에서 드디어 운명 같은 제품을 만났다. 어른들의 장난감, '피규어'였다. 3명뿐인 단출한 회사였지만 나는 이곳을 내 비즈니스의 첫 실험실로 삼았다.
우선 일본 제품의 수입 단가를 낮추기 위해 대만 업체를 샅샅이 뒤졌다. 유통 단계를 줄여 마진을 20% 가까이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 성취감에 힘입어 이번엔 중국 제조사의 '한국 총판권'에 도전했다. 웨이신과 위챗, QQ를 이잡듯 뒤져 AS 센터 연락처를 알아냈고, 담당자와 닿기 위해 한 달 동안 끈질기게 구애했다.
"이미 한국 총판이 있다"는 거절이 돌아왔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기다리겠다, 우리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증명하겠다"며 비전을 제시했다. 결국 진심은 통했다. 영업이란 결국 상대의 수익을 높여줄 확신을 주는 일이라는 본질을 그때 몸소 배웠다.
대만 무역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 나의 첫 업무는 무작정 한국의 골프채 판매처 리스트를 뽑아 전화를 돌리는 '콜 영업'이었다. "이게 정말 될까?" 싶었지만, 실제로 계약이 성사되고 거래가 터졌다. 서류가방 하나 들고 전 세계를 누볐다는 대만 상인들의 저력이 무엇인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일반 사무직이던 내가 거친 무역과 영업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건, 결국 **"까라면 일단 제대로 까보겠다"**는 정신이었다.
돈을 받는 프로라면 시키는 일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 '나의 흥미' 한 방울을 섞을 수 있다면, 그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닌 나만의 커리어가 된다. 오늘도 나는 나를 소싱한다. 시키는 일을 넘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키는 일로 만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