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길쭉길쭉 네덜란드_2

로테르담과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상관관계

by 우당퉁탕세계여행


네덜란드를 여행하면서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크게 다르다고 느껴졌던 부분이 이동수단이었다. 인구수보다 많다고 말해지는 자전거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도시마다 이어진 수로 위에는 보트가 일상처럼 떠다닌다.

프랑스 파리에서도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꼈지만 네덜란드만큼은 아니었다. 자전거는 일부 계층의 선택지가 아니라 일상적인 교통수단이었고, 도로 체계 역시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도시 곳곳에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끊김 없이 이어지고, 신호체계와 주차 공간까지 자전거 이용을 전제로 만들어져 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촘촘하게 연결된 수로 위를 오가는 보트였다. 강이나 운하가 도시의 경계를 나누는 요소가 아니라, 또 하나의 도로처럼 기능하고 있었다. 관광용 보트뿐 아니라 실제 생활을 위한 배들도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고, 수로는 풍경이자 교통망으로 동시에 작동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나 보트 덕분인지 자동차의 교통체증을 느껴보지는 못했는데 보트의 통행 때문에 다리가 들어 올려지는 경우가 잦아서 장시간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 서서히 들어 올려지는 다리를 바라보며 복잡하고 마음 급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반 고흐 미술관 (Van Gogh Museum)


빈센트 반 고흐는 아마도 네덜란드 출신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명일 것이다. 네덜란드 남부의 작은 도시출신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한 명이다. 생전에는 거의 인정받지 못했지만, 사후 그의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암스테르담에 그의 작품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이 있어서 찾아갔다. 인터넷 예매가 필수인 줄 모르고 그냥 찾아갔는데 당일 원하는 시간대 예매가 불가능해서 첫 번째 날에는 허탕을 쳤고, 다음날 원하는 시간대를 예매해서 입장할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을 대표하는 관광지답게 사람이 많기 때문에 사전예약은 필수이다.

평소에는 미술에 큰 관심이 없지만 반 고흐 미술관에서는 집중하기 위해서 추가요금을 내고 오디오 가이드도 빌렸다. 주요 작품마다 한국어로 소개해 주는데 작품수가 많아서 다 보기 힘들었는데, 주요 작품에 얽힌 스토리들을 재밌게 들을 수 있었다.

전시는 반고흐의 생애 순서에 맞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초기 작품들이 전시된 공간에서는 색감이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거웠다. 농민과 노동자를 그린 그림들이 많고, 화면 전체가 묵직하게 눌러앉아 있다. 흔히 떠올리는 강렬한 노랑과 파랑의 반 고흐와는 꽤 다른 모습이었다.

전시를 계속 보다 보면 어느 시기를 지나면서부터 그림이 밝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시골 고향에 살다가 프랑스 파리에서 지내며 다른 화가들과의 교류와 일본 판화의 영향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고 한다. 색이 늘어나고 붓질이 가벼워지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반 고흐 작품의 특징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오디오 가이드 기준으로 동선이 잘 짜여 있어서, 가이드에 나온 작품만 봐도 전체 흐름을 놓치지 않게 되어 있었다. 돈 아낀다고 오디오 가이드를 하나만 빌려서 서로 불편하기만 했던 옛날 기억을 떠올려서 각자 빌렸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반고흐 미술관은 미술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시대별, 주제별로 분류해 놓는 일반적인 미술관의 구성이 아니라 한 화가의 삶을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게 만든 미술관이어서 오히려 미술관 관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이곳의 구성과 흐름이 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암스테르담은 도심 공간을 보행자·자전거·대중교통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서 자동차 통행과 주차를 줄이려는 정책(Autoluw)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확실히 차량이 많지 않고 운전과 주차에 불편함을 많이 느꼈다. 그래서 보통 암스테르담 시내 외곽에 주차를 하고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암스테르담 도심에서 운전은 비추천이다.

