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으면 맛있을까] 2화

이탈리안이 인싸 퀴진이라면 러시안은 고독 그 자체?

by 이마루

내가 좋아하는 퓨전 요리 중 하나는
김치 크림 파스타다.

처음 먹었을 땐 의심이 들었다.
‘김치랑 크림이 된다고?’
그런데 된다.
그 이후로는 불고기 파스타, 된장 파스타, 마라 파스타까지 의심하지 않는다.
파스타는 어떤 문화와도 잘 섞이는 음식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런데 모든 요리가 잘 섞이진 않는다.

이를 테면 러시아 요리는 왜 퓨전 세계에서 자주 보이지 않을까?

물론, 러시아에도 멋진 전통 요리가 있다.
보르쉬, 비프 스트로가노프, 블리니, 펠메니.
그런데 이 요리들이 다른 나라 음식과 만나면 대체로 ‘러시아 음식 그대로’이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퓨전 파스타는 수백 가지인데, 퓨전 보르쉬는 왜 하나도 없을까?

이탈리아 요리는 ‘기반’이 된다.
면, 치즈, 토마토, 올리브오일.
이 네 가지를 조합하면 어떤 재료든 잘 어울리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이탈리아 요리는 ‘열려 있는 조리법’을 가지고 있다.
볶아도, 끓여도, 구워도, 말려도 된다.
기본은 단순하고, 변형은 자유롭다.

그래서 이탈리아 음식은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재해석되는 것”이 된다.

반대로 러시아 요리는
폐쇄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진 생존형 요리가 많다.
긴 겨울을 견디기 위해 발효하고, 절이고, 훈제하고, 쌓아두는 방식이다.
‘언제든, 어디서나, 쉽게 바꿀 수 있는 맛’이 아니다.

무엇보다, 러시아 음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형이다.
단순한 맛이지만 그 조화가 무너지면 전체가 어그러진다.
딱 맞게 맞춘 퍼즐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마 러시아 요리는 섞이기보단 유지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퓨전은 ‘여백’에서 생긴다.
조금 부족하거나, 덜 어울리는 부분이 있어야
다른 것이 들어설 공간이 생긴다.

이탈리아 요리는 그 여백이 넓다.
러시아 요리는 그 여백이 좁다. 아니, 아예 닫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퓨전 요리에서
가장 잘 섞이는 음식은 완벽한 음식이 아니다.
불완전하게 비워져 있는 요리다.

열려 있는 레시피,
너그러운 기본기,
융통성 있는 식재료.

이 세 가지가 있을 때,
음식은 국경을 넘어간다.

언젠가 ‘된장 보르쉬’를 먹을 수 있을까?
아마 가능은 하겠지만, 그건 보르쉬를 포기한 된장국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된장을 빌려 쓴 보르쉬이거나.

섞는다는 건
둘 다 살아남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퓨전은 언제나 모험이다.
그리고 나는 그 모험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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