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버페스트와 비트라캠퍼스
요즘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화를 많이 내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다. 화내지 말자. 어차피 저 사람은 듣지 못한다. 양보가 우선이다.
도로 위의 분위기는 늘 팽팽하다. 다들 어딘가에 쫓기듯 움직이고, 여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신호 하나, 끼어드는 차 하나에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차 안에서 상대방을 향해 내뱉는 말들은 결국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다.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차에 탄 우리 가족뿐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면, 화를 낸다는 행위가 얼마나 허무한 감정소비인지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양보와 안전운전은 나의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9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을 여행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교통문화였다. 솅겐 지역이라 국경 검문이나 톨게이트 없이 바로 넘어갈 수 있는데 독일국경을 지나 고속도로에 들어오면 속도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이 시작된다. 달려보니 아우토반이 가능한 이유는 철저하게 1차선을 추월차로로만 사용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빨리 달리는 차들이라도 1차선으로 계속 주행하지 않는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밟아 보겠나 하는 생각으로 달려보려다가도 뒤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는 차량들을 보면서 얌전히 주행차로로 달렸다.
그리고 합류구간에서의 차이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합류지점 끝까지 가서 끼어드는 문화지만 독일에서는 합류지점이 시작되는 초반부부터 속력을 끌어올려 바로 합류를 시도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합류차로는 본선 속도에 맞춰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가속할 수 있는 차로지만 본선 차량이 차로를 유지한 채 속도를 줄이지 않는 경우가 많고 합류 차량이 알아서 들어와라는 분위기인 거 같다. 독일에서는 본선 차량이 미리 차로를 변경하거나 간격을 열어두는 형태여서 초반부에 합류가 가능했던 거 같다. 차들이 쌩쌩 달리지 않고 길게 서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열려있는 합류차로 끝까지 가서 끼지 않고 다들 초반부에서 끼어드는 모습이 생소했다.
마지막으로 달랐던 점은 정체 상황에서의 대처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정체가 시작됐는데 모든 차량들이 양쪽차로 끝에 붙기 시작했다. 앞에서 사고가 나서 구급차가 오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한참 백미러를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나중에 비켜주자는 개념이 아니라 구조 통로 (Rettungsgass)를 미리 만들어두어야 한다고 한다. 그 예외 없이 질서를 지키는 모습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규칙을 지키는 것이 개인의 손해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 그리고 그 구조를 신뢰하는 독일사회 분위기는 분명 배울 만했다.
분명 독일에서도 한문철 TV에 나올만한 일들이 벌어지겠지만 최소한 내가 경험한 도로 위 상황에서는 서로가 규칙을 믿고 차곡차곡 쌓아 온 신뢰로 움직이는 사회라는 인상을 받았다.
38. 베를린 여행을 마치고 39. 드레스덴을 거쳐 체코와 헝가리 등 동유럽 여행을 하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58. 뮌헨으로 향했다. 이후 59. 프랑크푸르트에 살고 있는 지인의 초대를 받아 어쩔 수 없이 먼 길을 갔다가 다시 60. 휘센으로 갔다. 마지막 독일 여행지는 스위스와 프랑스, 독일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78. 바일 암 라인 (Weil am Rhein)이었다.
드레스덴 (Dresden)
드레스덴은 베를린(Berlin)에서 약 2시간 거리로 당일치기 여행으로도 많이 찾는 곳이다. 우리는 동유럽으로 가는 동선에 있어서 잠깐 들르기로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이를 복원한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도시다. 도시의 규모가 크지 않아서 주차 후 도보로 관광했다.
