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차곡차곡 독일_1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그들이 기억하는 방법

by 우당퉁탕세계여행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와 그에 대한 책임의 무게 때문인지, 독일은 늘 진지하고 딱딱하며 어쩐지 노잼일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2012년 첫 유럽 배낭여행 때도 그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여동생이 옛 서독의 수도였던 본에서 유학 중이어서 잠시 머물렀고, 가장 잘 알려진 도시인 베를린과 뮌헨을 여행했지만, 그때의 인상으로 선입견을 바꾸진 못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하면서 그 선입견이 많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 우리가 방문했던 독일의 도시들은 서로 닮아 있기보다는 각자 뚜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고, 이 나라를 하나의 이미지로 묶기에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여전히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도 느꼈지만 세계최대 맥주축제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춤도 추고 잔도 부딪히며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독일은 유럽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9개국이나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한 번에 독일을 돌아보기에는 동선이 너무 비효율적이라서 국경을 넘나들며 근처 국가들과 묶어서 여행했다.

독일은 이동을 위해 하루 머물렀던 도시 올덴부르크까지 포함해서 11개 도시를 여행했다. 네덜란드를 올라가면서 28. 쾰른 인근의 작은 마을 메헤르니히(Mechernich)를 여행하고, 덴마크를 갔다 오면서 독일의 북부도시들인 33. 함부르크와 32. 브레멘을 구경했다. 그리고 서쪽으로 이동해서 역사의 도시 38. 베를린, 올드타운이 인상적이었던 39. 드레스덴을 거쳐 동유럽을 여행했다.

이후에 10월에 열리는 옥토버페스트를 즐기기 위해 일정을 조정해서 58. 뮌헨을 갔고 우리보다 먼저 세계여행을 하고 독일에 정착한 와이프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 59.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했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독일 일정은 디즈니성이 멋지게 서있던 60. 휘센이었다.


수백 개의 공국과 자유도시로 분절된 채 출발한 독일은 늦은 통일로 인해 수도 중심의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군사·무역·경관 어느 쪽에서도 결정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한 독일 중앙부는, 결과적으로 화려한 대도시 대신 중소 규모의 도시들이 분산된 지역으로 형성되었다.


그래서 보통 독일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큰 도시들은 중앙부에 없고 독일의 가장자리에 많이 배치되어 있다. 우리의 여행 동선도 자연스럽게 독일의 중앙부는 지나치게 되었다.

중대한 사건들의 중심에 서 있었던 독일이 차곡차곡 쌓아온 역사를 직접 느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2024년 9월의 독일 여행기록이다.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

(Bruder Klaus Field Chapel)


벨기에에서 첫 캠핑을 하고 네덜란드를 가기 전에 독일의 쾰른에서 약 60km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 메헤르니히(Mechernich)에 있는 예배당을 보러 가기로 했다. 베토벤의 고향인 본이나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대성당이 있는 쾰른까지 여행하기에는 쉥겐 90일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은 스위스 출신 건축가 피터 줌토르(Peter Zumthor)가 설계하여 2007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인근 농부 부부가 스위스 성인 Niklaus von Flüe(브루더 클라우스)에 대한 개인적 신심과 감사의 표시로 건립을 의뢰하면서 시작되었다. 지역 농부들과 공동체가 직접 참여해 여러 해에 걸쳐 천천히 시공했고, 이 과정 자체가 일종의 신앙 행위이자 공동체 프로젝트로 여겨진다. 2007년 완공 후 일반 방문객에게도 개방되면서 건축·예술·종교계에서 큰 주목을 받은 건축물로 2009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할 때 심사평에서 특히 강조되었던 작품이다.

주차장에서 걸어 나와 들판을 가로지르다 보면, 아무런 표지 없이 예배당이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넓은 평야 한가운데 세워진 이 건물은 압도적이었다. 차로 접근이 불가능한 작은 길 끝에 홀로 우뚝 서있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마을도 좀 떨어져 있고 화장실이나 기념품점도 없다.

마침 어떤 할아버지가 혼자 걸어가고 계셨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무교인 나도 뭔가 경건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아직 건물에 들어가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는데도 경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개인적 명상과 기도를 위한 소규모 예배당답게 아담한 규모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약 12m 높이의 예배당이 꽤 크게 느껴졌다. 주변이 비어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진 거 같다.