그동안 유럽에서는 안전을 위해 공영주차장이나 지하주차장을 선호했는데 주차장도 찾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암스테르담에서는 노상주차를 주로 했다. 유럽의 대도시인 바르셀로나나 파리보다는 치안이 괜찮다는 믿음이 있었고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눈에 띄는 특별한 랜드마크가 없어도 도로처럼 연결되어 있는 운하 때문에 걷는 재미를 느끼며 암스테르담 시내 풍경을 둘러보았다. 어떤 목적지가 있어서 걷기보다는 이동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이렇게 그냥 무작정 걷는 것도 여행의 재비 중 하나라는 걸 느꼈다. 운하폭이 넓지 않고 블록단위가 작아서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편안하게 돌아다녔다.

감자튀김이랑 와플도 먹고 이것저것 구경도 하다가 암스테르담에서 반고흐 미술관만큼 유명한 관광지가 떠올랐다. 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안네프랑크의 집이었다. 때마침 근처여서 바로 갔는데 바로 입장 가능한 표를 구할 수 없었다. 사전예약이 필수라 고하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안네 프랑크 가족과 지인들이 2년 넘게 숨어 지냈던 실제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여 기념관이자 박물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화려한 전시나 연출도 없고 건물자체의 외관도 정말 평범해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건물 앞쪽에 서있던 안네 프랑크의 동상을 보고 갑자기 힘들었던 당시의 상황에 공감하며 슬퍼하는 와이프를 다독이며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더 밸리 (The Valley)


네덜란드에 소재한 설계사무소 MVRDV에서 설계한 더 밸리는 2021년에 완공된 주상복합건물이다.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면 찾아오지 않을 암스테르담 중심 비즈니스 지구에 위치한 복합 건축물은 각각 높이가 다른 세 개의 타워로 이루어져 있다. 커튼월로 이루어진 외관은 주변의 오피스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각도를 달리하면 건물이름이 왜 더 벨리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지상층부터 구경했다. 저층부에는 상업시설들이 들어서 있어 직장인들이 이용하는 레스토랑들이 영업 중이었다.

건물 앞 공지에는 더 벨리 건물의 컨셉을 형상화한듯한 조형물이 있었는데 스케일이 적당해서 앉아서 쉬기 좋은 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더 벨리의 4층과 5층 외부공간은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어 있어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다.

Valley는 자연의 지형과 골짜기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는데, 보통의 건물처럼 직사각형의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테라스가 불규칙적으로 돌출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시공 난이도가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는 형태다.

시공 난이도가 높아지면 공사 기간은 길어지고, 비용 역시 크게 증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를 감행한 이유는 단순히 눈에 띄는 조형을 만들기 위함이라기보다, 건축을 통해 도시 안에서 자연에 가까운 경험을 구현하려는 의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MVRDV의 설계 의도에 따르면 더 벨리는 건물을 하나의 덩어리로 세우기보다, 층층이 쌓인 지형처럼 구성해 도시 속에서도 산책하고 건물을 오르내리며 자연을 체험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내로라하는 건설사들이 합작해 시공했다고 하는데, 볼수록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단한 건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의 건물은 기준층을 설정하고 동일한 평면을 반복하지만, 더 벨리는 같은 층 안에서도 세대 타입이 모두 다르다. 그만큼 구조와 마감, 방수와 배수에 관련된 문제를 각기 다른 조건에서 개별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오만을 여행하며 마주했던 협곡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공개된 층과 가까운 세대들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한 탓인지, 화려한 공간의 인상과 달리 전체적인 분위기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건축가의 이상에 대한 실제 거주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엇갈린다. 테라스와 조망, 자연을 체험하는 주거 환경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지만, 비정형 구조로 인한 생활의 불편함과 높은 유지관리 부담은 분명한 단점으로 언급된다고 한다. 더 벨리는 효율적인 주거의 해답이라기보다, 특정한 가치와 취향을 가진 사람을 위한 주거 실험에 가깝다.


프랑스 편에서 소개한 마르세유의 유니테 다비다시옹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최초의 주상복합 시스템을 실험한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처럼 당시의 기준으로는 비효율적이고 무척 과감한 시도였지만, 더 벨리 역시 도심 속의 주거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묻는 실험이라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루이스 하우스 (Sluishuis)


암스테르담 수변에 위치한 덴마크 출신의 건축가 BIG (Bjarke Ingels Group)이 설계한 건물이다. 2022년에 완공되었고 442세대가 살고 있는 주거건물이다.