전쟁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않고 남겨둔 건물들이 많았다. 드레스덴 구시가지 노이마르크트 광장에 위치한 프라우엔키르헤(Frauenkirche Dresden)에는 검게 그을린 돌들과 상대적으로 밝은 돌들이 섞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날이 계속 흐렸는데 뭔가 더 스산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레지덴츠 궁전 외벽에 1900년대 초반에 만든 102m 길이의 긴 벽화가 있었다. 이 일대를 다스렸던 작센 왕가인 베틴 가문(House of Wettin)의 군주 35명을 나열한 벽화인데 도자기 타일 약 23,000장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전쟁에도 큰 피해 없이 현재까지도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너무 큰 베를린과 다르게 규모가 작고 도시를 관통하는 엘베강 때문에 독일의 피렌체라고도 불린다는데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드레스덴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인 유럽의 발코니(Balkon Europas)에 왔다. 정식명칭은 브륄의 테라스(Brühlsche Terrasse)인데 18세기 작센 귀족 브륄 백작이 사적으로 사용하다가, 이후 시민들에게 개방되면서 지금 같은 강변 산책 테라스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2024년 9월 12일에 드레스덴을 갔었는데 바로 전날밤 아래사진에 보이는 카롤라 다리(Carola Bridge)가 약 100m가량 무너졌다고 한다. 트램 막차가 지나가고 약 10분 정도 후에 무너졌다고 하는데 한밤중이라 다행히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주변의 관광객들과 함께 흔치 않은 구경거리에 웅성웅성거리며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뮌헨 (Munich)
동유럽을 여행하고 10월 초에 맞춰 다시 독일에 왔다. 이 시기에 맞춰 축제를 즐기기 위해 뮌헨을 찾는 한국인도 많았다. 옥토버 페스트지만 시작은 9월 말부터 시작하여 10월 초까지 약 2주간 진행된다고 한다. 축제가 열리는 테레지엔비제(Theresienwiese)라는 대형 축제 광장 주변을 비롯해 근처 숙소를 잡기 힘들어서 좀 떨어져 있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1년 4개월째 여행을 하면서 나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일들이 많이 없었고 날씨가 계속 우중충해서 숙소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었는데 오랜만에 설레었다.
전날 미리 전통 의상(남성 Lederhosen, 여성 Dirndl)을 빌리기 위해 렌탈샵을 갔었는데 너무 늦게 온 탓인지 원하는 디자인의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다음을 기약했다.
옥토버페스트 (Oktoberfest)는 매년 약 6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맥주 축제다. 1810년, 바이에른 왕세자였던 루트비히 1세의 결혼 축하 행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벌써부터 입구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아직 날이 밝은데 기분이 좋았나 보다. 나도 나중에는 신나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다녔다.
축제가 열리는 광장에 설치된 대형 맥주 텐트에서 1리터 단위로 맥주가 제공된다. 뮌헨 6대 전통 양조장인 아우구스티너 브로이, 파울라너, 하커-프쇼어, 호프브로이, 뢰벤브로이, 슈파텐이 참여하는데 미리 텐트를 골라서 예매를 해야지 현장에서 헤매지 않는다.
축제자체는 무료입장이 가능하고 빈자리만 잘 찾는다면 예약이 필요 없지만 6대 양조장이 운영하는 대형텐트에 자리 잡고 마시려면 몇 개월 전에 열리는 사이트에서 미리 예매가 필요하다. 우리는 예약이 필요한지 너무 늦게 알기도 했고 현장에서 예약도 불가능해서 무작정 찾아가서 빈자리를 찾았다.
공식예약테이블은 최소 예약 단위가 10명이기에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인원을 채우려는 방들이 열리기도 한다. 우리는 둘 다 예전 배낭여행 때 인상 깊게 먹었던 호프브로이에 들어가 한참을 돌아다닌 후 지나가던 직원에서 팁을 좀 쥐어주고 단체 자리를 마련해서 오픈채팅방에 올렸는데 이미 야외텐트에 자리를 마련한 그들은 오지 않았다. 둘이 오붓하게 고대하던 슈바이학센과 맥주를 시켜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다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의자를 밟고 올라간다.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는 사람들이 없다. 음악에 맞춰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잔을 부딪힌다. 평소 배불러서 맥주는 잘 안 마시는 편인데 맛있는 분위기에 취해 1리터가 순식간이다.
텐트 안의 긴 테이블은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합석하는 구조였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몇 마디를 나누다 보면 금세 분위기에 섞이게 된다. 누군가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누군가는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반복한다.
내향인인 나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맥주가 조금 들어가자 신이 났다. 나도 그들과 어울려 제대로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일 년에 딱 한번 열리는 축제 기간에 맞춰 우리처럼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먹을 것 많았던 소문난 잔치였다.