입구 쪽에는 동그란 모양의 금속판에 이 예배당의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예배당 자체가 특정 종파의 교회라기보다는, 개인적 신앙과 명상의 장소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십자가나 장식 대신 중립적이고 비위계적인 원형을 사용했다고 한다. 오픈시간이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으니 방문계획이 있다면 시간 확인이 필요하다.

예배당은 뾰족한 삼각형 형태의 아주 독특한 형태의 문이 달려 있었다. 피터 줌토르는 이 문 형태에 대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고 한다. 그동안의 인터뷰나 책의 내용으로는 이 문이 상태의 전환을 나타내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무게감 있는 삼각형 형태의 문을 열고 들어 가기 위해 우리는 몸을 숙이고 숨죽이게 되었다. 네모난 문을 통해 건물 안에 들어간다는 일반적인 경험이 아니어서 그런지 단순히 건물 안에 들어간다기보다 전혀 다른 공간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예배당 안과 밖에서 바라본 삼각형 문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넓은 들판에 툭 던져놓은 거 같은 건물을, 한국에서 여행온 사람이 찾아올 정도로 유명해진 이유는 특별한 시공방식에 있다. 원래 콘크리트를 타설 할 때 필요한 거푸집이라는 틀은 콘크리트가 굳고 나면 회수하는데 브루더 클라우스 들판 예배당은 그 회수방식이 특별했다.

예배당 내부에 통나무 112개를 텐트처럼 세우고 거푸집처럼 사용해서 콘크리트를 타설 했다. 여기까지는 별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내부에 설치한 통나무를 전부 태워버리는 방식으로 거푸집을 제거했다. 나무가 사라지고 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내부의 신비로운 공간이 되었다.

지붕에는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어 빛과 비, 눈이 그대로 내부로 들어온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빗물이 바닥에 고여 있었고, 그 위로 지붕의 구멍이 반사되어 또 하나의 천장처럼 보였다. 마침 우리 둘밖에 없어서 꽤 오랫동안 머무르며 공간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우리 둘 뿐인데도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이게 됐다. 특별히 조용히 하라는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공간에서는 소리를 크게 내는 행위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건물이 침묵을 요구한다기보다, 침묵이 가장 잘 어울리는 상태를 만들어 놓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대형 사무소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작품 수도 많지 않은 피터 줌토르의 건축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어, 아무것도 없는 이곳까지 일부러 찾아왔다. 접근은 불편했고 주변에는 넓은 들판뿐이지만, 그럼에도 이 장소가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는 분명했다. 이후에 스위스를 여행하며 몇 개의 줌토르 작품을 더 볼 수 있었는데 그의 건축은 규모나 형태와 상관없이 늘 인상적이었다. 눈에 띄는 장면을 만들기보다는, 건물에 머무는 동안의 감각과 상태를 천천히 바꾸는 공간들이었다.




브레멘 (Bremen)


특별한 여행계획이 있었다기보다 지나가는 동선에 잠깐 들른 도시다. 브레멘 음악단이라는 동화로 이름만 알고 있던 도시였는데 이렇게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나중에 찾아보니 브레멘 음악대는 브레멘을 목적지로 늙고 쓸모없어졌다는 이유로 버려질 위기에 놓인 네 마리의 동물이 여정을 떠나는 모험하는 이야기인데 결말까지도 브레멘은 목적지로만 등장할 뿐, 실제 배경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구시가지 광장에 동상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이 동상 또한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이 세상 유명한 동상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색이 다르다는 것이다. 가장 밑에 있던 당나귀의 코와 다리가 금색으로 변해있었다.

당나귀 개 고양이 수탉



함부르크 (Hamburg)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베를린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다. 독일 북부의 최대 항구도시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물류와 해상무역의 중심지라고 한다. 육로로 북유럽을 가기 위해서는 독일의 북부를 거쳐야 하는데 우리는 덴마크를 왕복할 때 잠시 들러서 한식재료도 구비하고 관광도 했던 도시다.