더 벨리가 자연의 지형을 수직으로 끌어올린 건축이라면, 슬루이스 하우스는 도시 블록을 물 위로 펼쳐 놓은 건축물처럼 보인다. 매 층 형태가 달라져 기준층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지만, 세대 구성은 비교적 동일한 타입으로 반복되고 테라스 역시 일정한 규칙을 유지하고 있다. 이 반복성 덕분에 전체 매스는 복잡해 보이면서도 읽기 쉬운 질서를 갖고 있고, 시각적으로도 더 벨리에 비해 한층 안정적이고 편안한 인상을 준다.

일부러 좀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전경을 보기 위해서 멀리서부터 걸어갔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워낙에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이라서 기대가 컸던 만큼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수변공간은 슬루이스 하우스를 더욱 인상 깊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건물 하부에는 보트가 드나들 수 있는 수로와 공용 공간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 공간들은 단지 내부의 특수한 장치라기보다,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운하를 이용한 생활방식을 자연스럽게 건축 안으로 끌어들인 결과처럼 보였다.

물 위에 떠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지하주차장까지 있는 건물이다. 거주자 전용이라서 외부인 출입은 불가능했다. 소형부터 대형평수까지 다양한 타입이 있는데 중형평형대가 70~100m2 규모라고 한다. 찾아보니 약 8억에서 12억 원에 거래된다고 하는데 암스테르담 시내의 동일한 평수의 가격보다도 비싼 금액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집값이 너무 높아서 그런지 꽤 괜찮은 금액으로 느껴진다.

더 벨리나 슬루이스 하우스처럼 주거 공간은 관광객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보니, 접근에 제한이 있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졌다. 1층 일부 공간만 개방되어 있었고 그 위로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실제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불필요한 영향을 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오래 머물지 않고 건물의 외관과 주변 환경만 살펴보고 나왔다.

올라가기 싫게 생긴 외부계단도 있었는데 입주민들 전용옥상정원으로 연결되는 계단이라고 한다.

내부에는 ‘ㅁ’ 자 형태의 중정이 계획되어 있었다. 수변을 향해 시원하게 열려 있는 외부 공간의 인상이 강하지만, 건물 안쪽 역시 상당히 적극적으로 비워져 있다. 독특하게도 내부 중정을 향해서도 테라스가 배치되어 있는데, 특히 코너부의 테라스들은 서로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 보였다. 동일 세대가 아니라면 시선 간섭이나 프라이버시 문제를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구성이다.

이런저런 걱정과 근심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할 선택을 실제 건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독특한 형태 이상의 실험과 가능성에 대한 도전으로 읽힌다.

BIG의 건축은 추상적인 개념을 은유적으로 풀기보다, 도시 조건과 프로그램, 법적인 규제를 그대로 형태로 변환하는 데서 출발한다. 일조 사선, 조망, 동선, 공공성 같은 조건들이 누적되면서 건물의 형태가 만들어지고, 그 과정이 비교적 명확하게 읽힌다. 쉽게 말해서 왜 건물 형태가 이런 모양인지에 대한 설명이 논리적으로 이해가능해진다.

그래서 학생 때도 BIG스타일의 다이어그램을 많이 참고도 하고 좋아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BIG작품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다음 여행지인 덴마크 여행도 더욱 기대되었다.




로테르담 (Rotterdam)


로테르담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항만도시이다. 현재 약 65만 명이 거주하는 로테르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도심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전쟁 이후 기존 도시 조직을 복원하기보다,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는 선택을 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중세적 도시 경관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덕분에 건축물 구경을 좋아하는 우리는 기대를 충족하는 시간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차로 약 한 시간 떨어진 로테르담은 당일치기로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미리 정리해 둔 건축물들을 중심으로 이동하며 도시를 둘러보았는데, 이동 동선이 비교적 단순하고 건물 간 거리도 명확해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작품을 살펴보기에 수월했다. 관광지라기보다는 실제 생활과 업무가 이루어지는 도시의 분위기가 강해서 암스테르담보다 관광지 같지 않아서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도시였다.

