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살고 싶은 덴마크_2

그들이 사는 방식

by 우당퉁탕세계여행

덴마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다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했다. 바로 블루투스의 어원이다. Bluetooth는 10세기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통합했던 왕 하랄드 블로탄드(Harald Blåtand)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직역하자면 Blå는 파란, Tand는 이빨(치아)을 뜻한다. 파란 이빨을 가진 하랄드 왕이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여러 부족을 하나로 통합했듯, 서로 다른 기기들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의미에서 그의 이름이 상징적으로 차용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블루투스 로고 역시 우연이 아니다. 북유럽의 고대 룬 문자 가운데 ᚼ(H, Harald)와 ᛒ(B, Blåtand)를 겹쳐 만든 것이 지금 우리가 매일 보고 사용하는 블루투스 로고다. 하랄드 블로탄드 덴마크 왕은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매일같이 부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덴마크는 너무 평화롭고 사건사고도 없어서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그런 여행지는 아니었다. 블루투스의 어원이 된 왕 하랄드 블로탄드도 있고, 여전히 전 세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안데르센의 동화도 있다.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던 레고는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어느새 어른들의 지갑까지 설레게 하는 재테크를 위한 투자의 대상이 되었다.

너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2024년 9월 초 덴마크 코펜하겐과 오덴세의 여행기록이다.




코펜하겐 (Copenhagen)


지난 글에 이어 코펜하겐 두 번째 이야기다. 코펜하겐의 면적은 서울의 약 1/3 수준이고 인구밀도는 서울의 1/12 수준인 80만 명이라고 한다. 높은 인구 밀도와 제한된 토지 안에서 많은 사람을 수용해야 했던 조건은, 서울의 주거 형태를 위로 쌓는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반면 코펜하겐의 주거 형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도심과 주거 지역 전반에 걸쳐 중저층 연립주택과 타운하우스가 주를 이룬다. 보통 3~5층 규모의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얼마나 많이 수용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박스 형태의 단순한 형태보다도 획기적이고 독특한 형태의 건물들이 많았다.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들도 많아서 여러 곳을 찾아가서 직접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8 House (8 Tallet)


코펜하겐의 건축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주거 건축물이다. 코펜하겐 외곽, 외레스타드(Ørestad)에 위치한 8 하우스는 앞서 소개했던 BIG (Bjarke Ingels Group)가 설계하여 2010년에 완공된 총 476세대가 지내고 있는 주상복합 건축물이다.

출처 - archdaily

하늘에서 보면 8 자 형태를 하고 있는 8 HOUSE는 최고높이가 10층이지만 자전거를 타거나 유모차를 끌고도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완만한 경사라고 한다.

예전에 사진으로 봤을 때 몇 가지 궁금했던 점이 있어서 직접 건물을 보고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말끔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주거공간이다 보니까 외부인들의 출입에 제한이 있었다. 평일 10시부터 16시까지만 관람이 가능하고 6명 이상의 그룹은 사전 가이드 예약을 통해서만 투어가 가능하다고 한다. 내부에서의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우리는 아쉽게도 16시 30분에 도착하는 바람에 외부만 둘러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8 자 형태의 건물에는 두 개의 큰 중정이 있어서, 단일 매스로 이루어진 대형 주거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내부 깊숙한 곳까지 채광이 들고 환기가 가능하다. 사실 476세대는 수천 세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작은 규모이지만 단일 건물임을 감안하면 대규모 주거 건물이다.

여러동으로 나누는 방식 대신에 대규모 단지를 여러 동으로 나누는 대신, 하나의 건물 안에서 밀도와 다양성을 해결하려는 선택은 덴마크의 주거형태에 대한 고민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반면 단점도 분명해 보였다. 실제로 거주자들은 노약자가 이용하기에는 경사로가 힘들다는 의견과 겨울이 긴 날씨와 해안가임을 고려하면 미끄러움에 대한 우려가 항상 있다고 한다. 복도형 아파트가 그렇듯 사적 영역과 공용 동선의 경계가 비교적 약해서 조용함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집 밖 복도의 소음이 신경 쓰인다고 한다.

도시의 골목길을 경사로 형태로 재해석한 8 하우스는 커뮤니티가 이뤄지길 바라며 공간을 제공했으나 실제로 자연스러운 커뮤니티가 이루어지긴 어렵다고 한다.