엘프필하모니 (Elbphilharmonie)


헤르초그 & 드 뫼롱 (Herzog & de Meuron) 이 설계한 엘프필하모니 건물에 왔다. 헤르초그 & 드 뫼롱 (HdM)은 비교적 최근인 2021년에 강남 청담동에 송은 아트센터를 설계하며 우리나라에도 이름을 알렸다.

2017년에 완공되어 함부르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게 된 복합시설이다. 전망대와 호텔 등의 용도가 있지만 콘서트홀이 메인 기능을 하고 있다.

엘프필하모니는 함부르크의 옛 항만 창고 지구였던 하펜시티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과거 화물 저장을 위해 사용되던 카이슈파이허 A(Kaispeicher A)라는 벽돌 창고를 그대로 남긴 채, 그 위에 새로운 콘서트홀을 얹는 방식으로 계획되었다. 기존의 벽돌창고는 주차장과 설비시설로 쓰인다고 한다.

멀리서부터 전경을 보고 싶어 일부러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걸어갔다. 엘프필하모니의 건물 상부는 왕관을 쓴 듯한 실루엣을 하고 있는데, 설계자는 이 형태를 엘베강의 수면과 파도, 그리고 콘서트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비롯된 음악의 리듬과 진동으로 설명한다. 묵직한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하부 매스 위에 반짝이는 유리 매스가 얹히며 만들어내는 강한 대비 때문에, 실제보다 더 화려하고 상징적인 인상으로 다가왔다.

엘프필하모니 1층에는 매표소가 있고, 그 옆에서 바로 플라자로 이어지는 긴 에스컬레이터가 시작된다. 플라자를 이용하는 사람은 무료입장이 가능해서 올라가 보기로 했다. 항구에서 강을 바라보다가 좁은 터널 같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 올라오면 탁 트인 전망대가 있는 플라자로 연결된다. 플라자는 지상 약 37m, 건물로는 8층 높이로 누구나 무료로 올라올 수 있는 공간이라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과 도시의 전망을 보러 온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있었다.

이 플라자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공간이 공공전망대다. 서쪽으로는 엘베강(Elbe River)과 항구, 다른 한쪽으로는 함부르크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경이었다.

전망대는 플라자 내부와 곡선으로 된 유리벽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바깥에서 바라볼 때 곡선이 더 잘 나타나보였다. 바닥은 같은 벽돌이 연속되어 깔려있는데 그 위에 유리벽이 얹혀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며 예전에 방문했던 송은 아트스페이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곳에서도 동일한 바닥재료를 사용했지만 유리벽으로 경계를 나눈 계단이 있었다. 두 건물 모두 문이나 벽으로 공간을 닫기보다는 시선이 통과하는 얇은 유리벽을 두어 공간을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유리는 경계를 만들지만 시각적으로 단절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같은 바닥 재료는 연속된 공간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일반적으로 내부와 외부를 구분할 때보다 경계가 모호해지는 느낌이다. 경계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경계가 경험을 끊어내지는 않는다.

송은 아트센터

장 누벨이 설계한 프랑스 파리의 필하모니 드 파리와 프랭크 게리가 LA에 설계한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 이어, 이번 여행에서 세 번째 콘서트홀 방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세 곳 모두 공연을 직접 관람하지는 못해 내부를 온전히 경험하지는 못했다. 늘 여행 일정에 쫓기거나 타이밍이 맞지 않았는데 조금은 잘 차려입고 공연 시간에 맞춰 입장해 보고 싶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건축으로 먼저 만났던 이 공간을, 음악이라는 본래의 쓰임으로 다시 경험해 보는 날이 온다면, 그때야 비로소 이 콘서트홀들이 완성된 모습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 (Berlin)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이자 서울보다도 약 1.5배 큰 대도시다. 냉전시대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과 곳곳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처들이 도시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든다는 인상을 받았다. 베를린의 유명한 박물관이나 관광지들 역시 대체로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여서 다른 유럽의 도시들과는 다르게 밝고 활기찬 분위기나 로맨틱한 느낌의 도시는 아니었다.