프랑크푸르트 (Frankfurt)
우리보다 먼저 세계여행을 마치고 독일에 이민을 온 와이프 지인 부부의 초대를 받아 프랑크푸르트에 왔다. 유럽국가 중에서도 산업과 교육, 복지 시스템이 균형을 이루고 있고, 외국인으로서 정착할 수 있는 기반 역시 비교적 안정적으로 마련되어 있어서 정착을 결심했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허브공항이 있는 프랑크푸르트는 우리나라에서 직항도 있어서인지 한인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며칠 동안 머물면서 한식도 많이 먹고 재정비를 하며 잠깐이나마 독일의 일상생활을 느껴볼 수 있었다.
유럽을 장기간 여행하면서 여행의 권태기가 찾아왔다. 반복되는 이동과 짐 싸고 풀기에 지쳤던 거 같다. 새로운 걸 보고 경험한다는 설렘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새로움에 대한 기준이 처음과는 많이 달라진 거 같았다.
다양한 관광지와 볼 것을 찾아다니지 않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며칠 머물렀다. 계획을 줄이고 산책이나 카페 같은 일상적인 시간 보내면서 충분히 리프레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아직도 이 세상은 넓고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다.
독일에서는 딱 이 초가을에만 판매하는 Federweißer (페더바이서)라는 와인이 있다. 포도 수확 직후에 나오는 아직 발효 중인 와인인데 포도즙이 효모와 함께 발효되면서 탄산이 계속 생기기 때문에 약간 톡 쏘는 맛이 있다. 완전히 밀봉하면 압력이 올라가 병이 터질 수 있기 때문에 꽉 닫지 않은 상태로 판매하는데 달달하면서 탄산의 청량함이 좋아서 많이 사 먹었다. 이 시기에 독일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추천한다.
퓌센 (Füssen)
프랑크푸르트에서 오스트리아로 향하는 길에 퓌센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디즈니 성의 모델로 알고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Neuschwanstein Castle)이 있는 곳이다.
월트 디즈니가 유럽 여행 중 이 성을 보고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 등장하는 성의 디자인에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공식적으로 입증된 기록은 없지만 동화 속 성을 현실로 만든 듯한 높은 탑, 흰 석회석 외벽,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한 위치까지 모두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유명한 관광지답게 주차장도 엄청 넓었다. 산 중턱에 위치한 성을 보러 가기 위해서는 도보로 걸어 올라가거나 버스나 말을 타고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덥지도 않았고 비가 살짝 내려서 숲의 피톤치드향이 많이 나는 거 같아서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경사가 심한 건 아니었지만 꾸준히 사십 분 정도를 올라가야 해서 조금 힘이 들었다.
내부 성 투어는 하지 않고 성아 가장 잘 보인다는 마리엔브뤼케 (Marienbrücke) 다리로 향했다. 포엘라트 협곡 위 약 90m 높이에 걸쳐 있으며, 길이는 약 35m다. 다리 아래에는 폭포가 흐르며, 절벽 양쪽을 연결하고 있는데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전경을 완벽히 조망할 수 있었다.
좁은 협곡 위 다리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조금 무섭기도 했는데 다리중간에서 바라본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꽤 오랜 시간 머물렀다. 늦가을 단풍이 들었을 때나 겨울에 눈이 쌓인 모습도 기대되는 풍경이었다.
비트라 캠퍼스 (Vitra Campus)
독일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 Germany)에 있는 비트라 캠퍼스는 비트라(Vitra)라는 가구회사가 운영하는 가구 생산과 건축 전시, 브랜드 경험 공간이 가능한 복합시설이다.
1981년 공장 화재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에게 건축을 의뢰하면서 이곳은 마치 건축박람회를 방불케 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다양한 건축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방문이지만, 다시 찾아도 여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가 국경을 맞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나마 숙소가 가장 저렴했던 프랑스 쪽에 숙소를 잡고 세 나라를 넘나들며 여행했다. 당시 기름값도 프랑스가 제일 저렴했다.
비트라 하우스(Vitra Haus)
비트라 캠퍼스에서 가장 상직적인 건물이다. 2010년 건축가 듀오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설계했으며, 디자인 브랜드 비트라의 대표 쇼룸이자 전시 공간이다. 비트라 하우스는 전통적인 집형태의 건물들을 서로 교차·중첩시킨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총 다섯 층 규모로, 각 층은 비트라 컬렉션의 다양한 가구와 인테리어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는 주거 공간 컨셉으로 구성되어 있다.