8 House가 있는 Ørestad(외레스타드)는 코펜하겐의 대표적인 계획 신도시다. 우리가 봤을 때는 굉장히 여유롭게 보였던 코펜하겐도 과밀화라고 판단해서 생긴 도시라고 한다. 백지에서 시작한 도시이고 디자인을 중시하는 나라답게 창의적인 형태와 아이디어를 가진 건물들이 유독 많았다.

우리나라는 발코니를 확장해 실내 공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느껴질 만큼, 많은 사람들이 집과 외부 공간의 경계를 실용성의 관점에서 다뤄왔다. 한정된 면적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넓은 실내를 확보하는 것이 주거의 질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발코니는 햇볕과 바람을 들이는 완충 공간이기보다는, 거실을 넓히기 위한 여분의 면적으로 인식되어 왔다.


반면 덴마크의 주거에서 외부 공간은 쉽게 흡수되지 않는다. 테라스와 발코니는 실내의 확장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남겨둔 ‘밖’이다. 그 공간은 면적 효율보다는 계절을 느끼며 차 한잔하고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다.




VM Houses


8 하우스 인근에 또 BIG가 설계한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진 건물이 있었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알파벳 V와 M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어서 VM 하우스가 되었다. 우리나라 아파트를 생각해 보면 박스형태의 서로 마주 보는 형태가 일반적인데 아래 사진처럼 건물의 형태에 변화를 줘서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도록 했다.

BIG는 설계 당시 모든 세대가 서로 정면으로 마주 보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고, 조망과 채광을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의도하여 저런 독특한 형태의 매스가 되었다고 한다.

출처 - 위키미디어

배치도 특이한데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점은 일부 세대 발코니가 뾰족한 삼각형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VM Houses가 완공된 2005년 무렵의 Ørestad는 아직 개발 초기 단계였다. 주변은 비어 있었고, 서쪽으로는 Amager Fælled의 넓은 초지와 습지가 열려 있어 상층부에서는 자연 조망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Ørestad는 다르다. 이후 20여 년 동안 주거와 상업 시설이 빠르게 들어서면서 밀도가 크게 높아졌다. 한때 열려 있었을 시야는 이제 인접 건물들에 의해 상당 부분 채워졌고, 설계 당시 의도했던 조망 조건은 상당히 달라진 상태다.

직접 본 VM Houses의 발코니는 다소 불편해 보였다. 뾰족하게 꺾인 발코니는 시각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실제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제약처럼 느껴졌다. 삼각형으로 돌출된 형태는 가구를 놓거나 여러 사람이 함께 머물기에는 효율적이지 않아 보였고, 발코니 사이의 거리 또한 생각보다 가까워 개인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반쯤 열린 공공장소에 서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설계 의도는 분명 시선을 분산하고 빛을 확보하는 데 있었겠지만, 현장에서 체감한 공간은 완전히 독립된 외부 공간이라기보다 서로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반 개방적 영역에 가까웠다. 이상적으로 설계된 개념과 실제 생활에서의 체감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어 보였다.




선인장 타워 (Cactus Towers)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지만 용도가 주거였기 때문에 내부공간을 보는 것과 사진촬영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늘상 그렇듯이 지금 아니면 내가 덴마크를 또 언제 오겠냐는 아쉬움이 남아 외관만이라도 보기 위해 Cactus Towers로 향했다. 멀리서도 감탄이 나오는 실루엣이었다.

2022년에 또 BIG가 설계한 소형 임대주거건물이다. 두 개동에 1인 청년주거를 위한 약 30제곱미터 크기의 소형평수 495세대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특이한 건물 외관을 보면 층마다 발코니가 가운데 코어를 중심으로 회전하며 배치되어 있다. 각 층이 조금씩 틀어지며 쌓이기 때문에 입면이 선인장처럼 가시가 돋은 형태로 보인다.

이케아세권

BIG건축답게 조형성은 매우 강하지만 실제 사용성은 논쟁적이라고 한다.

이전에 소개한 BIG의 다른 건축물인 8 House, VM Houses는 건축 투어를 따로 운영해서 예약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Cactus Towers는 아직 공식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2월 현재 에어비앤비를 확인해 보니 1박에 30만 원이 넘어가는 비싼 금액이지만 8 HOUSE와 CACTUS TOWER에는 숙박이 가능했다.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잊지 못할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오덴세 (Odense)


덴마크에 올 때는 독일에서 배를 타고 왔지만 다시 독일로 돌아갈 때는 보고 싶은 덴마크의 도시들이 있어서 육로로 돌아가기로 했다. 북유럽 특유의 가로등과 노을이 멋진 저녁시간이었다.