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혹시나 또 있을까 봐 찾아봤는데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로테르담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프랑스어로 노트르담 (Notre-Dame)은 성모마리아를 뜻하고 로테르담은 (Rotterdam)은 네덜란드어로 로테르 강에 세워진 댐이다.




큐브하우스 (Kubuswoningen)


예전에 배낭여행을 하면서 봤던 건축물 중에 가장 특이했던 건물이라서 기억에 오래 남아 있던 큐브하우스를 또다시 방문했다. 다시 또 봐도 참 독특하다. 네덜란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나라라는 것을 또 한 번 상기시켜 주는 건물이다.

로테르담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로 피에트 블롬(Piet Blom)이 설계했다. 1984년에 완공된 이 주거 단지는 집은 도시 위에 떠 있는 나무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기울어진 큐브 형태는 나무의 수관을, 하부의 기둥은 줄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큐브하우스는 로테르담의 이 건물이지만, 사실 최초의 큐브하우스는 네덜란드 남부지역 박지성의 아인트호벤 근처 헬몬트라는 도시에 1976년에 지어졌다. 파알보닝언 (Paalwoningen)이라는 이름의 주거건물인데 기둥주택이라는 뜻이다.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듯 주거공간을 지면에서 띄어 기둥을 만들고 숲을 이루고 싶다는 그의 개념을 실현한 건물이다.

출처 - 위키디피아

40세대의 각 주택은 약 45도 기울어진 정육면체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한 세대를 관광객들을 위해 유료투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 놨는데, 내부 역시 일반적인 주거 평면과는 확연히 다르다. 벽과 천장이 비스듬히 만나는 공간에서는 가구 배치와 동선에 제약이 생기고 안 그래도 좁은 공간에 계단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공간 사용 방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든다. 효율만을 기준으로 보면 매우 불리한 구조지만 현재까지도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불편함을 상쇄하는 매력이 있는듯하다.

똑같이 생긴 네모난 건물들만 늘어선 단조로운 도시에 긴장감을 주는 이런 건물 하나쯤은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 자체가 워낙 강렬해서 주변을 압도하지만, 그만큼 도시의 풍경을 단번에 환기시키는 힘도 가지고 있다.

모든 건축이 이렇게 실험적일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 시도가 완전히 배제된 도시 역시 쉽게 지루해진다.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에서는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피에트 블롬의 큐브하우스는 살기 편한 집이라는 기준에서는 분명 호불호가 갈리지만, 도시 차원에서는 단조로움을 흔들어 주는 장치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켓홀 (Markthal)


이번엔 시장에 왔다. 위 사진의 건물이 시장이다.

로테르담에 사무실이 있는 MVRDV가 설계하여 2014년에 완공된 주거 복합 건물이다. 마켓홀은 거대한 아치 형태의 건물 안에 시장을 집어넣은 구조다. 외형만 보면 단순한 조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치의 테두리 부분에 주거 세대가 들어가 있고, 가운데 빈 공간이 시장으로 사용된다.

정말 모든 꿈이 실현되는 것만 같은 나라 네덜란드다.

이 독특한 형태는 조형을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기능에서 출발했다. 로테르담 시는 위생 기준을 충족하는 실내 시장을 원했고 동시에 도심 주거 밀도를 높일 주거공간이 필요했다. 그 결과 시장 위와 주변을 주거로 감싸 시장과 주거를 하나의 건물로 결합하는 과감한 시도가 실현되었다. 이 거대한 공간이 특별한 이벤트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장을 보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참신했다.

건물 내부는 높이 약 40m에 달하는 하나의 거대한 공간으로, 천장 전체에 과일·채소·꽃을 그린 대형 이미지가 덮여 있다. 관광객에게는 시각적으로 강렬하지만, 실내가 주는 안정감과 개방감 덕분에 단순한 관광 시설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천장을 자세히 보면 아치 형태의 외피를 따라 창문들이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 창문들은 상부에 배치된 주거 세대의 개구부다.