유럽에서 리스카 여행을 하며 이동 시간 동안 세계대전과 유럽 역사 관련 유튜브를 자주 들었는데, 실제로 그 나라들을 넘나들며 여행하니 내용이 훨씬 더 실감 나게 다가왔다. 특히 독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중심적인 역할로 반복해 언급되는 나라여서, 그 역사적 무게가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분위기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Neue Nationalgalerie, Berlin)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독일을 대표하는 근대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가 설계한 미술관으로, 그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다. 스페인에서 방문했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설계한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명이다.

2010년에 신국립미술관을 방문했을 때는 지하층을 못 내려가봐서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앤디워홀 전시까지 알차게 즐겼다.

1968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구조와 공간 개념이 매우 명확하다. 지상층은 유리와 철골로만 이루어진 단일전시 홀이고 지하층은 전시실과 수장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구조하중을 외부의 8개 철골기둥만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에 지상층은 하나의 커다란 공간이 되었다.

미스 반 데어 로에가 평소 추구했고, 건축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Less is more”와 “보편적 공간(Universal Space)”이 아주 잘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내부 공간을 비움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을 담을 수 있게 되었고, 전시의 성격이나 규모에 따라 공간이 유연하게 변하는 구조라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지금이야 유리 커튼월과 철골기둥을 써서 기둥이 없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꽤 흔한 건축물일지라도 그 당시에 구조와 비례만으로 이런 공간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시대를 앞서간 듯한 생각이 들어서 놀라웠다.

내부에 사람들과 유리에 비친 하늘

2010년 방문당시에는 지하층이 공사 중이었는데 시설이 노후되어서 지하 공간을 자주 수리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15년부터 6년에 걸쳐 데이비드 치퍼필드 (David Chipperfield)라는 영국출신 건축가가 리모델링을 해서 재개장했다고 한다.

미스 반데로에의 의도를 생각하여, 외관·비례·구조가 달라 보이지 않도록 노후된 설비(방수·공조·전기)와 지하 공간을 티 나지 않게 전면 교체했다고 한다. 부재 하나하나에 번호를 붙여 기록한 뒤 해체했고 다시 재조립해서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려고 했다는데, 6년이라는 공사기간이 납득이 갔다. 참고로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서울 용산에 아모레퍼시픽 본사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다.

마침 운 좋게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전시가 열리고 있어서 보기로 했다. 내부에 들어오자 기둥 없는 무주공간이 시원하게 열려 있었다. 검은색의 격자 천장도 인상적이었다. 현장에서 입장권 구매 후 지상층과 지하층을 둘러보았다.

지하의 닫힌 전시 공간에서 작품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동선 끝에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난다. 그 공간은 외부 테라스와 직접 이어져 있고, 조각공원으로 연결된다. 박물관 곳곳에는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직접 디자인한 의자들이 놓여 있어, 관람 중간중간 잠시 머물며 공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예전부터 건축가들은 건물의 형태를 설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이루어질 생활까지 함께 고민하며 가구를 직접 디자인해 왔다. 특히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의자는 작은 건축이다”라는 말을 남길 만큼, 가구를 단순한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 건축의 연장선으로 인식했던 건축가였다. 비싸지만 않으면 나중이 꼭 집에 들여놓고 싶은데 지금 크림에서 천 사백만 원에 팔고 있었다. 의자는 작은 건축이라는 말이 이런 뜻이었나.



베를린 유대인 학살 추모 기념물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참 마음이 무겁고 가라앉는 공간이다.

미국 출신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 설계하여 2005년에 개관한 홀로코스트 추모공간이다. 총 2711개의 서로 다른 높이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격자형태로 놓여 있는데 베를린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베를린은 나치 정권의 수도였고,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했던 정책·행정·명령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던 중심지였다. 이런 역사적 책임을 도시 공간 안에서 직접 마주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을 도시 외곽이나 분리된 성역이 아닌, 베를린 중심부에 의도적으로 배치했다.

대규모 추모 시설이 일상과 떨어진 장소에 놓일 경우, 특정한 날에만 방문하는 일시적 기억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기념물은 본인들이 저지른 뼈아픈 기억을 특별한 의식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로 남기려는 선택이었다.