같은 날 찍었는데 모두 느낌이 다르다. 배경이 되는 날씨의 영향도 크고 유리로 된 입면이 반사되는 하늘의 색도 차곡차곡 쌓여있는 건물의 분위기를 다르게 느끼게 해 주었다.
1층에 위치한 카페는 외부공간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선선한 날씨를 즐기고 있었다. 방문자센터도 있어서 유료입장인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티켓을 미리 구매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밑으로 내려오면서 전시를 구경하는 동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간마다 다른 컨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본적으로 가구들이 수백만 원을 넘어가기 때문에 감탄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열려있는 창문 때문에 창밖 풍경이 계속 바뀌었다. 같은 형태의 창문이고 비슷한 구조의 공간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이동을 할 때마다 새로웠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Vitra Design Museum)
얼마 전 작고한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한 건물로 1989년에 개관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전시관으로 기획전시 중심으로 열린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2024년 10월에는 나이키 브랜드의 혁신에 대한 디자인 전시가 열리고 있어서 건물 외벽에 나이키 스우시가 크게 새겨서 있었다.
사진을 정리하면서도, 지금도 활동 중인 건축가의 작품이 아니라 세상을 떠난 프랭크 게리의 유작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여행을 하며 그가 설계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그리고 댄싱 하우스를 직접 방문했었다. 이 건물들은 각각의 도시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건축물로 자리 잡았고, 단순한 랜드마크를 넘어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부는 나이키 브랜드의 역사와 혁신에 대한 전시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신발을 좋아해서 볼거리가 많아 아주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비트라 컨퍼런스 파빌리온
(Vitra Conference Pavilion)
강원도 원주에 있는 뮤지엄산과 제주도의 본태박물관을 설계한 안도 다다오의 첫 유럽 건축 프로젝트다. 프랭크 개리가 설계한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안도다다오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인 노출 콘크리트 벽이 눈에 띄었다. 명확한 직선,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특징이며, 경사 지형 위에 배치되어 자연 풍경과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부는 단순한 재료와 섬세한 디테일로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비트라 소방서 (Vitra Fire Station)
첫 번째 방문 때는 보지 못했던 건물이라 더욱 기대했던 곳이다. 글을 쓰기 시작할 당시에는 서울시장 후보 공약으로 한국에서 유일한 자하 하디드의 작품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철거하자는 의견까지 나오며 논란이 있었다.
비트라 소방서는 자하 하디드의 초기 작품으로 비트라 캠퍼스에서도 가장 먼저인 1993년에 완공되었다. 지금의 유려한 곡선 대신 날카롭게 쪼개진 콘크리트 벽과 긴장감 있는 선형 구성이 특징이다. 비효율적인 공간구성으로 실제 소방서로 사용된 기간은 짧았지만, 건축적으로는 이후 작업의 방향성을 예고하는 중요한 프로젝트로 평가된다고 한다.
비트라 캠퍼스를 둘러보며, 어떻게 이런 건축가들을 한자리에 모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헤르조그 & 드 뫼롱, 그리고 안도 다다오까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건축가들의 작품이 하나의 캠퍼스 안에 공존하고 있었다. 전시들도 볼만하고 건물들도 여유 있게 둘러보느라 이 날 하루는 온전히 비트라 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캠퍼스 내부의 산책로도 잘 꾸며져 있고 또 다른 건축가들의 실험적인 건축물들도 많아서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았다. 다른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스위스 바젤을 여행한다면 꼭 시간을 내서 구경해도 좋을 만큼 적극 추천한다.
독일의 여러 가지 면을 볼 수 있었던 여행이었고, 현실적으로 살기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자로서 바라본 독일은 화려함보다는 안정감을 주는 나라였다. 관광을 위한 여행과 독일에서의 현실적인 생활을 적절히 섞어가며 여행했다. 짧은 기간들이었지만 도시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스타일의 숙소에서 지냈다. 번화한 도시의 아파트에서도 지내보고, 한적한 시골의 마당이 있는 집에서도 머물며 독일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유럽 내에서는 독일에 가장 많은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도, 이 나라가 단순한 여행지를 넘어 실제로 생활하기에 현실적인 선택지로 여겨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다음은 유럽에서도 이쁘기로 소문난 체코의 프라하와 제2 도시 브르노의 여행기록이다.