시장 상부와 외곽에는 총 200여 세대의 주거 공간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마켓홀은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공간이 된다.

단일 프로그램의 대형 공공건축이 아니라, 생활 기능을 함께 품은 구조라는 점에서 로테르담의 도시 재생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의 시선은 주로 거대한 아치와 내부 이미지에 머물렀지만, 실제로 마켓홀이 일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지하 공간에 있다. 대형 마켓이 있는 지하공간은 주차장과 물류 하역이 지상 보행자 흐름과 분리되어 계획되면서, 공공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유지시켰다고 한다. 화려한 상부 공간과 달리 지하는 매우 현실적인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대비가 마켓홀을 단순한 상징 건축이 아니라 실제 사용되는 건물로 만든다.

시장 밖으로 나와서 주거를 바라보면 자칫 평범한 건물로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인근에 소주바와 가마솥이라는 한글이 보여 반가웠고 외국인들로 꽉 찬 모습이 뿌듯했다.




MVRDV 사무실


뭔가 한 단락으로 넣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의미가 있어서 기록한다.

로테르담에 기반을 둔 MVRDV 사무실이 근처에 있어서 걸어가 보기로 했다. 토요일인데 당연히 쉬어야지 누가 일하냐는 듯이 굳게 닫힌 문을 보고 기뻤고, 한편으로는 지금도 출근해서 일하고 있을 설계사무소 누군가를 생각하며 슬펐다.

설계사무소 투어라니 당황스러운 여행동선이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MVRDV 5행시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 수장고

(Depot Boijmans Van Beuningen)


사무실도 봤으니 다시 작업물을 보러 갔다. 로테르담 뮤지엄파크(Museumpark) 안에 있는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 수장고는 2021년에 완공된 세계최초의 공개형 미술관 수장고이다. 이 역시 MVRDV가 설계했다.

뮤지엄파크 인근에 있는 대학병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공원을 가로질러갔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이었는데 공원에서 퇴근 후 여유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 멀리 수장고가 보이기 시작했다. 화분 같기도 하고 컵 같기도 한 형태의 건물이다. 반사율이 높은 유리로 둘러싸인 외관은 주변의 나무와 하늘, 공원의 풍경을 그대로 비추고 있어 건물 자체의 윤곽이 흐릿해져 보이는 효과가 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건물의 크기가 실감 났다. 도심 한가운데에 놓인 수장고라는 프로그램과 달리, 위압적인 느낌보다는 주변 환경에 스며들게 하려는 건축가의 의도가 느껴졌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작은 스케일의 공원 속에 놓인 조형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미술관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중요한 시설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수장고라는 가장 폐쇄적인 공간을 개방적인 장소로 만들기 위해 옥상에 루프 가든을 조성하고 이를 일반에 개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동안에는 수장고 내부 일부가 시야에 들어오는데, 온도와 습도 관리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하는 작품 보관 공간을 유리로 마감해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옥상에 도착하니 레스토랑이 가장 먼저 보였다. 옥상공간을 레스토랑과 정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닫힌 기능 위에 열린 공간을 배치한 구조가 이 건물의 핵심 개념이다. 많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미러 유리가 시각적으로 옥상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유료입장이지만 늦게 간 탓인지 운 좋게 무료로 입장하여 옥상까지 알차게 둘러보았다.


유럽에 오니 건축물 위주의 여행이 주가 되었다. 중간중간 반 고흐 미술관이나 하이네켄 박물관 투어를 하긴 했지만, 뭔가 미뤄둔 숙제를 바쁘게 끝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대적으로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나라여서 그런지, 액티비티 활동이 뜸해서 그런지 건축물만 찾아다니는 여행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이 들었다.

단순한 관광보다는 도시와 건축을 공부하는 경험에 가까운 여행이 되었다.


우리는 좀 더 여유롭고 재미를 찾는 여행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다음 여행지인 덴마크로 향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