바닥이 완만하게 기울어져 내부로 들어갈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방향감각이 흐려졌다. 나치 정권 하에서 학살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동상 같은 상징물을 배제하고, 누구나 쉽게 찾아와 슬픔을 기억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좁고 반복되는 콘크리트 격자 사이를 걸으며 공간의 깊이를 체감하기도 하고, 블록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책을 읽거나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엄숙한 행동을 강요하기보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과거와 마주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역사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무겁고 막중한 책임을 잘 보여주는 추모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유대인 박물관 (Jewish Museum Berlin)


이번 베를린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이었다. 유대인박물관은 처음 가보는 곳이기도 했고 큰 기대가 없었는데 건축과 그 공간이 주는 경험이 강렬했다.

유대인 박물관은 독일 내 유대인의 역사, 문화, 사회적 삶과 나치 시대의 홀로코스트까지 다루는 종합 역사박물관이다.

외관의 교차되는 선들이 어딘가 익숙했는데 독일계 미국인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한 건물이었다. 강남 코엑스 맞은편에 큰 원안에 빨간점들과 아래 사진과 같은 선들이 놓인 건물 입면 디자인과 부산 해운대 아이파크도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에 참여했다.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은 신관과 옛날 바로크양식의 본관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신관은 본관의 지하로만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유대인의 역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독일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는 설정이다.

가이드 어플이 있어서 이용했는데 평면이 정말 특이하다. 번개처럼 보이는 분절된 평면은 연속되지 않는 역사를 뜻한다고 한다.

리베스킨트는 부재(Absence)를 건축으로 드러내는 것을 컨셉으로 유대인의 역사에서 단절·상실·침묵을 건축의 공간과 동선, VOID로 표현했다. 공간에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는데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직접 공간을 보니까 쉽게 이해가 갔다.

설계자는 전시가 없더라도 이미 완성된 박물관이라고 말할 만큼, 꺾이고 불안정한 평면과 바닥이 기울어져 방향감각 상실을 유도한 정원, 채울 수 없는 상실을 뜻하는 비어 있는 수직공간이 정말 인상 깊었다.

그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홀로코스트 타워다. 굳게 닫힌 무거운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상부의 작은 틈 하나만 있는 콘크리트마감의 수직 공간이 나온다. 홀로코스트 타워 상부의 개구부는 너무 작고, 형태도 명확하지 않다. 빛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공간을 밝히지도 않는다. 벽을 타고 내려오지 않고, 바닥에 닿지도 않는다. 그저 “어디엔가 빛이 있다”는 사실만을 알려줄 뿐이다. 그 빛을 따라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다. 빛은 분명 존재하지만 닿을 수 없다. 내부에 여러 명이 있었는데 숨소리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폴란드 태생 유대인인 리베스킨트는 홀로코스트 타워의 작은 틈으로 보이는 빛이 “희망”이 되어 위로나 회복을 쉽게 말하지 않도록 불편함과 고립을 경험하도록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베를린은 가해의 중심이었던 도시다. 이곳에서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공간이 ‘위로’나 ‘회복’을 쉽게 말하는 순간, 기억은 정리되고 사건은 과거로 밀려난다. “그래도 결국 희망은 있었다”는 문장은 듣기에는 편하지만, 그 말이 만들어내는 안도감은 너무 빠르다. 리베스킨트는 안도의 감정을 경계했다.

닿을수 없는 희망

복도 끝에 이어진 망명의 정원에 왔다. 이전에 갔던 홀로코스트 기념비와 비슷한 느낌이다. 시야가 트이는데도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지 않는다.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몸이 기울어져 있다는 걸 바로 느끼게 된다. 정원 바닥은 수평이 아니다. 분명히 서 있는데, 계속 균형을 잡아야 한다. 똑바로 걷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고개를 들면 콘크리트 기둥들이 빽빽하게 서 있고, 그 위로 하늘이 잘려 보인다. 기둥 사이로 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그 나무는 바닥이 아니라 기둥 위에서 자라고 있다.

이 공간을 설계한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망명’을 새로운 시작이나 희망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보통 망명은 살아남았다는 의미로, 혹은 다른 삶의 가능성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 정원의 망명은 그런 희망적인 서사를 거부한다. 살아남았지만, 삶의 기준이 무너진 상태이고 어디에도 완전히 발을 붙일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정원에 세워진 49개의 기둥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그중 48개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상징하고, 하나는 베를린을 의미한다. 학살을 피해 타국으로 망명을 했었지만 홀로코스트 당시에는 이스라엘이 건국 전이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상태가 지속되자 유대인 스스로의 국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 결과가 이스라엘의 건국이라고 한다.