오덴세 (Odense)는 퓐(Funen) 섬에 위치한 도시로 덴마크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도시다. 인구 약 20만 명의 조용하고 단정한 느낌의 오덴세는 코펜하겐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고향이다. 인어공주와 미운오리새끼, 성냥팔이 소녀 등 유명한 동화를 지은 작가다. 오덴세 여행은 안데르센으로 시작해서 안데르센으로 끝났다.

늦은 오후에 도착해서 쉬고 다음날 오덴세 여행을 시작했다. 안데르센 생가를 첫 목적지로 정했는데 마을이 크지 않아서 숙소에서부터 걸어갔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고 하늘은 넓게 열려 있다. 덴마크의 9월 중순의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오덴세 구시가지 바닥을 보면 금속으로 된 작은 발자국 모양 표식이 이어져 있는데, 그 길을 따라가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과 관련된 장소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준다. 관광 안내판 대신 바닥의 발자국이 길잡이가 되어 도시를 걷게 만드는 방식이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첫 번째 목적지인 안데르센 생가에 도착했다. 1805년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자란 집이다. 집은 정말 작았다. 가구도 소박하고, 공간도 단순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세탁일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그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어린 나이에 혼자 코펜하겐으로 올라가 생계를 해결하며 예술가의 길을 모색했다고 한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 중에는 미운 오리 새끼나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처럼 유독 소외받고 환경이 어려운 캐릭터가 많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사회적 기반 없이 성장했던 그의 어린 시절은 이러한 인물 설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생가 자체에 별로 볼 건 없어서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오덴세 구시가지는 덴마크 제3의 도시라는 규모라기엔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주요 볼거리가 모여 있었다.

15세기 중세시대 때 지어진 성당도 있어서 잠깐 구경하고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박물관으로 향했다.

오덴세시는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 이후 관광·문화 거점을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었고, 기존의 분산된 전시 공간을 통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진행한 국제 공모전에서 일본 출신 건축가 구마 켄고의 계획안이 당선되었다.

덴마크의 동화 작가를 기념하는 공간을 먼 나라 일본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건물은 크지 않지만, 도시 안에서 가장 현대적인 건물이었다.

대부분의 전시 공간이 지하에 배치되어 있다. 지상에는 낮은 유리 파빌리온과 정원, 곡선형 담장이 배치되어 있고, 건물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덴세 구시가지는 낮은 목조 건물과 소규모 골목이 중심이라, 대형 랜드마크를 세우기 어려운 환경인데, 평소에도 거대한 상징 건축을 세우기보다, 주변 맥락에 스며드는 건축을 지향하는 겐고쿠마의 설계안인 지하 중심 설계가 도시 맥락과 잘 맞아 보였다.

배치도를 살펴보니 직선 복도 대신 완만하게 휘어진 벽과 반복되는 원형 매스가 눈에 들어왔다. 닫힌 전시 공간과 열린 정원이 교차하며 이어지는 동선은 단순한 관람의 흐름이라기보다 하나의 이야기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건물 자체가 안데르센의 동화를 공간으로 풀어낸 듯한 인상을 남겼다.

내부 전시는 체험형 전시가 많아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안데르센의 원고, 초판본, 개인 소지품 같은 실물 자료도 전시되어 있었지만 동화 속을 연출해 놓은 듯한 공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어두운 공간을 지나면 갑자기 밝은 빛이 들어오고, 천장과 벽면에 투사된 이미지가 공간 전체를 감싼다. 우리는 동화의 한 챕터가 끝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듯이 동선을 따라서 약 두 시간 동안 공간을 이동했다.

안데르센 박물관답게 만 18세 이하는 무료입장이라고 한다. 성인도 약 이만 원 정도의 요금이었는데 재미있고 알찬 경험이었다.





레고 하우스 (LEGO House)


세계여행을 하면서 원산지 때문에 놀랐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레고(LEGO)였다. LEGO는 1932년 덴마크의 작은 마을 빌룬드 (BILLUND)에서 시작됐다. 창립자 Ole Kirk Christiansen은 처음에는 가구와 사다리 같은 목공 제품을 만들던 장인이었고, 대공황 이후 남은 나무 조각으로 장난감을 만들면서 레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LEGO’라는 이름은 덴마크어 Leg Godt(잘 놀다)에서 따온 말로, 처음부터 놀이와 창의성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었다.

플라스틱 블록은 1949년에 등장했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스터드(돌기) 결합 방식은 1958년에 특허로 완성됐다. 이후 레고는 단순한 장난감을 넘어, 교육·창의·시스템 사고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덴마크 특유의 실용성과 장인정신, 그리고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교육 문화가 레고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오덴세에서의 짧았지만 알찼던 안데르센 투어를 마치고 다음날 한 시간 반 거리의 빌룬드(BILLUND)로 향했다.

또 Bjarke Ingels Group(BIG)가 설계하여 2017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건물 전체는 마치 실제 레고 블록을 하나씩 쌓아 올린 듯한 형태를 하고 있다. 단일한 조형이 아니라, 여러 개의 박스가 겹치며 만들어내는 입체적 조합이 핵심이다. 이는 레고의 ‘시스템 플레이(System Play)’ 개념을 건축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레고로 만든 레고하우스

레고하우스는 레고 블록형태로 만들어진 유명한 건물이고 수많은 레고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레고로 만들어진 포뮬러 1 차량이 실제 크기로 있었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감탄사가 쏟아졌다.

레고 하우스의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1층이 공공 광장처럼 열려 있고, 티켓이 없어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채광 덕분에 야외 느낌도 많이 나고 흥미로운 레고들을 구경하고 레고 스토어와 카페(Brickaccino Café)까지 이용할 수 있다.

1층을 개방한 덕분에 레고 하우스는 하나의 폐쇄적인 박물관이 아니라, 도시의 중심에 놓인 공공 건축물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1층부터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가득했다. 레고가 찍어주는 사진도 경험하고 입장할 때 주는 팔찌로 갓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6개짜리 빨간 블록을 받을 수 있는데 이걸 자신만의 조합으로 만들어보는 놀이도 할 수 있었다. 한쪽 벽에 전시도 되어있었는데 혹시 겹치는 게 있나 봤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경우의 수가 약 9억 1천만 가지 정도 된다고 한다.

레고 하우스 중앙에는 창의력의 나무 (Tree of Creativity)가 자라고 있었다. 나무는 여러 층을 가로지르며 설치되어 있어서 중앙 계단과 여러 층에서 모두 볼 수 있다. 높이는 약 15.7m 정도이며, 6,316,611개의 레고 브릭으로 만들어졌는데 조립하는 데만 약 24,350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레고 하우스의 내부는 색으로 구분된 네 개의 존으로 나뉜다. 각각은 창의, 논리, 관계, 감정을 주제로 한다. 레고는 놀이를 하나의 능력으로 분류하고, 그 능력을 공간마다 다른 콘셉트로 배치해 놓았다.

아이들이 뭘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놀이가 어떤 사고를 만들어내는가를 구조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예전에 한때 레고 재테크가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희소성에 대한 기대가 많이 줄어들어서 지금은 많이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레고 하우스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정말 신기하고 특이한 작품이 많았다.

가장 좋았던 점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았다는 점이다. 시간만 있었다면 하루종일도 놀 수 있을 거 같았다. 손녀와 함께 엄청 집중해서 레고를 조립하는 할아버지가 너무 보기 좋았는데 알고 보니 모르는 사이었다. 진짜 애나 어른이나 할거 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게 된다. 한쪽에선 아빠들이 더 신나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레고가 전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은 이유가 분명해 보였다. 레고하우스에서는 공간과 프로그램 전반에서 참여를 중심에 둔다. 관람객은 소비자가 아니라 제작자가 되고, 전시는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이 된다. 이런 구조가 레고를 단순한 장난감 브랜드가 아닌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그날 독일로 넘어가는 스케줄 때문에 서둘러 와이프에게 꽃 하나를 만들어주었다. 판매 중인 레고 꽃들을 봐서 그런지 막 좋아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덴마크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휘게(Hygge) 문화다.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을 뜻하는데 화려한 파티보다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낮은 조도의 조명이나 촛불아래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소박한 대화를 나누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덴마크사람들의 센스 있는 인테리어나 조명 등 디자인도 바로 이 휘게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휘게 가 일상적인 이유는, 덴마크 사회가 삶의 속도를 의도적으로 낮추기 때문이다. 일과 삶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저녁 시간을 지키며, 비교를 최소화하는 구조 속에서 휘게 문화는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고 한다.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쓰는 삶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충분하다고 느끼는 연습도 꼭 필요한 거 같다.


다음 여행지는 총 9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독일이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