설계자는 망명의 정원의 불편한 바닥과 좁은 시야가 “고통은 있었지만, 결국 해결되었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길 바랐다. 어쩔 수 없이 갈 곳이 없어서 가게 된 망명이 자칫 아름다운 엔딩장면이 되지 않도록 나무들을 땅바닥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기둥 위에 얹어 놓았다.

인상 깊었던 설치작품도 있었다. 철판을 잘라 만든 얼굴 형태 디스크가 약 1만 개 깔려있었는데 폭력과 학살로 이름 없이 사라진 모든 사람들을 상징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비명을 지르며 절규하는듯한 표정이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른 얼굴이다.

특이하게도 이 전시는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동선 위에 있어서 다음 공간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직접 밟고 지나가도록 되어있다. 두꺼운 철판이 긁히고 부딪히는 소리는 크고 날카로워 듣기 싫은 비명처럼 들린다.

처음엔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발을 디디기가 망설여진다. 하지만 다른 길은 없다. 몇 걸음 지나면 시끄러운 소리에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내가 얼마나 큰 소리를 내고 있는지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결정도 하지 않았고, 아무 의도도 없었지만 이미 이 상황에 참여하고 있었다. 침묵과 무관심에 대한 경각심이 이 전시의 강력한 메시지였다.

우리 둘 다 이곳에서 나온 후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불편함이 느껴지는 걸 보면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결코 가볍지 않았던 거 같다.

자연은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각자가 보고 싶은 만큼 보고, 느끼고 싶은 만큼만 느끼게 한다. 하지만 건축으로 만들어낸 이 공간은 그렇지 않았다. 감정을 선택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전시를 모두 보고 나온 뒤에도 마음이 개운해지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이 감정이 해소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Berlin Wall Memorial)


예전 베를린 여행에서 베를린 장벽으로 유명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East Side Gallery)는 가봐서 이번에는 베를린장벽 기념관에 왔다. 기념관이라고 하는데 실제 장벽이 있던 장소 자체를 보존한 야외 기념 공간이다.

1961년부터 1989년까지 도시를 반으로 나눴던 장벽에 대해 찾아보다가 장벽이 무너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은 1989년 11월 9일이다. 나도 그렇고 흔히들 알고 있는 건 시민들이 벽을 부수며 역사가 바뀐 순간으로 기억되지만, 실제 계기는 훨씬 행정적이고 우발적이었다고 한다. 동독 정부가 서독 여행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새 규정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담당자가 시행 시점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고 “즉시 효력”이라는 발언이 생중계로 전달되었다. 그 말 한마디로 사람들은 국경으로 몰려들었고, 현장의 경비병들은 명확한 지침도, 무력을 사용할 명령도 받지 못한 채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약 28년간 버티던 장벽은 그렇게 ‘공식적인 결정’이 아니라, 통제 불능의 순간에 열려버렸다.

장벽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무너지고 있던 체제의 결과였다고 한다. 모르고 봤을 때는 그냥 유명한 관광지의 유명한 장벽으로만 알았는데, 두 번의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나니, 겨우 일부만 남아 있는 장벽이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처럼 느껴졌다.


며칠 동안 베를린 여행을 하면서 역사라는 무게를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환상적인 자연경관이나 반짝이는 도시의 화려함도 좋지만, 베를린에서 마주한 역사와 인간의 선택이 만들어낸 아픔을 느껴보는 것도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풍부함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유적과 기념물, 그리고 전시 공간들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과거의 사건과 역사 속 사람들의 선택이 오늘날 우리의 풍경 속에 어떻게 스며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고, 여행의 기억이 주는 단순한 즐거움 그 이상의 깊이를 갖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다.

베를린 여행 마지막날 해가 지고 있었는데, 뭔가 아름다웠는데 우울하고 센치해졌다.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대문자 T인 나한테는 참 소중한 시간이었고 여행이었다.


다음 여행은 지금까지 자유로운 일정을 모토로 여행하던 우리를 쫓기게 만든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뮌헨을 포함한 독일의 중남부 지역의 도시들이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